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Apr 17. 2024

26화. 전방 100m 앞에 캥거루족 등장했습니다.

저 사람은 캥거루족이다!

누가 그랬던가, 동족은 동족을 알아보기 마련이라고. 내가 백수라면 길거리 사람들 중 백수만 눈에 띄고, 캥거루족이라면 상대의 행동이나 패턴을 보고 캥거루족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거지. 오늘은 캥거루족이 동족을 알아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들을 한번 이야기해보려 한다. 다 제 얘기 아니냐고요? 앗, 들켰네.


첫째, 주말 혹은 공휴일에 부모님과 마트에 온다.

이게 뭐가 큰 대수인가 싶으신 분들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이미 출가외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부모님과 마트에 올 일이 크게 없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먹는 양이 적으니 대형마트에서 뭘 살 필요가 없고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게 간편하며, 이미 가족을 꾸린 사람들은 본인의 배우자나 자녀와 함께 나오면 된다. 마트에서 부모님과 함께 장을 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캥거루족인 이유다. 나 역시 엄마가 대량의 식재료를 구매해야 할 때 반은 자의로(엄마 카드 찬스를 그냥 놓칠 순 없지) 반은 타의로("엄마 혼자 나가면 심심하단 말이야"라는 하소연) 마트를 가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캥거루족을 보게 된다. 간혹 부모 자식 간의 싸움도 볼 수 있다. 저번엔 대형마트 육류 코너에서 자녀 분이 본인이 고른 고기는 본인이 지불하면 되지 않겠냐 하며 엄마와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는데 허헛, 남일은 아니네요.


둘째, 귀가 시간에 민감하다.

이전에 이야기했던 친한 지인의 사례처럼 호적상 같이 사는 동거인일 뿐 서로의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는 가족이라면 모르겠지만 대체로 캥거루족들은 귀가시간에 마지노선이 있는 편인 듯하다.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배려겠지. 대학생 때부터 자취를 하는 이들과 아직 독립하지 못한 이들을 가르는 건 술자리를 뜨는 시간대 차이였다. 자취를 하는 친구들이야 뭐 하나 걸릴 게 없으니 다음날 첫차로 들어가든, 애매한 새벽 2시에 택시를 타고 가든 상관이 없겠지만 자취하지 않는 자들은 눈치껏 막차를 타고 가곤 했다. 사회인이 되어 야근을 할 때도 자취를 하는 이들은 야근 자체가 힘들고 피곤하지 귀가하는 시간대에 대한 부담은 없는데 반해 캥거루족인 사람들은 웬만하면 막차 이전에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더라. 


셋째, 본인의 취향과 부모님의 취향이 은근히 뒤섞여있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취향과 나의 취향이 온전히 같기도 하고, 정반대인 사람도 있으며 경계를 가릴 수 없이 섞여있는 경우도 있다. 자취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온전히 내 취향대로 집을 꾸미고 생활을 꾸리고 싶어서인 점을 생각해 보면 같이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았는지 대강 짐작이 간다. 이런 취향들은 대놓고 구분할 수 있기보단 일상 곳곳에 숨겨져 있는데, 예로 노래 취향을 들 수 있다. 한동안 어머님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스터 트롯을 생각해 보라. 집에서 허구헌 날 임영웅, 이찬원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내적 친밀감이 급상승하며 저 오빠가 내 오빠 같고 그렇다. 처음에는 유치하고 뻔해 보였던 뽕짝 리듬에 어느새 그루브를 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 나 역시 평생 엄마아빠와 붙어살아서 그런가 7080 노래에 꽤나 관심이 깊은 편이다. 최애 곡이 노고지리의 찻잔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지극히 경험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기에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저 사람은 캥거루족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해당 되었던 포인트들을 적어보았다. 분명 캥거루족이야! 하는 기준점이 되기보다는 지금까지 만난 캥거루족의 흥미로운 공통점이랄까. 다른 분의 생각 속에 담긴 캥거루족의 이미지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지도 궁금해진다. 그 안에도 내가 들어가 있으려나 흠흠.


이전 25화 25화. 아빠가 알리에서 비누거치대를 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