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Apr 03. 2024

24화. 금쪽이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님인데요.

우리가 가진 문제 먼저 풀고 갑시다.

금쪽이.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하는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등장한 표현으로, 말을 듣지 않고 사고뭉치인 아이를 지칭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아이들은 서투른 육아의 피해자일 때가 많고, 정작 부모가 금쪽이인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요즘처럼 조부모가 아이를 봐주는 경우가 빈번할 때는 조부모와 부모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갈등이 예기치 않게 문제의 핵심으로 꼽히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럴 때 오은영 박사님은 "금쪽이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님이셨네요!"라고 말하는데, 부모가 되었지만 본인이 아이였을 때 겪었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모습은 답답함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프로그램에서는 자식과 부모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식들은 엉성하게 봉합되었던 과거의 기억을 마주하며 부모가 본인에게 했던 방관, 폭압적 체벌 등의 잘못을 사과하길 바란다. 하지만 대체로 부모들이 보이는 태도는 합리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합리화를 당당하게 하느냐 눈물을 흘리며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당당하게 하는 '정당화'형은 "그렇게 키울 수밖에 없었어!" 하며 당시의 상황과 맥락을 근거로 든다. '내가 이걸로 사과를 왜 해야 하는데?'라는 태도가 특징이다. 울며 이야기하는 '읍소형'은 "엄마(혹은 아빠)도 부모로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우질 못해서" 혹은 "나도 그때 엄청 힘들었어"하며 자식은 궁금하지도 않은 본인의 상처와 힘든 과거를 이야기한다. 이때의 눈물은 자식에게 미안함을 느껴서 나오는 게 아닌, 힘든 시간을 겪은 본인에 대한 연민과 그렇게 힘들게 키워놓은 자식에게서 원망을 듣는 것에 대한 속상함의 표현이다. 이를 보는 자식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이 원하는 건 '미안하다'는 사과 한 번인데, 왜 부모들은 본인의 안쓰러움만 아프고 데인 것처럼 말하는 걸까. 사실을 부정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한 아이돌이 어렸을 때 체벌 당한 것에 대한 아픔을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머님은 즉각 부정하며 오히려 화를 내셨다. 같은 자식의 입장에서 '저 정도면 그냥 말을 안 하는 게 낫겠다'하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였다. 


나 또한 이 모든 과정을 겪어보았다. 좋은 기억도 아니거니와 일기장에나 쓸법한 이야기니 간단히 말하자면 엄마가 한창 혈기 넘칠 시절, 그 시대엔 당연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과한 체벌을 했다. 당시에는 공포감이 지배적이었지만 성장하면서 과거의 감정들이 특정 상황에서 내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걸로 엄마와 정말 많이 싸웠다. 엄마 역시 처음에는 부정했고, 다음에는 읍소했으며 마지막에야 사과를 하며 후회했다. 그 과정은 둘 모두에게 쉽지 않았고, 과정에서 상처받는 게 더 많을 때도 있었다. 


겪어본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만일 본인이 부모와 떨어져 살 수 있는 상황이고, 부모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만한 성격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차라리 문제를 격리하는 게 낫다. 여기에서 문제를 격리한다는 건 일어난 사실을 없던 일처럼 굴라는 게 아니다. 문제의 소지가 어린 시절의 나보다 성인인 부모에게 있음을 인지하고, 스스로 충분히 이해할 시간을 가진 다음 부모에게 남은 몫을 돌려버리라는 것이다. 만일 부모가 그 몫을 모른척한다? 부정한다? 합리화한다? 그건 그들의 일이다. 나는 거기에서 벗어나 지금의 내가 더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데에 집중하는 게 낫다. 깨지지 않을 벽에 덤벼들어 봐야 상처받는 건 나뿐이다. 나의 경우엔 애초에 부모와 계속 살 작정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나았고, 엄마가 본인의 과거를 인정할만한 여지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나마 상황이 진전될 수 있었다.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시간을 겪고 나니 부모 역시 성장한다는 게 느껴지더라. 진정한 성인이란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을 용기가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부모 중에 온전한 성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부모가 마음을 열고 과거를 바로잡는 것은 자신과 자식 모두에게 필요하다.


누군가는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약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짜 나약한 자는 자신을 들여다볼 줄도 모르고, 자신이 행하는 일들이 어디에서 근거했는지 조차 모르는 자다. 내가 내 아이에게 보이는 행동들이나 아이의 특정 행동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유 등을 살펴보면 본인이 겪은 과거에서 유래된 행동인 경우가 다수며, 내 부모와의 관계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도 많다. 그걸 발견했을 때 제대로 풀지 못한다면 그 과거는 계속 발목을 잡고 내 삶을, 더 나아가 내 아이의 삶을 컨트롤하려 들 것이다. 상황에 따라 부모와 화합하며 풀어나갈 수 있을지, 혼자만 감당하고 아픔을 삭여야 하는지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내가 금쪽이라면, 내 아이가 금쪽이가 될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 것. 내가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면 그 숙제는 언젠가 내 아이와의 관계에서 발견될 것이라는 것. 

이전 23화 23화. 귀신아, 물렀거라! 나에겐 엄마아빠가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