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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27. 2023

12월 27일 모닝페이지. 실패한다고 끝은 아니니.

어쩌면 예상했던 결말..?

기상 시간 9시. 어제 갑작스레 덮친 체함+몸살기의 콜라보로 늦은 시간 기상.


제목을 보고 눈치채셨겠지만 어제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미션인 '키링 만들기'는 장렬하게 실패했습니다. 한 3시간 정도 유튜브 영상을 보고 따라 해봤는데 도저히 내 손으로 만들어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그런 똥 같은 무엇이 만들어져서 그냥 두 손을 놓아버렸다. '똥'이라고 하면 뭘 그렇게까지 비약하나 싶으시겠지만 갈색 천으로 곰돌이를 만들려고 했는데.. 귀나 팔 같은 디테일이 존재감이 미미하다 보니 실제 그것과 비슷한 모양이 되어버렸지 뭐예요.. 여러분들의 상쾌한 아침을 위해 사진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세 시간 낑낑거렸음에도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바느질을 못해도 너무 못한다. 고등학생 땐가 교과목으로 있던 기술가정 시간에 바느질 실습을 하는데 선생님이 "바느질을 너무 못하네"하셨던 그 기억이 생각나는 이 허접한 바느질 솜씨. 열이나 맞으면 다행이지 일단 땀별로 길이도 달라, 간격도 달라, 얼기설기 엮은 모양새부터 영 불안하다 싶었다. 그러면 더 촘촘히 하면 될 텐데 성격 급한 사람은 일단 뒤집어 봐야 어떻게 되고 있는지 감이 잡히거든요. 첫 번째 시도는 이렇게 패망.


두 번째는 달콤한 과자로 심신도 달래고 '한번 해봤으니 이젠 좀 수월하겠지'하며 도전했다. 처음엔 곰돌이 모양을 하려고 했지만 디테일을 살리기엔 내 실력이 너무 허접하니 도안의 모양을 쉬운 산 모양으로 바꿔서 시도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실패. 도안도 잘 잘랐고 바느질도 나름 했는데 갈수록 인내심이 바닥나더니 귀여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요상한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바느질했던 실을 똑똑 끊어내며 내 흥미도 파스스 재가 되었다. 됐어, 안 해.


기술적인 측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실패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예전에는 콩알만한 십자수 도안에 실이 엉켜도 일일이 손으로 엉킨 부분을 짚어가며 끝끝내 완성작을 만들어냈는데. 노래 하나를 부르더라도 안 되는 음역대가 있으면 같은 부분을 몇 번 반복해서라도 엇비슷하게라도 해낼 수 있었는데. 갈수록 과정 중에 원했던 결과와 비슷한 퀄리티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부터 맥이 쭉 빠지고 흥미가 파사삭 식어 완주를 할 수 없어진다. 오죽하면 드라마나 예능도 처음엔 방영시간까지 맞춰 열성적으로 보다가도 마지막화는 안보는 이상한 습관마저 생겼다.


성격도 무지하게 급해졌다. 2024년 트렌드 중 하나라는 '분초사회'는 한국인들의 '빨리빨리'가 얼마나 심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젠 시간 단위로 계획을 짜는 것이 아니라 초 단위로 뭘 할지를 생각하고 콘텐츠를 소비하고 결과물을 볼 수 있어졌다. 나만해도 유튜브 브이로그 콘텐츠 중에 조금 템포가 느린 브이로그를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2배속 버튼에 손이 간다. 3배속, 4배속도 적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가 빗발치는 걸 보면 우린 물리적 시간대를 초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아직까지 손에 쥐고 있는 마지막 보루가 있다면 시도의 실패가 완전한 포기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유혹은 있다. 키링 그까이꺼 그냥 공장이든 남의 손이든 잘 만들어진 걸로 사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낫지 않겠냐며. 하지만 이건 누군가에게 자랑할만한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마음을 길러가는 수련이다. 손 끝의 감각을 깨우는 훈련이고, 인내심을 기르는 단련이다. 똥을 가방에 달고 다니는 불상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몇 번은 더 이런 과정을 반복해야겠지만 그동안 내면에서는 기대했던 것들이 조금씩은 커갈 테니, 부디 내년 되기 전엔 만들 수 있었으면. 이러다 키링 유행 다 지겠다..


난 언제 이렇게 만들 수 있냐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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