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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Feb 24. 2024

슬럼프더라도 어쩌겠어요, 걷는 수밖엔.

한 걸음에 집중하기.

어쩌면 작정하지 않은 글이 더 멋스러울 수 있다.

어쩌면 작정하지 않은 글이 나를 더 잘 드러낼 수 있다.

어쩌면, 작정하지 않아도 충분할 수 있다.


'많이 먹어야지' 작심하면 오히려 속이 부대끼는 것처럼, '잘해봐야지' 마음먹으면 기이한 포인트에서 절게 되는 발표처럼 글도 마찬가지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자 마음먹고 손가락에 힘을 주다 보면 어느샌가 다른 생각에 한 발이 풍덩, 의도하지 않았던 논리에 한 발이 풍덩 빠져 결말에 이르렀을 땐 두발이 온통 진흙에 잠겨있다. 무엇에 대해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했을 때는 커뮤니티를 뒤지고 최근의 기억을 복기해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점으로 돌아와 실망하기도 한다. 그럴 땐 힘을 빼고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쓴다. 내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소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잠깐 든 건망증 같은 거라고, 쓰는 대상과 쓰는 법을 잊었을 뿐이지만 곧 돌아올 거라고 다독여보기도 한다.


지난 하루로 극복한 거 아닌가 싶지만 다년간의 경험에 의해 슬쩍 자만심을 가지면 바로 습격하는 게 슬럼프라는 것을 안다. 슬럼프는 내가 한눈을 팔길, 본인에게 가하는 망치의 강도가 약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애써 모른 척 필사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기억이 안나는 시절부터 습관처럼 해온 글쓰기를 포기하는 건 쌓아온 시간을 모독하는 일이다. 이 불안과 불만족은 더 나아지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걸 알기 때문에 욕심을 덜어내면 덜어냈지 대상마저 끊어내고 싶진 않은 것이다.


한 걸음 다가갔다 생각했지만 발등의 반 정도는 찐득한 늪에 빠져 발을 쉬이 뗄 수 없는 느낌이다. 한 걸음만 더 가도 안심일 것 같은데 점성에 발이 묶여 허벅지에 힘을 줘도 아주 조금 떨어질 뿐이다. 이럴 때 주저앉아버리면 엉덩이도, 등도, 끝내 머리도 바닥에 들러붙어 거기에서 멈춰야 한다. 발만 닿아있는 지금이라도 아주 조금씩 떼어낼 수 있다면 그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다. 이다음 발걸음이 이전보다 보폭이 좁더라도 일단 떼어내고 그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나는 이 글도 그 발자국 중 하나라 생각한다. 작정하지 않고 의식대로 글을 쓰고 수정한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불완전하고 심지어 허접하다 느껴져도 발을 떼고자 노력한 흔적은 여실히 남는다. 그걸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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