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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28. 2023

12월 28일 모닝페이지. 솔로라고 지옥은 아닙니다만.

자신만만한 사람들도 절로 초조하게 만드는 사랑이란..

기상 시간 8시. 다시 되찾은 나만의 리듬 핫챠.


OTT서비스 중 유일하게 구독하고 있던 넷플릭스마저 해지해버렸던 건 볼만한 콘텐츠가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엔 오래된 영화들도 곧잘 올려줘서 흥미는 있었지만 볼 기회가 없었던 영화도 볼 수 있었는데, 오징어게임 성공 이후 콘텐츠가 다 징그럽거나 잔인하거나 욕을 하는 등 자극적인 게 판을 쳐서 나 같은 사람은 볼만한 게 전혀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봤던 게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니 취향이 뭔지는 다들 짐작하실 수 있겠지. 그러다 최근 다시 구독을 하게 만든 콘텐츠가 있었으니, 이름하야 '솔로지옥'.


시즌 1부터 열심히 봐온 사람으로서 솔로지옥을 보지 않으시는 분들을 위해 포맷 설명을 해보자면, 이 프로 역시 솔로들이 나와서 자신의 짝을 찾아가는 연애 버라이어티쇼다. 나는 솔로가 마라탕, 환승연애가 단짠 소금빵 느낌이라면 솔로지옥은 캘리포니아 롤 같은 느낌. 일단 출연자들의 외양이 화려하고 제작진들이 작정하고 해외 연애 프로그램 (예를 들면 투핫 같은..) 같은 톤앤매너를 주고 싶었던 의도가 확실해 보인다. 출연자들의 애티튜드 역시 이에 부응하는지라 다들 자기소개부터 탈 한국인 느낌이다. 겸손? 없음. 부끄러움? 없음. '나 인기 많아, 어디 가도 안 꿀려. 네가 지금 날 안 좋아해 봤자 어차피 내가 꼬시면 다 넘어올걸?' 하는 태도가 디폴트. 다들 자기애와 당당함이 엄청나서 웬만한 항마력이 아니고선 끝까지 지켜볼 수 없지만, 보다 보면 또 귀엽고.. 요즘 애들은 저런가.. 싶기도 하고 묘한 매력이 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런 당당함으로 가리려 해도 넘싯거리며 드러나는 본모습이 웃기고 짠하고 공감되기 때문이다. 원래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게 기침과 사랑이라는데 아무리 말로 틱틱거리고 짜증 내고 자존심을 세운다 해도 이끌리는 마음을 눈빛에서든 손짓에서든 숨길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 귀엽고 웃긴 거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러브라인에 솔직하게 다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솔직함도 대단해 보인다. 본인의 지인, 회사사람, 가족들도 다 보게 될 프로그램에서 저렇게 모든 것들을 내보이고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깊은 감정과 생각까지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알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이기도 하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난.. 출연료 억 단위로 준대도 망설여질 것 같아..


하정씨의 플러팅 기술을 보십시오.. 다들 뒤집어질걸.

솔로지옥에서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을 '지옥도'에 머무르게 하면서 허접한 식사(생당근과 닭가슴살만 줘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의 정신력은 대단하다)를 하게 만들고, 커플 매칭에 성공한 사람들은 화려한 호텔에서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옥도에서 사랑이 싹트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여유로운 시간을 활용해 바닷가를 산책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애정을 확인하고 새로운 감정이 싹트기도 한다. 바닷물의 수분이 마르면 소금이 뿅 하고 생기듯이, 자신도 모르게 사랑이 샘솟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옥도는 누군가에겐 천국도가 될 수도 있겠지. 이 역시 내가 솔로지옥을 보게 만드는 매력이다.


한때 우후죽순 생기는 연애 프로그램을 보며 혀를 쯧쯧찬 적도 있다. 하도 애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니까 이런 연애 프로그램 같은 거 만들어서 연애하게 만드려고 이러나, 이게 근본적인 대책이 맞나 하며 화를 낸 적도 있고. 진짜 사랑을 안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랑해도 함께할 수 없는 발판이 없어 그러는 거 아니냐며. 하지만 근래 주위에서 스스로를 '무성애자'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느는 거 보면 정말 연애에 대한 관심이나 감정이 없는 사람들도 꽤나 많아진 것 같다. 개인적 성향이니 무어라 말을 보탤 순 없어도, 갈수록 연애 감정이 아니더라도 '사랑' 자체가 없어지는 건 좀 무섭고 아쉽다. 예전에 커뮤니티에서 '오징어게임처럼 인간의 악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 하나도 안 궁금하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서로를 보듬자고 이제까지 인류가 노력해 온 것 아니냐'하는 글을 보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서로를 보듬자고 노력해 온 것'이 나는 사랑이라 생각하는데, 최근 악에 맞서 어쩔 수 없이 악을 택하고 파멸에 이르는 내용, 털을 쭈뼛 세울 만큼 잔인한 것들이 쏟아지니 자꾸 사랑이 설 자리에 칼날과 총이 들어서는 느낌이다. 연애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게 수많은 사랑 중 일부의 모습이더라도, 조금 어설프고 뚝딱이더라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자리를 좀 확보해 주면 안 되나요.


출연진들이 연예인 데뷔를 노리고 나온 거라느니, 진실성이 없는 짜고 치는 프로그램이니 말이 많아도 나는 당분간 볼 예정이다. 시즌 3에는 또 나는 솔로 출연진만큼이나 '대체 저런 사람은 어디서..?'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인물이 있어 심리학적 탐구 측면에서도(!) 아주 흥미롭다 하하. 주변에서도 슬슬 욕이 나오는 걸로 봐선 꽤나 호응이 있는 편인 것 같은데, 그저 도파민 중독인지 사랑 애호가 관점에서 흥미가 있는 건지는 보면 볼수록 알겠지. 그나저나 다른 사람 사랑하는 건 이렇게 재밌는데 왜 내 사랑엔 흥미가 없는가.....(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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