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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Feb 28. 2024

19화. 캥거루족이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

절대 (당분간) 안 떠나!!!!

앞서 캥거루족으로 사는 불편함 혹은 고충에 대해서 다채롭게 이야기했다면 이젠 장점을 이야기해 볼 차례다. 이런저런 불평불만에 침을 튀기더라도 집을 벗어날 수 없는 건 나름대로 장점이 선명히 있기 때문이겠지. 장점인지 현실적인 타협점인지 헷갈리긴 하지만 캥거루족으로 살면 이런 점은 괜찮다 정도로 보면 좋을 성싶다.


첫째, 생활비 걱정이 덜하다.

캥거루족으로 사는 것의 장점 중에서는 경제적 문제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엄두도 안 나는 집값과 관리비, 수도세, 난방비 등 수많은 지출 공격에 안전히 대피할 수 있는 나의 홈스윗홈, 아니 부모님의 홈스윗홈. 전월세 피해 사기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는 것도 원치 않았던 장점 중 하나다. 돈이 곧 생존의 문제로 직결되는 요즘 사회에 회사를 그만둬도 굶어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최고의 장점이자 혜택이 아닐까. 


둘째, 식사의 퀄리티가 높다.

자취생들은 "과일 먹은 지 n개월이 넘었다", "김치가 없어 단무지랑 라면 먹는다"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한다. 외식을 하더라도 가격, 영양, 퀄리티, 양 모두를 부합하는 메뉴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본가에 거주한다면 이럴 일은 거의 없다. 급식 못지않게 건강식으로 편성된 식단이 꾸준히 유지되는 곳이 바로 집이다. 엄마의 요리 실력도 무시 못한다. 내가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려 해도 어머님들이 세월을 통해 쌓아 온 짬바는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물론 어머님들이 모두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조리도구나 양념장도 다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근사한 요리를 시도해 볼 수도 있다.(다만 부엌을 더럽혔을 때 엄마의 등짝 스매싱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


셋째, 무서울 일이 덜하다.

혼자 살면 무서울 일이 많다. 한 친구는 1층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적응할 때까지 몇 달간은 사람 발소리만 들어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고 한다. 특정 성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표적 범죄나 묻지 마 범죄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다 보니 혼자 사는 여성의 불안감은 상당히 크다. 이럴 때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은 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되고 범죄 예방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이 외에도 무서운 영화를 보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도 잠을 뒤척이는 쫄보에게 안방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는 큰 위안과 안정감을 준다.


넷째, 언제든 대화할 상대가 있다.

요즘처럼 회사를 다니지 않을 땐 입을 뗄 거리가 없다. 신나거나 울적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는 누구에게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는데, 혼잣말을 하기엔 영 적적하다. 카톡으로 이야기하기엔 생동감이 부족하고 인스타로 공유하기엔 대단치 않은 일일 때 내 얘기를 들어주고 반응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특히 허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더욱 좋다. 타인이라면 입을 뗀 게 멋쩍어지는 아주 소소한 일상이라도 가족들 앞에서는 재담 아닌 아무 말 대잔치를 맘껏 펼칠 수 있다. 이는 사회성은 물론 사용하지 않으면 현격히 떨어지는 대화 스킬을 유지하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다섯째,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

혼자 산다면 쉬이 무너질 수 있는 생활 패턴도 가족과 함께 산다면 꾸준히 유지가 가능하다. 자취를 시작하면 제일 빨리 망가지는 게 수면 패턴이고 이에 따라 식습관, 운동 등 나머지 일과가 도미노처럼 무너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면 알람을 끄고 다시 누웠다가도 다른 사람이 씻는 소리에 몸을 일으키게 되고, 우울한 마음에 하루종일 방안에 나를 가두다시피 해도 가족들이 오고 가는 소리에 시간의 흐름이라도 알 수 있게 된다. 패턴을 유지한다는 건 나의 통제력, 더 나아가 삶의 질에도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건이다.


쓰기 전엔 뭐라도 쥐어짜야 나올 것 같던 캥거루족의 장점이었지만 쓰다 보니 내심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 많았나 보다. 가족의 성향이나 생활 패턴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끼는 장점은 위의 다섯 개가 제일 크다. 내가 6년간 왕복 3시간을 감내하며 출퇴근을 하게 만든 장점이자, '자취'를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 이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만, 그런 생각보다는 지금이라도 저 장점을 그러쥐고 자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지. 하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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