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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Feb 25. 2024

영화 '파묘'가 오타쿠를 자극하는 방식

오타쿠들이여 일어나라!

요즘 가장 핫한 영화를 꼽으라면 아마 파묘가 아닐까. 파묘는 대중적이지 않았던, 대중적일 수 없을 것 같았던 오컬트 장르물을 메인 스트림으로 이끌어낸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기도 하다. 이전 작품과 달리 '한국 정통 오컬트' 작품으로 소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호기심을 가지게 된 듯하다.


나는 영화평론가도 아니고, 영화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것도 아니기에 평가를 내리긴 애매하다.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을 꼽자면 '오타쿠의 시선에서 본 파묘' 정도 될까. 여기에서 오타쿠란 어떤 콘텐츠가 취향을 저격하면 깊숙이 파고들어 여러 해석을 즐기며 심장이 뻐렁치는 그런 사람을 의미한다. 개봉 첫날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나는 나를 포함한 오타쿠들에게 파묘가 일으킨 어떤 덕심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나 역시 오타쿠이기에 그 감정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과 해석본을 돌려보며 이야기하는 게 묘한 쾌감과 즐거움을 주었다. 콘텐츠가 개연성 높은 스토리로 완성도 있게 만들어지면 오타쿠들 사이에서는 재해석, 2차 창작이 이루어진다. 이를 기반으로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바이럴이 이루어지고, 오타쿠들은 n차 관람을 하며 콘텐츠 붐이 일어난다. 파묘는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작품이었기에, 어떤 포인트들이 그런지 자칭 오타쿠의 시점으로 한번 정리해 보았다.


첫째, 모든 것들에 장치 설정이 되어있다.

파묘가 개봉한 이후 트위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벌써 수많은 글이 돌아다니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 인물의 캐릭터,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세밀히 설정된 장치를 해석하는 글이다. 예를 들면 주인공들의 옷과 머리 색이 청룡, 현무, 주작, 백호인 사방의 색을 활용했다는 점, 영화 포스터의 주인공들이 동서남북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오타쿠의 심장을 뻐렁치게 만드는데 충분하다. (*이게 왜 스토리와 연계된 것인지는 직접 영화를 보고 확인하시길!)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이런 장치들은 몰입을 높이고 해석하는 재미를 주기 때문에 그 분야를 속속들이 파고들어 해석하길 좋아하는 오타쿠들에게 딱이다. 그리고 감독을 포함한 창작자들이 이 작품에 정말 '진심'임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캐릭터들이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포스터.


둘째, 모든 걸 다 보여주지 않는다.

2차 창작에 불을 지피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파묘 속 화림과 봉길의 관계성을 예로 들어보자. 둘의 관계성은 그 자체로 오타쿠의 심장에 화염을 방사하지만(카이옌 타는 능력 쩌는 스타일리시한 무당 화림과 신병에서 자길 구해줬다는 이유로 화림에게 충성하는 봉길.. 이건 보는 사람 미치게 하는 거야...) 둘은 직접적으로 서로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봉길의 충성은 존댓말이 디폴트지만 위급한 상황에 화림에게 반말을 하는 것으로, 굿이 있기 전 화림의 컨버스 신발 끈을 무릎 꿇고 묶어주는 것으로 보여진다. 만약 봉길이 화림에게 사랑 혹은 동경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파스스 식는다. 은근히 보여주는 건 오타쿠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마음이 안달 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래서 말인데 이 둘 관계성으로 프리퀄 어떻게 안될까요 감독님...


셋째, 모든 인물의 서사가 있다.

스토리가 탄탄하려면 인물의 서사가 탄탄해야 한다. 파묘는 영화에 나온 4명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서사를 보유하며, 누군가의 서사로 인해 그게 뭉개지지 않는다. 두 번째 항목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걸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그중 주요 인물은 최민식이기 때문에 최민식의 동선을 따라가는 장면이 많지만 그럼에도 타 인물의 서사가 뭉그러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며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영민하게 잘 짜인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기존 무당에 대한 편견을 아예 깨는 'MZ 무당'을 캐릭터 전면에 세웠다는 점,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 오컬트 소재를 적극 활용했다는 점 등등 많은 요소가 있다. 어쩌면 위에서 꼽은 항목들은 '오타쿠를 자극하려면 이런 포맷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적 구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엔 장재현 감독 역시 일면의 오타쿠 본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듄을 제작한 드니 빌뇌브 감독 역시 덕심 하나로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냈는데, 이렇게 오타쿠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오타쿠의 마음은 행복하고 기쁩니다. 자칫 이번 글로 인해 '파묘는 오타쿠만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인가 봐'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다는 노파심이 든다. 아닙니다! 위에 쓴 내용은 '웰메이드 영화'가 만들어지는 조건과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기에 모두가 인상 깊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기에 추천합니다! (오타쿠들이여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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