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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Jul 26. 2022

울고 싶을 땐, 맘껏 울어도 돼요.

건강한 내면을 위한 심리상담사의 고백

울고 싶을 땐, 맘껏 울어도 돼요.


정말이지 요즘 들어 기도를 하면 왜 자꾸 눈물이 흐르는지 나름 심리에 대해 공부를 한 나인데,

이런 내 감정 하나를 알 수 없다니 답답할 노릇이다.

어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새벽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아니다, 말을 바꿔야겠다.

이곳에 와서 처음이 아니라 내 인생 처음 드린 새벽 예배였다.

6시 30분에 하는 예배였는데, 미라클모닝이 한참 성행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이걸 새벽예배라고 칭하기도

좀 머쓱하다.

어쨌든 그 시간에 예배라는 것에 참석한 것, 그 자체가 나의 인생의 새로운 경험이다.

예배를 마치는 기도 시간이 왔다. 자율 기도인 것 같았다.

내 기도를 마치고 두 눈을 떴더니 얼마 참석하지 않은 분들이 각자의 기도를 아주 간절하게 하시는 듯했다.


기도를 하며 나처럼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계셨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분도 계셨다.

고개를 들어 쭉 둘러보고 있는데, 나의 레이다에 한쪽 팔을 천창을 향해 쭉 뻗고 기도를 하고 계신 한 중년의 남성분이 포착되었다!

난 갑자기 엄청난 호기심이 생겼다.


저렇게 팔을 쭉 뻗으면,  나 꼬꼬마였을 때 TV 수신을 위해 집집마다 지붕에
달려있던 안테나처럼 하나님과의 주파수를 더 잘 맞출 수 있는 건가...?

나도... 한번 해볼까?


이게 진정 효과가 있어서 하시는 건지 그분께 여쭤보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일었다.

나도 슬쩍 시도해볼까 싶었다.

기도 끝나고 가서 그분께 여쭤볼까 말까 하다가 곧바로 '아... 나 초신자지.' 하는 상황 파악을 하게 되었다.

겸손하게 내 기도나 묵묵히 잘하자.

이렇게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조용히 빠져나왔다.

가끔 이런 내가 엉뚱하고 웃기다.

이 진지하고 경건한 상황에서 조차도 궁금증과 시도를 생각할 수 있다니...

이런 날 볼 때면 '응~ 4차원 소녀는 멀리 있지 않아. 네가 거울만 보면 돼.' 싶다.

어쩔 수 없다, 이게 나 인걸.





금식 기도원이지만 자율이라서 난 1일 1식(중식)을 선택해서 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틈새 간식을 야금야금 먹고 있다. 소시지, 달걀, 에너지바 등.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서 하루 한 개 정도만 먹는다. -_-

내 딴에는 완전 금식을 하다가 떡실신을 할 수도 있겠다 싶은 우려에, 그렇게 되면 이곳에 온 의미가 무색해질 것 같아서 1일 1식과 소소한 간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뭐든 과하면 아니 된다'는 이 초신자의 나름의 소신이라고 해두겠다.

각 자의 방식대로 잘하면 되는 거지 뭐.


점심을 먹고 나오니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과 온기를 싣고 있는 나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이렇게 잠시 시간이 멈춰줬으면 싶다

경이로운 자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현관 앞에 비치되어 있는 널찍한 흔들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니 아들이 생각나 전화를 했다.

지금 아들은 친아빠와 방학 면접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 꼬마 아들과 통화 중에 수영장에서 놀다가 엄지발톱에 뭐가 들어갔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이물질이 살 속으로 들어가서 좋을 리 없기에 전남편에게 아이를 데리고 꼭 병원에 가 달라고 부탁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 초조하고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이자 어미의 심정인 것 같다.

2시간쯤 흐른 후, 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어떻게 됐어요?

전남편: 병원에서 발톱을 쑤시기만 하고 결국 못 뺐는데 발톱 자라면서 살도 올라와서 저절로 빠진다니까

괜찮아요.

나: 어떡해...! 많이 아팠겠다... 울지 않았어요? 소독은 한 거죠?

전남편: 소독했고, 애는 안 울었어요.

나: 좀 바꿔줘요.


8세 아들: 엄마... (약간 울먹거리며)

나: 아들, 괜찮아? 치료할 때 아프지 않았어?

8세 아들: 응. 아까는 아팠는데 나 울지 않았어.


나 울지 않았어.


아들의 이 말에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평소 같으면 "잘했어! 장하다 우리 아들"이라고 해줬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모두를 위한 성교육>을 비롯한 여러 심리서적도 읽고, 특히 나의 엄마로서의 모습에 대해

성찰도 하면서 '과연 아픈 감정을 참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인가' 싶었다.

특히 아들 녀석은 둘째라 어리광도 많고, 여린 면이 있는 아이였기에 그런 그 친구의 기질을 알고 있는

엄마인지라 그 대답에 더 마음 아파왔다.


나: 아들... 장하네~. 우리 아들 대견하다! 8살 되고 더 컸나 봐!

   근데 아들, 아프고 힘들면 울어도 돼. 눈물이 나면 울어. 참지 않아도 돼.

   아픈 걸 표현하는 건 잘못하는 게 아니야.  알았지?


아들: 어...? 어.. 알았어.


나: 그럼 아빠랑 재밌게 놀고 와! 사랑해!






우리는 살면서 사회의 보편적 고정관념 때문에 본의 아니게 많은 걸 강요받는다.

나의 감정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다 큰 녀석이 왜 울어!
남자는 울면 안 돼! 꼬추 떨어질라.
넌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걸로 우니?
울지 마. 참어! 걸핏하면 눈물이야?
남자는 태어나서 딱 3번 운다.
정은 씨, 내가 뭐라고 했다고 또 울어요? 일하는 직장 와서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뭐가 그리 안된다는 게 많은 건지. 우리의 감정들은 숨통이 턱 하고 막힐 것 같다.  

상대방이 성인이라고, 남자라고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사람이라 눈물이 납니다.


우리는 슬픔이라는 감정도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특히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부디 어렸을 적부터 우리가 받은 고리타분하고

잘못된 교육방식을 우리의 자녀에게까지 전가시키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당신의 아이가 속상하면 울 수 있는 자유를 주고, 그 아픔을 먼저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책임져야 할 자녀가 있는 부모이자 다 큰 성인인 당신도, 눈물이 날 땐 울어도 된다.

엄마도, 아빠도 힘들고 아플 때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줘도 괜찮다, 아니 좋다.


감정을 참으면 더 큰 마음의 병을 키울 뿐이다.  

또한 내 감정에 솔직해야 타인의 감정도 진심으로 헤아려 줄 수 있다.


난 45살의 다 큰 성인이고, 경험도 다양하고, 성별이 다른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다.

그리고 심리상담사라는 나의 직업을 사랑하는, 눈물이 많은 수도꼭지 같은 작가이다.

나는 내가 눈물이 많은 것이, 내 감정에 솔직한 것이 부끄럽지 않다.


감정에 솔직하면 내면이 건강해진다. 우리의 감정은 마땅히 서로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태어난, 똑같은 인간이니 말이다.


그러니 당신,

지금 당신의 마음이 아프다면, 눈물나게 힘들다면 맘껏 울어도 된다.





진정한 나를 알기 위한 첫걸음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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