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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Jan 20. 2023

홧병이 나려 할 때 글을 쓰는 이유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제저녁 이런 문자가 날아왔다.


아이 유튜브 채널 만들었어요.
영상 다 올렸으니 아이에게 보여주세요.


발신인은 전남편이다.

'뭐지...?'

문자로 보낸 주소를 클릭했다.

내 아이의 어려서부터 최근까지의 동영상이 연도별로 깔끔하게 분류되어 불특정 다수가 보는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었다.

전체 공개였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난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동영상 리스트부터 클릭해서 어떤 동영상이 있는지 삽시간에 훑어내려 갔다.


불길한 예감은 어쩜 그리도 엇나가지 않는단 말인가!

우려했던, 설마 했던 영상들이 버젓이 다 업로드되어 있었다.

아이의 외가 가족과 찍은 동영상, 내 딸과 아들이 함께 있는 영상, 나와 아들이 찍은 영상.

이 모든 영상들이 유튜브라는 바다에 퐁당 빠져 허우적댔다.


황당함, 어이없음, 분노, 짜증, 온갖 부정적 감정이 동시에 확 일었다.



'이제 미친 건가...?
이 사람 아이큐 153이었는데?
법에 무지한 건가? 근데 이건 상식 아닌가?'


배울 만큼 배운 인간의 기본 상식이...

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상식'이라는 곳까지 다다랐고, 상식에 닿은 순간 답이 나왔다.

상식.

상식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이다.



그는 아이큐는 높았지만
기본 상식 선에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과거에 저지른 행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일시적으로 들끓었던 오만 부정적 감정이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

몇 년이나 흘렀다고 벌써부터 그가 누구인지 깜빡 잊고 있었다.

그렇지 사람이 잘 안 변하지.

본인이 못 느끼는데 여전하겠지.

숨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 난 차분하게 그에게 문자를 찍어 보냈다.


전부 비공개로 돌려주십시오.
어떻게 저에게 사전 허락도 없이 당신과 이혼해서 이제 아무 관련 없는 제 가족들의 얼굴, 허물없는 동영상, 제 딸, 아들 그리고 저와 찍은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건가요?
이건 논란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너무 당황스럽습니다.


최대한 정제해서 문자를 보냈다.

상식적이지 못한 상대에게 내 소중한 감정까지 담아 보내는 게 아까웠다.

소란스럽게 감정을 일으킬 필요도, 에너지를 쏟을 이유도 없었다.

실제로 몹시 당황했고, 내 아이들과 내 가족이 담긴 무려 서른여덟 개의 동영상을 보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영상들을 훑다가 하나의 영상에 시선이 고정됐다.

바로 딸과 아들이 함께 춤추며 재롱을 부린 영상이었다.

지금보다 5년을 거슬러 올라가 딸과 아들이 함께 트와이스의 음악에 맞춰 깔깔대며 신이 나서 춤추는 영상을 보는데...

넋을 놓고 내 새끼들의 천진난만 미소와 귀여운 몸동작을 보고 있노라니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와버렸다.

갑자기 욕이 절로 나왔다.


'미친놈!
가정을 파탄 내고 감히 이 영상을...'


초상권 침해로 그냥 고소할까 싶었다.

딱 3초 고민 후 바로 생각을 접었다.


못나도, 나빠도, 이기적이지만,

내 아이의 친아빠니까.

내가 사랑하는 내 새끼의 한쪽 친부모이니까.

'아이를 위해 존중해 줘야지'하며 이 악 깨물고 다잡았다.


그래, 그도 나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준비했겠지.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라 생각이 짧았던 건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악의는 없었겠지


뭐 이런 잡념으로 위안 삼으며 답답한 속을 뚫고 싶어 베란다로 나가 밤하늘을 보았다


 


나는 마더 테레사처럼 마음이 넓지 않은데 왜 수시로 날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할까?

내게 마치 '잊지 않았지?'라는 듯 지난 일을 들쑤시는 고통을 주지 않아도

 지금, 여기, 현재에 충분히 감사함을 가지고 날 낮추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하늘에 내 뜻이 전해지지 않는 걸까?

이제 이쯤 되면 위에 계신 분이 내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내 모습을 보았다.

더 이상 화가 치솟아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내 아이의 영상을 보며 울컥 눈물이 났만, 예전 같으면 고소하겠다며 싸웠을 텐데 이젠 조용히 종용한다. 

불과 몇 년 만에 내가 현저히 달라졌다.


화가 나거나 속상하거나, 기쁘거나 재미있는 일 등이 생기면 난 곧바로 글을 쓴다.

글을 쓰면, 내게 동요된 감정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예측불허한 변수를 예방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잠깐만 기다려봐.
지금 감정이 어떤 건지 곰곰이 생각 좀 해보자."


백도화지 같은 화면에 활자들이 찍히면서 그와 동시에 내게 캐묻는다.

감정이 일었을 때 글을 씀으로써, 탈탈 쏟아낸 문장들 속에서 나를 찾아본다.

내가 쓴 글을 35cm 정도 떨어져서 읽다 보면 그 안에 숨어있는 진짜 내 감정이 빼꼼히 고개 내민 게 보인다.

내게 글쓰기란,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홧병이 날 것 같은 이런 날에도

난 글을 쓴다.


나에게 직해서, 고요해서, 따뜻해서, 다정해서, 슬픈 날에는 내 눈물의 이유를 알려주어서

글 쓰는 시간이 참으로 좋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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