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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r 24. 2024

일요일 오전의 바이브

답을 찾기 위해 묻는 시간들.

눈이 번쩍 뜨인 시간은 7시 50분이 조금 넘은 시간. 회사 다니는 내내 일요일 기상 시간이 정오, 더 늦으면 오후 1시에 맞춰져 있던 나에겐 꽤 이른 기상이다. 출근을 안 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직장인 기준으로 생각하는 거 보면 지난 6년의 습관이 흩어지기엔 한 해는 매우 짧다.


일어나자마자 다시 눕지 않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불을 개고, 세수를 하고 스킨케어를 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어떤 걸 하려나. '할 일도 없는데 뭐 하러 일찍 일어나나'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할 일이 있어야만 일어난다는 생각처럼 게으른 것도 없다. 지난 주말엔 이틀 연속 약속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서울을 쏘다녔지만 이번 주말은 아주 조용하다. 오랜만의 외출은 새로운 자극과 재미도 주었지만 원치 않던 흥분감까지 주어 원래대로 패턴을 되돌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평일 내내 루틴을 바로 잡으려 했던 노력 덕분인지 오늘은 다시 혼자만의 일,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한다. 지금의 시간들은 나에게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예전에 지인의 카톡 프사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인생에는 질문하는 시간이 있고, 그에 대한 답을 얻게 되는 시간이 있다'라는 글이었다. 삶을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은 죄다 묻는 시간이었다. 이 길이 맞는지, 이 선택은 옳은지, 저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지. 중간중간 '아, 그때 내가 그랬던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하는 찰나의 마주침은 있었지만 '이게 답이구나'하는 통찰과 깨달음은 없었다. 어쩌면 답이 오는 방식이 전파가 통하듯 전율하는 강도가 아닌 '음~ 그런 거였군'하는 시시한 정도라 눈치를 못 챈 걸까. 이미 몇 개의 답은 놓쳐버린 걸까.


이미 놓쳤다고 생각하진 않으련다. 놓쳤다고 한들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잠깐의 힌트로 지나간 답이라도 내 가치관과 행태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언젠가 다시 마주칠 수 있겠지. 그럼 그때 "어? 너 여기 있었구나?" 하며 반갑게 손을 맞잡고 그때까지 있었던 이야기들을 함께 해야지. 나는 너를 찾아 헤매고 있었어, 불안했지만 이렇게 만나서 다행이다. 그럴 필요 없었어, 사실 답은 언제나 있었지만 다가갈 때가 아니라 기다렸던 것뿐이야. 그런 일상적이고 담담한 대화를 하고 싶다.


제3자가 이 시간을 궁금해할 수도 있다.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면 "이제까지 뭘 했냐"라는 질문이 문지기처럼 등장할 거다. 그럼 나는 "제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었고, 온전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다만 나의 답은 이런 시간을 보내본 사람이어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의 흐름을 자발적으로 멈추고 방 안에 들어가 본인에 대한 물음과 답을 찾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 이게 최종 답이 아닌 걸 알지만, 현재로선 이 답이 최선임을 믿고 그 전의 삶을 이해하려 애쓴 사람들. 운이 좋다면 그런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버리는 시간'이라 여길 수도 있다. 납득시킬 이유는 없다. 누구라도 그런 시기가 한 번쯤 오기 마련이고, 나는 다소 이르게 겪었을 뿐이다.


일어날 땐 정면에 있던 해가 어느새 머리 꼭대기에서 볕을 뿌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날이 좋을 것 같다. 낮에는 산책도 하고, 좋아하는 페퍼민트 티를 시원하게 마셔야겠다. 또 하나의 일요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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