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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Feb 23. 2024

층간소음은 이해하는 게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래야 화장실에서 소리 높여 노래도 부르지

아파트에 살면 필연적으로 윗집과 옆집, 아랫집을 알 수밖에 없다. 이웃사촌도 옛말인 시대에 어떻게 알게 되냐고요? 층간소음 덕분이지요.


10년도 넘은 옛 아파트는 방음이 잘 되는 편이 아니다. 그때도 부실공사는 여전했는지 시멘트를 뚫고 오는 위층 귀가 소리, 옆집 아이들이 소리 높여 떠드는 소리가 스테레오 사운드로 들린다. 아마 우리 집이 사람 사는 집 치고(?) 너무 조용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겠다만.. 오늘은 봄방학이 시작했는지 초등학생 아이들이 사는 옆집에서 뛰노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그렇다고 뛰쳐나가 뭐라 할 생각은 없다. 아이들은 뛰놀아야 하는 존재고, 저 때 놀지 못하면 어쩌면 영영 뛰어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로 정답게 인사하는 사이는 아니라도 오고 가며 아이들의 모습을 본 적 있다. 멋쩍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본 아이들은 아이들 자체였다. 언성을 높이고 다툼을 일으키는 건 늘 어른들이지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다.


꽤나 포용력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했지만 예민했던 시절이 있다. 엄마도 나도 소음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들이라 고릴라처럼 쿵쾅거리며 다니는 윗집을 감내하지 못했다. 한 번은 위층 남자가 술에 취한 채 새벽에 우리 집 벨을 눌러 문을 열어달라고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심약한 내가 두드러기가 난 적도 있었다. 요즘은 층간소음 유발자와 피해자가 면대면을 하면 칼부림 같은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관리사무소에 이야기를 전했는데, 연락을 받은 위층이 단번에 내려왔다. 갓난 배기 아이를 안은 딸과 그 엄마가 내려와 자연스럽게 각 집의 모녀가 팀이 되어 맞붙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잘못한 건 그쪽인데 사과를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닌가'하고 몰아붙였고 그 집은 그 집대로 '그 정도도 이해 못 해주냐'며 팽팽히 맞서다 별 성과 없이 그대로 헤어졌다. 그 이후로 소음이 날 때 위층에 올라가도 문도 열어주지 않고 모른 척 일관하더라.


몇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니 어느 정도는 초탈한 상태가 됐다. 사소한 소음 외에도 '이러다 아파트 무너지는 거 아닌가'싶을 정도의 인테리어 굉음을 견딘 적도 있고. 그 모든 것들에 핏줄을 세우고 되니 마니, 시끄럽니 마니 하는 것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젠 모든 게 다 그러려니 싶다. 몸은 소음에 영 적응하지 못한대도 의식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 어느 정도는 견딜만하다. 꼭 내가 나서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쫓아 올라가는 편의도 누릴 수 있다. 이런 나는 치사한 걸까, 아니면 한 명이라도 뭐라 하는 사람을 줄이는 거니 장한 일을 하는 걸까.


아이들의 봄방학이 오면 오는 대로, 명절이면 명절이라 시끌벅적한 대로 위, 아래, 옆에서 시간이 가는 걸 느낀다. 나와는 무관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느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 나름대로 즐기면 되고. 또 그렇게 하니까 샤워할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내 흥얼거림을 누군가는 참아주는 게 아닐까.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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