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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r 11. 2024

100번째 글을 쓰면서.

이 마음을 안고 부단히 걸어가자.

어느덧, 벌써, 이미, 이렇게, 드디어, 어쩌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100번째 글이다. 100번째 글 앞에 붙이고 싶은 수식어야 저것 외에도 차고 넘치지만 대체로의 감상은 이렇다. 아니 벌써?와 드디어 그렇게 되었구나, 싶은 마음.


브런치 외 다른 플랫폼도 운영 중이지만, 단발성 후기나 리뷰 형식에 그쳤을 뿐 온전히 '글'로 나를 내보이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원체 본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만의 것으로 남겨두었던 이야기를 생면부지 남들에게, 그것도 규모를 짐작할 수 없는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마다 표식처럼 남겨지는 생각들, 마음들이 문장(章)처럼 남아 어떻게 숨길수도, 아닌 척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기에 다시 읽었을 때 엉성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글이라도 저때의 나는 저런 생각이었구나 하고 답지 않은 아량을 베풀 수 있다. 


대부분이 활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누구도 활자 자체는 읽으려 하지 않는 요즘 세태에 글을 쓰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남들처럼 유튜브 편집 기술을 배운다면, ai를 활용하는 법을 배운다면 삶의 여러 여건들이 풍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끌리지 않았지만 남들도 하니까, 모두가 좇으니 나도 좇아야 할 것 같던 많은 것들을 지나 글에 발걸음을 멈춘 지난 시간 동안, 이 자체가 나란 사람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았다.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가'가 자신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말, 그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게 바로 나였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글쓰기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세상에 나의 것을 내보일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에 내가 집어든 건 연필과 노트, 그리고 워드 프로세서였구나. 딱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어도 이 모습 하나가 나를 표현할 컷 하나 정도는 되겠구나 싶다.


아직도 내가 글을 잘 쓰는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색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로 성공하고 싶었다면 그 무어라도 사람들의 눈을 잡아끄는 것을 이야기했을 것이고, 자랑을 하고 싶었다면 아는 건 죄다 끌어모아 잘난 척에 몇 페이지를 할애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 거라곤, 고작 혹은 결국 혹은 최선을 다해 스쳐 지나갈 법한 무언가를 잡아 내 생각으로 치환해 조잘거리는 것뿐이었다. 주변에서는 웹소설을 써봐라, 작사를 해봐라 제안하지만 아직도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지, 특정 장르를 넘볼 기본기는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식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어떤 본능 때문에 쓰고만 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직 모른다.


다만 몇 가지의 다짐 아닌 각오는 있다. 며칠 전 글에서 쓴 것처럼 개인적인 생각을 쓰더라도 의도했던 바를 최대한 드러낼 수 있게끔 노력할 것, 적절한 문장과 표현을 찾는 수고를 감내할 것, 그리고 일기장에 써서 혼자 읽고 킬킬댈 글이 아니고 남들에게 공유할 글이라면 청자가 항상 있음을 고려할 것. 앞으로 어떤 글을 어떤 형식으로 쓰게 될지 몰라도 이것만큼은 품에 안고 가야겠다, 생각했다. '결국 이렇게 됐군'하는 마음으로 맞은 100번째 글이라지만 각오는 나름 거창하다. 부디 이 마음 그대로 안고 부단히 걸어가자.


갸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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