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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r 23. 2024

최강 피지컬이냐, 최강 정신력이냐

피지컬:100을 보며 느끼는 이모저모.

예전 글(참고: https://brunch.co.kr/@writerlucy/66)에서 넷플릭스에서 유일하게 시즌별로 챙겨본 프로그램이 솔로지옥이라 말한 적 있는데, 하나가 더 늘었다. 바로 피지컬:100. 말 그대로 '피지컬만으로' 승부를 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최고의 피지컬'을 찾겠다는 명목하에 100인의 참가자들이 체력 경쟁을 하며, 그 안에서 최후의 1인을 가려내는 살벌한 프로세스다.


사실 문명사회에서 '몸'이라는 원초적인 수단으로 승부를 겨루는 모습은 다소 어색한 느낌을 준다. 몸을 만드는 방식은 오늘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과는 참 맞지 않는다. 어떻게든 빨리 결과를 보려 하고, 그를 위해 편법과 술수가 합리화되는 세상에서 몸은 인풋이 들어간 만큼 아웃풋을 내는 단순한 기제를 갖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혹독한 시간을 감내하며 본인의 몸을 만들었으며, 그 시간의 농도는 미션마다 자연스레 드러난다. 시즌 2 참가자 중 한 명인 김동현 선수가 다른 참가자의 경기를 보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하 체육관에서 보냈을지 짐작이 가서 더 감동적이다'라고 한 말 역시 이런 맥락을 관통한다. 또, 몸을 쓰는 방식은 타고난 성정과 인간의 태곳적 야생성을 복합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1차 미션 중 격투기 링에서 볼을 뺏는 경기를 볼 땐 시선을 화면에 두지 못했는데,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 사람의 본모습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무서워서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시즌 1 때 내가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해외에서야 체력, 힘으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이 대중적일지 모르나 한국에서 그걸 대놓고 셀링 포인트로 삼은 프로그램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할 만큼 한국에서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도,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도 정말 많아졌다 싶기도 하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기본이요, 운동 필드에서 난다 긴다 뛴다 힘 좀 쓴다 하는 사람들이 죄다 모인 것도 신기했고 사람으로선 할 수 없을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미션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는 건 기묘한 감동을 주었다. 특히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1:1 미션에서 묵묵히 본인의 페이스를 유지하다 우승을 차지한 참가자의 모습에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나중에 듣고 보니 승부조작 논란이 있었다던데.. 내 감동 돌려내.

 

포스터만 봐도 쇠와 땀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시즌을 거듭하며 더 흥미로워진 포인트가 있다면 우승에 굶주리고 다소 미약했던 본인의 존재감을 표출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뒤섞여 참가자들의 태도가 한층 더 진지해졌다는 것이다. 우승을 추구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른데, 누군가는 1대 1 경쟁에서 상대방을 가차 없이 짓밟는 모습을 보여주어 본인의 위용을 다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특정 파트에 출중한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본인을 어필하여 유리하게 팀을 형성하기도 한다. 내가 관심 있게 보는 참가자는 김동현으로, 아무래도 예능인으로 더 알려졌던 그가 운동인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오는 게 포인트라 그런지 제작진 측에서도 포커스를 많이 맞춰주는 편이다. 사전 미션부터 최상급 퍼포먼스를 보이진 못했어도 꾸준히 좋은 아웃풋을 내고 있고, 참가자 투표에서 팀장 선호도 1위로 뽑힌 것 역시 그의 진면목을 본 사람들의 호응의 결과라 생각한다. 불쑥불쑥 예능에서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것도 웃긴데, 팀 꾸리면서 머리를 부여잡고 "어떡해, 나 이런 거 진짜 못하는데.." 하며 발을 동동거리는 모습이나 사람들한테 다짜고짜 디스크 있냐, 아픈데 없냐 물어보는 모습에선 포복절도했다. 다소 아방해 보였지만 결국 최강팀을 완성해 버린 그 사람...


시즌 2는 현재까지 4화가 나왔다. 지금까지도 보기 힘들었지만(?) 앞으로 어떤 미션들로 사람들을 미치게 하려나 궁금하기도 하다. 시즌 1 때는 엄청나게 무거운 박스들을 실어놓은 배를 오르막길까지 올려놓으라는 미션을 보고 기함을 했는데.. 그걸 참가자들이 또 해내서 더 기함을 했다. 이 사람들은 해야 되면 해내는 것만 생각하는구나 싶어 그 단순하고 곧은 마음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최강 피지컬'이라는 게 무얼로 정해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즌 1을 보고 난 사람으로 생각해 보면 최강 피지컬은 그냥 정신력인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이 모든 미션을 견뎌내고, 묵묵하게 해내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니까. 과연 시즌 2의 최강 정신력은 누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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