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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r 06. 2024

20화. 쿵하면 짝하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평생을 살아도 진짜 안 맞아!

사회에 나가서도 겪는 일이지만, 때로는 가족들과 생활하면서 서로가 얼마나 안 맞는지 깨닫고 놀랄 때가 있다. 이 정도 같이 살았으면 서로 어떤 성향인지 알만하고 예측도 갈 텐데, 쿵하면 짝이 돌아오긴커녕 꽹과리 소리만 요란한 격이라니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나 싶다. 이쯤 되면 부모와 자녀 역시 혈족 관계라기보단 랜덤하게 배정된 타인이 아닐까 싶기도. 우리 가족 역시 그런 것들을 선명히 느낄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빠는 엄마나 내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자고 싶을 때만 늦게 온다. 또 엄마가 겨울 내내 벼르던 이불 빨래를 힘겹게 마치고 나면 갑자기 몸살이 나서 땀으로 이불을 흠뻑 적신다. 엄마는 내가 일찍 일어날 때는 늦잠을 자고 내가 늦잠을 잘 때는 일찍 일어난다. 내가 시간이 많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일정이 있거나 바빠질 때만 와서 "엄마랑 어디 나갈까?" 하며 치근덕거린다. 나는 엄마가 청소한 후에 꼭 뭔갈 먹다가 바닥에 질질 흘리고, 엄마가 가스레인지를 닦으면 기름이 죄다 튀는 요리를 하고 엄마가 세탁기를 돌리기 시작한 후에 빨랫감을 만든다.


이런 일을 하도 겪다 보니 징크스가 되었다. '설마 이번에도 그럴까'하면 대부분은 맞아떨어진다. 같은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도 예정된 결말처럼 어긋난 채로 경험이 굳어진다. 생각해 보면 방지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내 행동의 일부도 통제할 수 없는데, 가족이라도 독립된 생명체인 누군가의 생각 혹은 행동을 통제하려는 것은 엄청난 월권이다. 서로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하고 벌이는 일도 아닌데 자꾸 통제할 수 있다고, 통제하고 싶다고 생각하니 문제가 되는 거지. '안 맞는' 게 아니라 어찌 보면 상황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다행스러운 건 그렇게 어긋나다가도 가끔 쿵짝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 갑자기 빵이 너무 먹고 싶다"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집에 남겨둔 빵도 없었고 나가기도 애매했다. 근데 이럴 때마다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빵을 사 왔다! 원래 무언갈 사 오는 타입도 아니고 엄마가 언질을 준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가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쌀쌀하니까 집 가서 빨리 따뜻하게 있어야지' 생각하면 이미 누군가가 내 방 보일러 혹은 온수매트를 틀어두었다. 어긋난 상황들처럼 별생각 없이 한 일이라도 우연의 기저에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 빵을 좋아하는 엄마를 아니까, 밖을 내다보니 유독 썰렁한 것 같으니까 하는 마음들이 우연을 가장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내가 쿵했을 때 옆에서 꽹과리를 쟁쟁거리며 치든 태평소를 우렁차게 불든, 나를 복제한 클론들과 살지 않는 한 이 모든 우연들은 때로는 삐끗거리고 때로는 맞아떨어지며 희로애락을 선사할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각자의 악기를 들고 리듬이라도 맞추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살다 보면 '안 맞는' 게 '너와 내가 어우러지는' 게 될지 어떻게 알겠어요.


*일상의 한 장면

(저녁 준비를 일찍 했는데 아빠에게서 연락이 없는 상황)

엄마: 꼭 일찍 준비하면 늦게 와, 하여간 진짜 안 맞아!!

나: 그럴 거면 차라리 일찍 오라고 연락을 하든가!!

엄마: 그럼 아빠 또 신경 쓰일 거 아냐!

나: (어쩌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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