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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Dec 28. 2022

본의 아니게 백수 된 자의 다짐

feat. 카르페디엠(Carpe diem)

오늘 아침은 유독 낯설다


선생님한테는 내가 너무 미안해요




원장님의 첫마디였다.

학원생들이 줄어들자 고민이 크셨던 원장님이 결단을 내리시고 선생 인원 감축을 감행하셨다.

수요가 줄어드니 공급을 줄이는 건 당연지사.

초등부 인원이 적다 보니 초등부 영어를 담당했던 내가 그 주인공 중 한 명이 되었다.

경영을 해왔던 나로서는 원장님 입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다만, 나의 생활고에 비상등이 켜졌을 뿐.

고민 끝에 그냥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기로 했다.

어제 부로 학원 일을 마무리 짓고, 오늘부터 본의 아니게 아니 자처해서 백수가 되었다.

약 23년 만에 백수 된 삶을 맞이했다.


내가 정의하는 '백수'는 어느 집단이나 기관에 속하여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직업을 갖지 아니한 자이다.

다시 말해, 따지고 보면 할 일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다.

안 봐도 여러모로 바쁜 백수 생활을 하게 될 게 뻔하다.

지금도 스터디카페에 앉아 글쓰기 챌린지 O.T를 위한 글 예시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중학교 시절이 스멀스멀 소환된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돌이켜봐도 키가 유난히 크셨던, 빼빼 마르고 털털하신 여자 담임선생님의 담당 과목이 바로 '생물'이다.

여자 중학교의 생물 시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하루는 개구리 해부 수업이었다.

마취로 꼴까닥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산 개구리'를 해부해야만 한다.

총대 메고 바들바들 대며 매쓰를 집어 든 용기 있는 친구가 포문을 열었다.

어느 용감한 중1 소녀에게 서툰 개복(開腹)을 당한 개구리는 시간이 흘러 약발이 떨어지자 조금씩 꿈틀거렸다.

모습을 보고 기겁해서 손에 든 매쓰를 떨군 용기 냈던 친구, 일찌감치 도망간 비겁한 친구, 비명을 지르는 시끄러운 친구, "개구리가 너무 불쌍해"라며 엉엉거리는 나로 이뤄진 우리 조는 패닉, 그 자체였다.

공황에 빠진 조는 하나 둘 늘어났고, 결국 그날 생물 수업은 난장판으로 끝났다.


개구리 해부 충격으로 여파가 가시지 않은 다음 생물 시간, 선생님께선 뜬금없이 오늘은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죽은 시인의 사회'를 틀어주셨다.

우리의 해마에 남아있는 '뱃가죽이 열린 채 움직이는 개구리' 트라우마를 지워주고 싶으셨던 걸까?

별생각 없이 보기 시작한 그 영화를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 나이 14살, 난생처음 접하는 부류의 선생님이 영화 속에 등장했다.


 '저런 선생님이 실제로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으며 영화를 보다 서서히 빠져들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의미심장한 장면, 바로 그 실존 여부가 오리무중인 주인공 선생님이 보수적인 명문고 학생들에게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속삭이는 장면이었다.



인상적이었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에 오열했다, 누가 보면 어디 초상이라도 난 건가 오해할 만큼.

친구들은 날 위로하다 지쳐 그만 좀 울라며 놀려댔다.




마흔의 중턱에 있는 지금도 그때가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 뒤로 내 인생에 영향을 준 명언은 '카르페디엠(Carpe diem)'이었다.


"현재를 즐겨라"


그런데 말이다, 난 실로 그 명언의 영향을 받았을까?


정말 내 인생의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왔나?


그냥 감상 젖은 여드름 난 여학생이 좋아했던, 추억 속 명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쉼과 찰나의 소중함을 느끼며 살기 시작한 게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인생을 누구보다도 바쁘고, 촘촘하게 살아왔다.

틈이 나면 막간을 활용해 영상으로 공부하고, 잠을 줄여가며 독서를 통해 자기 계발에 힘썼다.

일을 손에서 놓아본 적도 없다.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들처럼 일과 자기 계발이 빽빽하게 들어찬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유(思惟)'라는 걸 하게 됐다.

코로나 3년간 내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 잃은 건 상처가 많은 딸과의 관계요, 얻은 건 자기 성찰과 휴식을 위한 짬을 쥐어짜서라도 가지려는 태도이다.

가만히 있으면 '진짜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다.

그 시간이 참으로 즐겁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명언이 존재하고, 모든 명언이 영감을 안겨준다지만 난 과거에도, 지금도 '카르페디엠(Carpe diem)'이 제일 가슴에 와닿는다.

예전엔 '카르페디엠(Carpe diem)'이 막연한 동경이었다면,  오늘의 내게는 몸소 실천하는 명언이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지금 나는 삶과 죽음 둘 다 사료한다.


It’s Always Darkest Before the Dawn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영어 속담이 있다.

죽음이 존재하기에 우리의 삶은 더욱 가치 있어지고, 빛을 발한다.

지금 이 순간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라는 걸 잘 알기에 이제는 그 어떤 현재도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행하는 내가 되리라.



그리하여 나는 2023년, 첫 달을 자의적 백수로서 기꺼이 시작하려 한다.
이 또한 내게 유의미한 시간일 테니.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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