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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r 13. 2024

21화. 신부는 내가 할게, 신랑감은 누가 정할래?

비혼에 박차를 가하는구나

20대 초부터 대쪽같이 '비혼'을 주장해 온 나의 기세가 조금씩 사그라들자, 그걸 누구보다 반기는 건 아무래도 가족들이다. 부모님은 결혼에 필요한 3가지, 즉 연애, 돈 모으기, 이성에 대한 열린 마음 중 어떤 것도 갖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다그치거나 망신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본인들이 부재할 때 혼자 남겨질 내가 안쓰러워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연애는 할 수 있지 않냐'는 말을 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팽하던 내가 최근 지인들의 결혼 러쉬를 보며 '와, 저렇게 살아도 재밌겠다'하는 마인드를 갖게 되자 조금 더 화색을 띤 얼굴이 되었을 뿐.


하지만 혼자 마음먹는다고 안 되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연애를 하지 않는 기간 동안 쌓인 빅데이터는 '이건 안돼'로 꼽는 항목들을 대거 생성했으며 이성을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바꾸어놓았다. 예전에는 잘생긴 사람이면 오케이였지만 이제는 잘생긴 데다 인성도 좋고 사랑받으며 자랐으면 좋겠고 블라블라... 주변에서는 '잘생긴 건 그렇다 치고 좋은 사람 자체가 없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여러 콘텐츠에 나온 괴랄한 사연들을 보며 오히려 내 요구조건은 줄줄이 늘어나기만 했다. 이래서 결혼은커녕 연애나 하겠나...


이런 심란한 마음에 황당함을 보태는 건 바로 가족들이 꼽은 내 신랑감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여기에 언급된 연예인 및 그분들의 부모님께는 가족들이 나를 너무 사랑해 객관성을 다소 잃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모든 부모들은 본인 자식이 제일 예쁘고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런 장광설로 서두를 연 것은 우리 엄마가 꼽은 나의 신랑감이 바로 김수현과 박보검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티비를 보다 이 둘 중 한 명이 나오면 "수현아, 우리 00이 좀 데려가렴" 혹은 "보검아, 우리 00이 좀 만나주렴"한다. 무슨 심청이도 아니고 방에 가만히 있는 딸을 언제라도 데려갈 수 있는 포대자루로 생각하는 건지... 내 의지는! 내 의향은! 물론 김수현과 박보검이라면 오케이겠지! 그렇지만 꼭 그렇게 말해야 해! 죽을 때까지 사적으로 만날 수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전혀 그럴 일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보검아 연락해 내 번호는 010...


엄마뿐이 아니다. 언니랑 이야기를 하다 들은 건데, 형부가 "처제는 옥택연이랑 결혼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단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저번에 둘이 티비를 보다 광고에 옥택연이 나왔는데 처제는 저렇게 말끔하게 생긴 남자랑 결혼을 할 것 같다고 했다는 거다. 소름이 돋는 건 옥택연이 2PM으로 데뷔를 한 이래 내 이상형은 꾸준히 그였다. 현실과 관계없이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염불을 외며 3살 먹은 조카에게 "이모 옥택연이랑 결혼할 것 같아?"라고 물었을 때, 종알종알 말 많던 조카가 입을 꾹 다물어버린 게 함정이긴 하지만... 택연오빠 연락 주세요 제 번호는 010...


그나마 언니와 아빠는 현실적인 편이다. 왜 그런고 하면 일단 언니는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여기에서 오해가 발생할 수 있어 미리 말씀드리자면 형부가 못생겼다는 뜻이 아니다). 언니는 간간히 네가 너무 잘생긴 사람을 만나면 본인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부담스럽다. 잘생긴 사람 안 만나면 안 될 것 같다. 아빠는 신랑감 자체에 대한 생각은 크게 없는 듯하다. 다만 내가 이성을 볼 때 외모 취향을 의아해할 뿐. 아주 어렸을 때 첫 덕질로 젝키의 강성훈을 좋아한 적이 있는데, 내가 강성훈을 보고 열광하자 "쟤를 좋아한다고?" 하며 어리둥절하던 아빠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이후로 수없이 이어진 내 최애 리스트 중 아빠가 납득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흥). 이 둘은 외모보다는 '저렇게 까탈스럽게 구는데 어련히 괜찮은 사람 만나겠어'하는 생각인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수많은 남자들을 제치고(?) 내가 누굴 만나게 될까 궁금하다. 아니, 만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내가 요즘 연애하고 싶다고 부르짖는 사람은 나보다 9살이 어린(미성년자 아님), 말도 안 되게 아름답고 따뜻한 성정을 지닌 아이돌인데... 이건 뭐 비혼 하겠다는 말을 돌려하는 것도 아니고. 뭐 꿈이라도 크게 꾸면 어떤가요. 하지만 이렇게 구구절절 쓰고 나니 더 답이 없게 느껴진다. 눈물이 차올라 고갤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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