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리나 Jan 09. 2023

내가 애 친아빠지 그럼 뭔가요?

feat. 과거를 대하는 법

어제저녁 서점에 가서 올 한 해 내가 읽어야 하는 고전 책과 읽고 싶었던 소설책 일부를 구매했.

아직 장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평균 두께 5cm인 책 예닐곱 권양팔 가득 안고만 있어지혜가 몸속에 스며드는 것 같아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책을 부여안고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는 길에 나의 행복을 깨는 카톡이 날아왔다.

전남편이다.


카톡을 본 후 그 사람과 통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학교 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아들은 띵동! 하는 벨소리와 함께 면접을 위해 찾아온 그 전남편에게 향했다.

아들이 전남편을 따라 집을 나선 뒤, 식탁 위에 사 온 책들을 풀 서점 앞 포장마차에서 사 온 계란말이 김밥을 꺼냈다.


집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표정한 얼굴로 겹겹이 쌓인 책을 응시하며 김밥을 먹는데, 지금 씹고 있는 게 김밥인지 내 기분인지 헷갈렸다.

맞은편에 앉은 남편이 내게 괜찮냐고 물어본다.


'나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지?'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서 남편에게 내 감정이 너덜너덜하다는 신호탄을 날렸다.


나: 나 지금 기분이 굉장히 좋아.


남편: 안 좋을 만하지. 과거를 건드렸으니...


부정적 느낌의 근원을 찾아 머릿속을 헤집고 있을 때 남편이 옆에서 툭하고 내게 정답을 던져줬다.

그랬구나.

내 억울한 과거를 전남편이 휘져어 놨다, 그 반갑지 않은 톡과 통화로.




책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면접하러 거의 도착했다고 카톡을 보낸 온 전남편.

오늘 학교 방과 후 수업시간 아이에게 뜻밖의 사건이 있었기에 그걸 알리고자 그와 통화를 해야만 했다.

난 수화기너머 상대에게 면접할 때마다 이제 겨우 초등1학년인 아이를 델고 공부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아들이 생전 안 하던 행동을 학교에서 했기 때문이다.


나: 주산시간에 처음으로 한 바닥을 전부 틀렸는데 그걸 보고 판을 교실 바닥에 집어던졌대요.

얘 스트레스받은 거 같아요. 본인이 수학을 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자존심도 상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어디서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하나요? 당신의 수학 선행학습이 아이의 학습태도에 해가 되니 이제 제발 그만해요.


X남편: 알겠는데,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쏭엄마가 애한테 학습을 제대로 안 시켜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요.


날 탓한다.

왜 초등학교 갓 들어간 아이를 붙잡고 학습을 못 시켜서 안달인 걸까?


나: 난 초등 1학년이 그렇게 뭔가 학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양육자인 내 말을 따라줘요.

학습보다 내 아이의 정서와 인성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2주에 한 번 하는 면접 하면서, 꼭 그렇게 영상을 계속 보게 해야 하나요?


X남편: 아니 그럼 뭐해요? 이제 공부도 시키지 말라면서.


나: 공부랑 영상 아니면 할 게 없나요? 몸으로 뛰면서 놀아주고 남자끼리만 할 수 있는 대화도 나누면 되잖아요. 쏭이 코밑에 거뭇거뭇 수염도 올라오고 있어요. 아이랑 이야기할 게 정말 없나요?


X남편: 알겠어요. 노력하겠는데 그렇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아요.  나도 애 아빠예요.


나: 뭐라고요?


X남편: 나도 애 친아빠라고요.


나: 당신이? 당신이 친아빠라고 나한테 지금 말하는 건가요?


X남편: 나참~. 내가 애 친아빠이지 그럼 뭔가요?



그의 몰지각한 이 한 마디가 참고 살아온 내 속을 들쑤셨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도 맞다.

유전학적으로도 맞다.

서류상으로도 타고 올라가면 친아빠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무리 그게 옳고, 사실이고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 짓거리를 했으면 양심상 내 앞에서 그렇게

큰소리를 뻥뻥 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택시 안이라 운전하시는 기사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으나 두 번이나 내게 친아빠임을 강조하는 그를 보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 이보세요. 내 앞에서 애 친아빠라고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이 아들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이혼만은 참아달라고 각서까지 쓰는 내 앞에서

"나는 내 개인의 인생과 내 행복이 더 중요해요" 라며 이혼을 강요했나요?


X남편:... 내가 언제 그랬나요?


나: 설마 그게 기억이 안 난다고요? 그 좋은 머리로? 당신의 그 말에 아빠라는 사람이 왜 이리 이기적이냐고 내가 학을 뗐는데! 결국은 우리 부모님까지 모셔와서 그 생난리를 치며 기어이 이혼을 강행하고.

그러고도 지금 네가 친아빠라고 나한테 말하는 거야?


X남편: (뚝...)


상대가 전화를 끊었다. 내가 다시 전화하자, 말 같지 않은 말을 해댔다.


X남편: 과거 얘기 하지 말고, 애 교육얘기만 해요.


뭔 교육! 초등학교 1학년한테 뭔 교육 얘기를 심각하게 할 게 있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서울대를 못 간 게 평생 한이 맺힌 그는 이혼 후 아이에 대한 정서 걱정보다 교육에 혈안이었다.

이쯤되면 전남편은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게 미안하지 않은가 보다.


이해하기 힘든 그의 이기심에 속에서는 천불이 나지만 앞으로 말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부질없다.

말한들 무엇하리.

아니 내가 화낸 들 무엇이 달라질까.

그냥 그 정도의 인간이니 변치 않고 모르쇠를 취하며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게 아닐까.




냉정히 생각했다.

그리고는 돈 욕심에 양육비 1원 한 푼도 내지 않는 친부라는 인간에게 아이를 편히 면접시켜주는 것이 자식을 위한 나의 배려와 인내라는 걸 카톡으로 똑똑히 알려주었다.


지금 아이를 편히 볼 수 있는 건, 친아빠라서 당연한 게 아닙니다.
당신은 이미 친아빠라면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짓들을 저질러 버렸잖아요.
당신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 외치면서 아이에게 상처를 줬잖아요.
엄마아빠는 왜 헤어졌냐며 울며 묻는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나요?
친아빠라는 주장은 적어도 내 앞에서 할 말은 아닙니다.
날 더 자극하지 마시고, 지금 아이와의 면접이 아이를 위한 나의 배려라는 걸 잊지 마세요.
나에게 강한 모성애가 있다는 걸 이용한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그렇다면 양육비도 안 내는 아빠에게 아이 면접을 시켜주는 이유도 잘 아시겠죠?


내 지인과 몰래 바람을 피운 채 이혼을 도모한 일

날 속이고 내 재산을 모조리 가져가고, 내 부모 앞에서 날 욕보이며 부모-자식 인연을 끊게 한 일

본인 재산이 두둑하면서도 돈 욕심에 아이 양육비를 내지 않는 일

그럼에도 내가 아이 면접을 편히 시켜주는 것


오늘 행동하는 걸 보니 이 모든 게 이 인간에게는 당연한가 보다.

난 성인군자가 아닌데 말이다.

그저 철없는 부모의 이혼으로 내 아이의 상처가 더 깊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취하는 엄마의 사랑이자 죄 없는 자식을 위한 도의이거늘.


과거의 나는 자식에 대한 걱정과 감정에 눈이 멀어 현명하지 못한 엄마였다.

이혼 후 5년이 흘러, 여전히 2주마다 다가오는 불편한 대면과 가끔씩 소통해야 하는 자녀 이야기 때문에 껄끄럽긴 하지만 이젠 상대방을 대하는데 냉철하고 담담해졌다.

어제처럼 자신의 권리를 존중해달랍시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해대도 순간 욱하고 올라오지만 20여 분이 흐르고 나면 다시 차분히 가라앉는다.




세상에는 여러 양상의 인간이 존재한다.

거친 삶을 살아온 난 '용서'에 대한 개념을 종종 고민한다.

인간이 저지른 일 중 진정 용서가 안 되는 일도 있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이제는 예수님의 죽음을 떠올린다.

당신을 의심하고 시기하고 잔인하게 당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웠는데도 그런 인간을 용서하고 사랑해주시는 주님을 그리며, 오늘도 그분의 발꿈치만이라도 따라가고자 무던히 애써본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가끔 산책을 하거나 계절의 변화를 보면 인간의 삶이 자연과 몹시 흡사한 것 같다.

나무는 사랑과 관심,거름을 주며 가꿀 때 꼿꼿하고 높이 자랄 수 있다.

뜻하지 않게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서 가지 위 풍성했던 나뭇잎들이 모두 떨어지기도 하고, 싸늘한 가을이라는 계절과 혹독한 겨울이 매년 찾아오지만, 그렇게 한 해를 버티고 나면 나무는 더 깊게 뿌리를 박는다.

나무는 해를 넘길 때마다 나이테가 하나씩 늘면서 시련의 승리를 새긴다.


사람의 인생도 같은 이치 아닐까.

살다가 누군가 용납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나의 아팠던 곳을 콕콕 찔러대기도 하지만 이제는 전처럼 열변을 토하며 싸우거나 슬픔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엄마로서 살아온 인생이 부끄럽지 않기에.

미련하고 어리숙하긴 해도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내 모든 걸 포기하고 내던졌던 엄마이니까.




창 밖 노을을 보며 내 감정을 들여다본다.

누군가에게는 날 무너뜨린 약점이기도 하지만 나를 다시 일으킨 강력한 힘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다.

나의 사랑, 슬픔, 분노, 신념 등 모든 감정과 사상은 부모-자식 간의 사랑에 있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나보다 세상을 몇 년 더 살아오신 지인이 내게 말씀하셨다.


"리나작가님은 남들이 쉽게 겪지 못하는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으셨으니
이제 행복한, 좋은 모습만 보이셔야 해요.
긍정적이고 더 잘 강해지셔야죠."


상대가 변하지 않으면 나아지려는 내 발목을 붙들기도 하고, 날 예전 기억으로 끌고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지난 상처가 슬쩍 아리기도 하고 잠시 기분이 잿빛처럼 변한다.

나도 평범한 인간인 걸 별 수 있나.

하지만 5년 전보다, 3년 전, 그리고 작년보다 지금 인면수심을 대하는 내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옛 생각에 억울함이 고개를 쳐들고 불쑥 올라왔었는데 이젠 그러진 않으니 말이다.


새해가 되어 '나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단단해져야지'를 되새기며 나이테를 한 획 쓱 그어본다.

이번 일처럼, 때론 내 새끼 나무를 어찌 키워야 할까 근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간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었던 햇살과 양분이 분명 제 열매를 맺어 줄 거라고, 내 아이와 나를 믿어본다.  

또한 지금의 나는 억울한 과거에 얽매여 감정을 허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우쳤기에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살면서 터득한 진리이다.  


- The End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매거진의 이전글 치마를 입으니 이런 게 다르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