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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r 22. 2024

팝업스토어는 이제 그만

팬시한 팝업스토어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며칠 전 지인의 초대로 브랜드 팝업스토어에 다녀왔다. 짧은 기간 동안 낮밤은 물론 새벽까지 가리지 않고 준비한 프로젝트라 방문했을 때 얼마나 멋진지, 어떤 선물을 주는지보다 '저거 하느라 고생했겠다' 싶은 마음이 더 크긴 했다만 나름 재밌었다. 이후 팝업스토어의 성지답게 빽빽하게 들어선 성수의 매장들을 바쁘게 오갔지만 기대를 충족시키는 무언가는 없었다. 그저 사람들 사이에 휩쓸려 다녔을 뿐...


팝업스토어가 브랜딩을 선보이는 한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2010년대 초반부터 일반 판매점을 개점하거나 대형 유통사에 입점하는 것이 아닌, 브랜드만의 개성을 담은 팝업스토어가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막 대중화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SNS 플랫폼 역시 적었기 때문에 시기적인 환경이 팝업스토어를 활성화시키는데 조금 부족한 면이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미디어 환경이 옮아가기 시작하고, 유튜브가 시장을 잡아먹기 시작하면서 '보여주기 위한', '보여줄 수 있는' 팝업스토어는 날개 돋친 듯 활황을 시작했다. 패션, 뷰티 산업은 원래도 매장 디스플레이가 중요하긴 했지만, 갈수록 아트와 경계를 넘나들며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실험적인 시도 또한 망설이지 않게 되었다. 이를 통해 특정 브랜드는 탄생 당시에는 예상치 못했던 급격한 성장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런 변신은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며, 소비 '예술'에 미학적인 측면을 더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 팝업스토어가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며 젊은 예술가와의 콜라보도 늘어났고, 그들이 상업시장에서 본인의 작품세계를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 생긴 지 얼마 안 된 브랜드의 경우, 팝업을 열어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어디에서 터지는지, 그게 애초에 의도된 바가 맞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수업이자 기회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웬만한 브랜드가 모두 하니까 우리도 팝업스토어를 해야 한다'는, 어찌 보면 게으르고 나이브한 생각으로 양산된 팝업스토어가 너무 많이 보인다. 팝업스토어는 브랜드 체험형 공간으로 만들어지는데, 사실 이 공간을 채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브랜드 헤리티지 혹은 역사가 없거나, 콕 찝어 선보일만한 신제품 런칭 또는 브랜드 컨셉이 없다면 더더욱 어렵다. 이렇게 만들어진 팝업스토어는 들어온 사람들도 뭘 봐야 할지 당황스럽고, 딱히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런 팝업스토어들이 열렸다 끝나면 그만이 아니라, 팝업스토어를 열기 위해 수반된 비용이 대체로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갈수록 물가와 인건비가 천정부지로 솟는 마당에, 팝업스토어의 메카로 불리는 성수동의 대관료 역시 어마무시하다. 장소 대관비, 진행 서버들의 인건비, 인테리어 비용과 이벤트 에이전시 대행료, 배포용 샘플 혹은 기프트 제작 비용, 게다가 언론과 미디어에 팝업스토어 개장 소식이라도 한번 띄우려면 연예인과 인플루언서 거마비, 광고 비용 등이 추가로 붙는다. 행사 기간 후 발생하는 쓰레기와 철거 비용은 또 어떻고...(브랜드의 시간과 비용도 버리는 일이지만 자원 낭비도 극심하다) 이렇게 거대하게 불어난 비용을 메꿀 수 있는 곳은 결국 소비자 가격 혹은 상품에 들어가는 재료나 원가를 줄이는 것뿐이다. 결국 보여주기 식에 치중하다 소비자도, 브랜드도 가장 중요한 제품 혹은 서비스라는 본질은 잃는 셈이다. 


한 명의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추세가 우려스럽고 화가 나기도 한다. 제품력과 서비스 퀄리티로 승부하는 건 정말 안 되는 걸까? 물론 이건 오랜 시간을 담보해야 하는 일이다. 포토제닉한 팝업과 연예인들의 홍보 효과는 즉각적인 반면, 제품력은 소비자들이 실제 체험해야 검증되는 것이기에 수익은 더디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그 어느 것 하나 새로울 것이 없는 시대에 오히려 순정으로 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전략이 아닐까 싶기도. 실제로 진정성으로 다가서는 브랜드는 요새 정말 찾기 힘든 것 같다. 진정성은 본인이 '나 진짜예요, 나 정말 이래요'하는 것보다 소비자들이 직접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거기에 담긴 진심이 뭔지 저절로 느껴지는 것이니까. 아무리 제품이, 브랜드가 많아졌다 해도 진정 소비자들이 만족하고 쓸 수 있는 단 하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다.(시대에 따라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진 것도 한몫하겠지만요..) 이것 역시 소비를 촉진시키려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씁쓸한 결과일까. 당분간 팝업에는 쉬이 발이 가지 않을 것 같다.


요즘 팝업스토어 스케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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