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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Apr 10. 2024

25화. 아빠가 알리에서 비누거치대를 샀다.

중국 커머스 플랫폼 유행이 우리 집에 미치는 영향

아빠는 소비지향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니멀리스트도 아닌 중간 어디쯤에 있는 인물이다. 필요하면 물건을 구매하긴 하지만 그 '필요'의 기준이 굉장히 높은 나와 장 보는 것 외의 쇼핑과는 담을 쌓고 사는 엄마 덕분에 아빠는 유달리 무언가를 많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리 큰 것도 아니다. 저번에는 엄마와 내가 쓰는 화장실에 무언가를 놓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길래, 뭔가 싶어 봤더니 바로 비누 거치대였다. 비누를 올려두면 저절로 아래로 물이 쪼록-빠지는 그 비누 거치대 말입니다.


아빠는 그 비누 거치대를 100원인가 1,000원에 중국 커머스 사이트에서 샀다고 했다. 최근 식탁에서 알리를 자주 거론하는 걸 보니, 아마 알리에서 산 물품 중에 하나일 테다. 저번에는 집에 있는 핸디형 청소기가 계속 방전되고 말썽을 부려 "이거 갖다 버려야겠어!!!" 하며 불퉁거렸더니 배터리 교체가 안된다며 (누가 봐도) 중국산인 핸디형 청소기를 새로 가져다주었다. 엄마는 다이슨 짭이라며 킥킥거리고 웃었지만 난 웃음이 나질 않았다. 다이슨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오래갈 수 있는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닌 한철 쓰고 말 내구성의 제품을 계속 집에 들이는 게 마뜩잖아서였다.


여기에서 잠깐 부모님과 나의 소비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물건을 새로 들이는데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다. 앞서 말한 대로 '필요'의 기준이 굉장히 높고 그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가장 내 마음에 들고 질리지 않을 만한 좋은 퀄리티의 제품 '하나'만을 산다. 이렇게 산 제품은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때론 다했더라도) 애정을 갖고 용도에 맞게 충실히 사용한다. 마음에 드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사면 종일 불만족스럽고, 그런 걸로 주변을 채우다가 애정 없이 버리는 것만큼 시간, 에너지, 자원 낭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비가 '싸게 사서 짧게 쓰고 버린다'는 식의 한철 소비다.


반면 엄마와 아빠는 한철 소비에 너그럽다. 때로는 그걸 앞장서 시행하기도 한다. 엄마는 쇼핑과 등을 지고 살지만 가끔 필요에 의해 옷을 사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오랜 시간 나가 많이 입어도 보고 질 좋은 것들 위주로 살펴보라 하지만 엄마는 모든 게 귀찮다며 늘 거기서 거기인 옷들만 산다. 그러고 2~3년이 지나 옷장 정리를 할 때가 되면 안 입을 거리가 되어 이것도 팽, 저것도 팽. 매번 패턴처럼 반복되는 모습에 잔소리를 쏟아부으니 이젠 아예 쇼핑을 안 하겠다고 백기를 들고 섰다. 엄마가 비슷한 품목을 데자뷰처럼 구매한다면 아빠는 보다 실험적인 품목에 열심이다. 저번엔 갑자기 미니 드론을 사 오질 않나 본인은 잘 이용하지 않는 부엌 싱크대에 수세미 거치대를 설치하질 않나, 요즘엔 중국 커머스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그 경향이 더 심해진 듯하다.


내 입장에선 아빠의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소비가 웃길 때도 있지만, 전체 소비시장에서 볼 때는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 다이소의 시장 잠식 이후 알리와 테무가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서 '싸니까 사는' 제품들이 판을 치는 느낌이다. 중국 커머스 업체들은 기업체가 구매하는 게 아닌 개인 도매상이 구매하여 판매하기 때문에 동일 제품이라도 국내 기업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대로 판매가 가능하다고 한다. 게다가 국내 커머스 업계와 경쟁하기 위해 배송까지 무료로 제공한다. 이러니 쇼핑을 좋아하는 이들은 물론 쇼핑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도 '싸니까 한번 사보자'하는 마음으로 불필요하게 소비하는 일들이 잦아진다. 하지만 내가 지불하는 금액이 저렴해지더라도 그 상품이 생산, 배송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원 소모와 환경오염은 그대로 존재하며, 구매 빈도와 양이 증가할수록 자원 낭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더군다나 실제로 받아본 제품의 퀄리티가 낮으니 환불하는 경우도 잦은데, 이 역시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가속화한다. 인터넷에서 본 어떤 사람은 어떤 게 본인에게 맞을지 모르니 동일한 옷의 모든 사이즈와 컬러를 주문해 본인에게 맞는 것만 수령하고 나머지는 환불을 한다고 한다. 본인은 나름의 쇼핑 꿀팁으로 이야기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테무의 슬로건은 '백만장자처럼 쇼핑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싸니까 사는 제품으로 어떻게 백만장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으랴.


'백만장자처럼 쇼핑하라'는 테무의 슬로건.


아빠의 한철 소비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만, 아빠가 사준 비누 거치대는 영 매가리가 없이 물이 조금만 닿아도 혼자 넘어지기 일쑤다. 세면대의 물을 완전히 말려 붙여두어도 몇 번 물기에 노출되다 보면 거치대도 쭉, 그 위에 매달려있던 비누도 쭉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처음에 한두 번이야 적응(?) 차원에서 봐줬다지만 몇 달을 써도 이 모양이니 보다 보면 성질이 뽀록난다.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차라리 그냥 자석으로 달았을 때가 더 편한 것 같기도.. 굳이 천 원, 아니 그 이상의 자원을 들여서 이걸 배송받아 쓰기엔 너무 낭비였을지도.. 핸디형 청소기도 가끔(!) 쓰긴 하지만 덜커덕 거리는 모양새가 영 오래갈 것 같진 않다. 아빠의 알리 쇼핑이 여기에서 멈췄으면.. 그건 너무 아빠의 소확행을 막는 거려나.. 제발 에어컨을 알리에서 산다는 말만 안 했으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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