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리나 Jan 05. 2023

치마를 입으니 이런 게 다르네

feat.소녀를 만나다

엘리베이터에 잽싸게 몸을 실었다.

예감이 좋다.


'어쩐지 오늘 하루,
기분 좋은 일들이 펼쳐질 것 같아.'



수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도 5분 만에 오고, 다행히 빈자리도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건 어제 남편이 알려준 카카오버스앱을 설치하고, 아침 일곱 시부터 입석이 불가능한 M버스의 빈 좌석 현황을 노려보며 대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년 11월부터 M버스는 정류장에 서 있는 날 보고도 휙 지나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쉽게 승차하기 어려운 이 광역버스를 타야만 서울로 갈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외출이 꺼려졌다.



무튼, 한 시간 내내 이 버스를 타고 가서 4호선 선바위역에서 내리고 조금 걸은 뒤 지하철을 타한다.

그리고 또다시 9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동작역에서 내려서 걸어야 한다.

여간 험난한 여정이 아니다.


 



막상 버스를 타며 어디론가 향하니 기분이 들뜨고 소녀들을 만날 생각에 설렌다.

창 밖 하늘을 보고 싶은데 모든 승객분들이 주무시려고 커튼을 치셨다.

덕분에 출근길 버스 안은 온통 고요와 진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좋아하는 재즈리스트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멍 때렸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자 선바위역에 와 있다.



또각또각또각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지하철 역사 안을 바삐 걸었다.



오늘 큰맘 먹고 치마를 입었다.

일 년 중 내가 치마를 입는 날은 손에 꼽힌다.

그때마다 나 자신도 놀라는 건 내 몸짓이 본능적으로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선다.

앉을 때에도 정자세로 꼿꼿하게 앉아 자세를 유지한다.

자리에 앉은 내내 양무릎을 단단히 붙인 채 있다.

웬만해선 다리를 꼬지도 않는다.

가장 신기한 건, 걸을 때 일 자로 걷는다는 것이다.

놀랍다.



마치 요조숙녀로 변한 듯 잠시동안 태가 바뀐다.

내게 치마는 '설렘이자 예의'이다.

치마 입는 날은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이자 여자로서 곱게 단장하는 시간이다.

복장과 조화롭게, 평상시에 잘 안 하는 화장도 약간 하고 머리도 매만져본다.

이상하게 그런 날이면 나의 자세도 평소보다 75도쯤 달라져 있다.

그동안 자세만 바뀌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마음도 75도쯤 기울어졌다.


설레는 날, 특별한 날, 기분 좋은 날.

이 모든 날들은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모닝 직감이 적중했다.

난 그리웠던 소녀들을 만나 내 설렘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하루를 보냈다.

지금 이 순간,

문뜩 '설렘'이라는 감정도 내 날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더 진해질 수도, 옅어질 수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소녀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날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