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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Apr 24. 2024

27화. 진짜 캥거루족이 '문제'인가요?

한국사회가 말하는 캥거루족의 모습.

최근 캥거루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건지 관련 기사가 많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내가 일원 하나이기도 하고 혹여 글의 소재거리를 얻을 있을까 하는 마음에 기사를 훑어보는데 기사 제목들이 하나같이 다음과 같다.


“엄마 배고파 밥줘~”…2030 캥거루족 “딱히 독립할 필요 있나요” (매일경제)

“매달 50만원 적자”... 3040 캥거루 자식에 노후 파산 할라 (조선일보)

"자식 뒤치다꺼리 죽을 때까지 하게 생겼어요" (서울신문)


부모세대의 금융위기를 짚어보며 캥거루족을 딱 한 문장(!) 언급한 기사의 제목은 “노부모 손 빌리는 자식들 ‘금융착취’입니다”(이코노미스트)였다. 기사들의 뉘앙스를 보니 한국에서 캥거루족은 '부모의 노후자금과 여생을 희생하게 만드는 몰염치하고 게으르고 미성숙한 존재'처럼 보인다. 단지 한국만의 상황일까 궁금해 서치를 하던 중 아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표현만 다를 뿐 이러한 청년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일본, 중국,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부모에게 기대 사는 미혼자를 '패러사이트 싱글(Parasite Single)'이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비슷한 이들을 컨라오족(?老族)이라 부른다. 캐나다에선 직장 없이 떠돌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로 '부메랑 키즈', 영국에서는 부모의 퇴직 연금을 축낸다며 키퍼스(kippers)라는 용어가 캥거루족과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 (기사: "마흔 넘은 두 아들 내쫓아 달라" 부양에 지친 어머니 '승소', 아시아경제)



참고로 중국에서 캥거루족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 '컨라오'의 뜻은 '늙은 부모를 갉아먹는'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캥거루족을 일컫는 '패러사이트'가 기생충이라는 뜻이니 해외에서 캥거루족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부모 등골을 빼먹는 무능력한 자식'이라는 느낌이 든다. 부모가 축적한 재산과 시간을 빼앗아간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기사들의 뉘앙스에 근거해 봤을 때 한국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캥거루족이 보다 철부지, 어리광이에 뻔뻔함이 더해진 느낌이다.


한국경제의 캥거루족 관련 기사에 삽입된 이미지.


위의 기사들을 확인하면서 궁금했던 건 '이 기사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쓰여졌는지'였다. 캥거루족이 발생한 원인을 파악한다? 해당 내용이 없다. 캥거루족의 실태를 파악한다? 그러기엔 모집단의 수가 적고 내용이 풍성하지 않다. 기사의 의도는 각 매체사마다, 기자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의 감상은 '캥거루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구성된 내용이 아니며, 이해하려는 의도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해하려고 했다면 발생된 원인이나 왜 유독 최근에 캥거루족이 더 늘어나고 있는지, 그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 등이 적혀있어야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이 캥거루족이 독립하지 않는 이유,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고 있는지 여부 등에 관한 설문조사 내용을 이야기하고 해외에서도 캥거루족이 골칫거리라며 성급히 마무리 짓는다.


이런 기사들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첫째, 캥거루족에 대한 현실 파악을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캥거루족은 경제적, 정서적으로 부모으로부터 독립할 '의지'가 없어 의존을 하는 청년들을 의미했지만 최근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캥거루족은 의미가 혼용되어 있다. 언급된 기사에서는 부모와 함께 사는 자녀를 캥거루족으로 정의하는 경우도 있었고 직장이 없거나 있어도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을 캥거루족으로 정의하거나 아예 성인이 되고도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하는 자녀로 폭넓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렇듯 정리되지 않은 모호한 정의는 그때그때 화자나 상황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캥거루족의 진짜 현실을 알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부모님과의 동거 여부 등의 일방적 기준으로 캥거루족을 정의해버리면 케이스를 일반화하기가 쉽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병환으로 불가피하게 동거를 해야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의 급여를 받기에 생활비를 지원 받는 경우도 있는데 상황 일부만 보고 캥거루족이니, 아니니 하고 판명하는 것은 캥거루족에 대한 피상적인 오해만 불러일으키며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둘째, 근본적인 문제와 해결책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현상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이건 대부분의 사회 기사에서 보게되는 문제점인데, '이런 현상이 있다', '이건 정말 문제다'하는 식의 기사는 사회적 담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다. 문제라면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그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언급해야 그 방향이 옳을지, 저 방향이 나을지 이야기할만한 거리가 생긴다. 하지만 지금의 기사들은 캥거루족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들(부동산 가격, 2030세대가 주로 당하는 전세 사기, 1인 가구의 삶의 질과 치안 문제, 고물가 대비 낮은 임금의 직장, 대기업/중소기업의 임금격차 등)을 언급하지 않은 채 캥거루족 개인의 의지와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언급하여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는다. 

마지막으로 부모세대와의 갈등을 조장한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기사의 헤드라인들을 살펴보면 캥거루족은 그저 부모세대의 경제적 중압감을 폭발시키는 짐덩이들이다. 퇴직 후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자했던 부모의 꽃길을 막는 장애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엄마, 배고파 밥줘" 같은 문장에서 그려지는 캥거루족은 본인 밥조차 차려먹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미성숙한 아이 자체다.(이 문장은 기사 본문과도 전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데 대체 왜 이렇게 쓰셨는지 궁금하다) 이런 식의 논조는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않을 뿐더러 부모세대의 반발심과 억울함만 자극할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근본적인 문제점은 가려진채 이런 식으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를 갈라 얻는 이득은 무얼까.


한 집단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확인하려면 뉴스 기사를 확인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에 기인해 살펴본 캥거루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차갑다 못해 아득해질 정도였다. 사실 캥거루족이라는 것도 캥거루족이 자발적으로 "나 캥거루족이라 불러줘!"하며 나섰을리는 없다. 신년이 되면 누군가를 'X세대'로, 'MZ세대'로 나누듯 편의에 따라 나누어진 것 중 하나가 캥거루족일 것이다. 그렇게 사회가 분리한 집단이라면, 그렇게 되기까지의 사회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다음 주에는 '캥거루족이 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이유'에 관해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어떤 흥미로운 내용들이 나올지, stay t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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