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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Feb 01. 2023

화장시켜 주세요

feat. 45세가 되어 쓴 인생 첫 자작시와 유언


난 아마 죽으면 몸에서 사리가 나올 거야.
나 죽으면 꼭 화장시켜 줘.
그리고 몸에서 사리 나오면 내 시체가루 옆에 고이 놓아주면 좋겠다.


가장 친한 친구 단톡방에 이 세 줄을 남기고 하루를 닫는다.

살면서 경우 없는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났다.

예의 없는 사람과의 잦은 만남에 처음에는 상대를 탓하다가 시간이 흘러 나 자신이 이상한 건가 자책하다가 다시 돌아봤다.


세월이 몇 해 지나서 난 과거보다 백칠 보쯤 앞으로 나왔으나 상대가 여전하다면.

그 시절 그대로 변치 않았다면, 서로 간에 오가는 대화의 주파수가 맞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품격이 다르기에. 

가령, 누군가 화가 났다고 다짜고짜 'ㅈ같다'라는 거친 욕을 당신에게 내뱉었다면 심기가 불편하다 못해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언어는 그 사람이 학식을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를 떠나 한 인간의 격이다.


이번에는 넘겼지만 격이 낮은 누군가가 이미 들쑤셔놓은 내 마음, 더러워진 내 귀는 돌아오는데  며칠이 걸릴 것 같고, 그 사이에 몸 안에 스멀스멀 사리 몆십 개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아니 삼십 대 내내 이미 팔십 개 정도 생겼고, 마흔한 살 봄에 백사십 개로 늘어나 있을지도.


맞다, 근데 '사리'는 불교용어 아닌가.

뭐 그 정도로 삶이 참으로 고되었다는 걸로 마무리하자.



남편의 베프이자 나와도 처음보다 조금 더 가까워진 분이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이 오늘 내 가슴을 울렸다.  

딱, 지금 내 마음 같은 사진이다.




칠흑같은 어둠에 점령당한 좁아터진 골목길을 보고 있노라니 숨이 턱 하고 막혀온다.

저 멀리 작지만 쨍쨍한 가로등 불빛 하나가 골목을 훤히 밝힌다.

등불은 퀴퀴한 냄새가 밴, 어두컴컴한 골목에 온 힘을 다해 온기를 불어넣는다. 호오오.

작은 덩치로 기어코 이 어둠을 홀로 물리치겠노라며 악을 쓴다.

분투하는 가로등을 보고 있자니 감자 네 개를 집어삼켜버린 듯 가슴이 먹먹하고, 또 먹먹하다.



어둠은 세상이요, 가로등은 진리, 그리고 골목은 오늘을 사는 어둡거나 밝아지려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희뿌연 빛일지라도 그것이 빛이라 다가올 것이고,

어둠에 잠식된 이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가늠하지 못한 채 살아갈 터이다.

이 사진은 세상에 대한 내 번민을 여실히 보여준다.


살면서 느끼는 게 결국엔 결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되어 있더라.  

유유상종(類類相從)은 그저 그런 옛말이라며 홀대할 사자성어가 아니었다.

당신 곁에 고운 언어를 쓰고

자신의 이익이나 돈만 좇는 게 아닌 타인을 헤아릴 줄 아는 심성을 가진 이가 가득길 바라는 밤이다.


기승전, 나는 죽으면 내 몸을 '화장'할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 한 편 적으며 유언 하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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