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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r 20. 2024

22화. 기혼자+학부모 첫째 vs 비혼주의자 둘째

누구의 말이 맞다기보다는...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여기에도 통용되는지는 몰라도 내 친구들은 나처럼 비혼주의 차녀에, 위에 기혼자+학부모인 언니 혹은 오빠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대화를 하다 보면 조카 자랑도 슬몃 나왔다가 언니 혹은 오빠네 가족이 본가에 방문했을 때 생기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본인이 캥거루족의 경우, 언니 혹은 오빠네 가족이 방문한다고 하면 대대적인 집청소 혹은 준비 태세에 강제 동원되는 것은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화 소재다.


우리 집의 경우엔 평소에도 내부가 청결한 편이기 때문에 언니가 온다고 해서 따로 집을 정리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한창 호기심이 많은 조카의 눈높이에 맞춰 작은 장난감을 넣을 수 있는 스피커 입구는 종이로 막고, 고대 유물처럼 손도 안 대던 보일러의 온도를 적정 온도로 맞춘다. 내 방에서 조카의 손이 닿을만한 위치에 있는 전자기기는 책꽂이 위로 올리고 언니가 두고 갔던 조카용 바디워시와 낮잠 전용 담요를 꺼내둔다. 여기까지가 1차 준비 완료다. 진짜 준비는 2차인데, 이른바 '식료품 털어오기' 단계다. 원체 먹는 것만 먹고 양도 많지 않은 우리 가족은 3인 가족이라 해도 생활비가 많이 나오지 않는 편인데, 언니가 방문한 달은 카드값이 수직 상승한다.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답게 언니네는 먹고 싶은 메뉴가 정해져 있는 편이고, 엄마는 그 메뉴뿐 아니라 '형부를 접대하기에 그럴듯한' 반찬들을 준비하기 위해 박스 두세 개에 달하는 식재료를 주문한다. 누군가의 생일이라도 겹칠 경우, 나는 마켓컬리 배달원 마냥 농수산물센터, 마트에서 산 식재료를 차로 실어다 집에 내려놓곤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번거롭긴 해도 언니가 올라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그 김에 다 같이 먹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면 번거로움이야 크게 불편하지 않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엄마겠지. 모든 식재료를 요리해야 하는 것도, 조카가 오면 온몸으로 놀아주는 것도, 언니의 상태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모두 엄마니까. 공교롭게 언니네가 방문한 이후 컨디션이 악화되거나 없던 잔병치레를 하는 엄마를 볼 때면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본인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고 조카 혹은 언니만을 살피다 겉옷도 제대로 안 입고 외출을 하거나 무리를 한 엄마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그 횟수가 잦지는 않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체력을 보이는 엄마가 걱정되는 거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식 입장에선 당연한 것일 수도.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상황에 대해 격화된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많다. 각 집안마다 부모님이 애를 봐주는 정도, 주기와 기혼 장녀 혹은 장남의 방문 횟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로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친한 언니의 친구들은 '본인들이 좋아서 애를 낳았으면서 왜 엄마를 고생시키냐'는 입장이었고, 친구 중 한 명도 조카를 어머님이 거의 다 키웠다면서 그것 때문에 언니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했다. 차녀 혹은 차남 입장에서는 점차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언니 혹은 오빠의 모습에 대한 분노로 바뀔 수 있고, 장녀 혹은 장남 입장에서는 '내가 봐달라고 부탁한 거 아닌데'라고 할 수 있는 문제다. 기혼 장녀(장남의 경우도 있겠지만 대체로 장녀들이 엄마에게 애를 맡기는 경우가 더 자주 보인다)와 비혼 차녀 사이의 갈등은 알게 모르게 왕왕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엄마와도 언젠가 이에 관해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위에서 언급한 차녀들의 반응에 대해 '그럼 애를 어린이집에 맡길 순 없지 않냐, 부모가 봐주는 게 여러모로 서로 안심도 되고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의 경우엔 언니가 떨어져 살다 보니 조카를 봐주고 싶어도 봐줄 수 있는 기회가 적기도 해서 보인 반응일 수도 있다. 나는 장녀 혹은 장남의 사정이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결혼하지 않은 둘째 입장에서 볼 때 다소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가끔 방문해서 고생시키는 첫째보다 나처럼 집에 붙어 지내는 둘째가 더 이기적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성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가족 구조, 딸이 엄마에게 갖는 유별난 감정이입 등 사회심리학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보니 생각할수록 아주 복잡한 문제다. 각자 입장이야 다 다르니 딱 이렇다! 고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갈수록 이런 상황을 더 빈번하게 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마 인터넷상에도 나 혹은 내 지인들의 입장에서 본인만의 생각이나 느낌, 가치관 등을 가진 분들이 많으실 것 같다. 그분들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고 싶다. 이런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는 게 현명한 건지. 혹시 이 글을 읽고 내 얘기다, 싶은 분들은 어떻게 상황을 헤쳐나가고 계신지 댓글로 알려주시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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