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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이 꾸역꾸역.

지리산 둘례길 6구간에서.

by 쌈마이작가 Mar 26. 2025
<5년째 같이 지리산 둘례길을 함께 한 두 분><5년째 같이 지리산 둘례길을 함께 한 두 분>

2024년 11월 15일 어김없이 지리산 둘례길로 향했다. 올해는 6구간 수철마을에서 성심원 12Km이다. 

2구간부터 벌써 5년째 일 년에 한 길씩 걷고 있다.


5년 전 코로나는 희미해졌지만, 힘든 시간은 더 진하게 삶을 누르고 있을 때였다.

 그때 현석형(사진 우)이 카톡에 손봉기 선배님(사진 좌)과 나를 초대해서 뜻밖에 제안을 했다. 


"지리산 둘례길이나 함 걸을까요?"


코로나로 바뀐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원래부터 코로나가 있었던 것처럼 꾸역꾸역.

코로나가 스며든 삶을 한 번에 날려 보내는 한 마디였다. 꾸역 구역 사는 삶에서 구원해 주겠다는 말인 거 같았다. 


손봉기선배님과 나는 바로 좋습니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꾸역꾸역 사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원래 꾸역꾸역 살았었다.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이고, 나는 코로나 때문에 라는 핑계를 대고 있었던 거 같다. 


지리산 둘례길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우리 세명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마냥 떠난다는 설렘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다는 욕망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 3년을 버티다 버티다 숨구멍을 찾은 기쁨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유야 어째던 그 한 번으로 5년 동안 10월이 오고 찬바람이 불면 올해도 가야지 하며 카톡 대화방은 서로 일정을 잡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시끄러워졌다. 


손봉기선배님은 대장으로 산행에 익숙지 않은 우리를 이끌었다.

현석형은 일정을 짰다. 차량을 준비하고, 더 괜찮은 숙소를 알아봤다.

나는 저녁에 만찬을 위한 특식 메뉴를 준비하고 식재료를 리스트업 했다(전직 셰프입니다)

이건 아직까지 그러고 있다. 


지리산 둘례길 6구간 끝이자 7구간의 시작점지리산 둘례길 6구간 끝이자 7구간의 시작점


2024년 11월 2일 손봉기 선배님과 스페인, 북유럽, 동유럽, 이탈리아, 런던 여행을 45일간 함께 하고 귀국했다. 나는 다시 오니 제자리였다. 꾸역꾸역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유럽을 가기 전 급하게 카메라를 구입했다. 계획에 없던 생각도 하지 않았던 유튜버를 하려고 말이다. 잘 찍을 리가 없다. 잘 될 리가 없다. 그렇게 후회를 하며 지리산 둘례길 6구간을 걸었다. 우수운건 그런 순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는 물음이 나왔다.


손봉기 선배님과 현석형은 찬성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카메라를 들고, 아니면 카메라를 안 들고"


손봉기 선배님은 당연히 들고 가야지 라는 말이었고, 현석형에 말은 잘 기억에 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에 나지 않지만, 그 순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이 꾸역꾸역 내게 다가왔던 거 같다.



항상 갔었던 지리산 자연휴양림 아래에 있는 어느 곳항상 갔었던 지리산 자연휴양림 아래에 있는 어느 곳


6구간을 걷고 매년 갔었던 지리산 휴양림 숙소에서 준비해 간 음식과 술을 마셨다. 매년 느끼는 거지만 둘례길을 걸으러 오는 건지 아니면 술을 마시러 오는 건지 헷갈리지만, 매년 그랬다.

 1박을 더 하느냐 마느냐 했지만 결국 1박을 하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살다 보니 본 이벤트 보다 더 중요한 건 뒤풀이다. 뒷 풀이가 없으면 본 이벤트도 퇴색된다. 다음 이벤트를 기약할 수 없게 된다. 뒤풀이를 하기 위한 변명이다. 영도에서 장어구이와 장어탕에 소주를 마셨다. 3차를 달렸던 거 같다. 


올해 2025년에는 3월 28일 금요일에 7구간을 걷기로 했다. 매년 뒤풀이때 했던 말은 1년에 한 길씩 가는 건 시간이 너무 걸리니깐 4~5월 중 한 번, 10~11월 중 한 번으로 하자는 얘기도 나오기도 했었고(이래서 뒤풀이가 중요함), 내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전 대비 캠프 비슷한 뭔가가 필요했다.

손봉기선배님은 강의와 새 책 런던 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준비로 바쁜 와중에 흔쾌히 승낙했고, 일정과 숙박지 결정을 맡은 현석형은 알겠다로 답했다. 감사함을 바로 말로 전하지 못했다.


현석형은 3월 28일 아침 출발이냐 저녁 출발이냐로 의견을 물었다. 아침 출발이면 1박이고, 저녁 출발이면

2박이었다. 7길부터는 숙박지를 지리산 자연휴양림에서 산청으로 변경하겠다고 했다. 7길은 위치상 산청이 가까워서 이기도 했고, 산청에 아주 멋진 단독 산장이 있어서라고 했다. 결국은 매년 그랬듯 우선 3월 28일 금요일 아침 7시 출발해서 1박 더 여부는 가서 결정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산불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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