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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25. 2023

12월 25일 모닝페이지. 이게 연말이야? 어디가?

올해 연말 분위기가 왜 나지 않는가에 대한 고찰.

기상 시간 8시. 산타는 다녀가지 않은 빈 손의 아침. 저 올해 (별로) 안 울었는데요..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긴 한데.. 뭔가 허전하다. 올해 12월이 되고 나서 자주, 많이 들은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올해는 왜 이렇게 연말 분위기가 안나?"라는 것이다. 라디오에서는 캐롤이 울려 퍼지고, 더현대나 명동 신세계백화점 앞에는 트리와 거대한 LED 화면에 인파가 몰리는데 기묘하리만큼 연말 특유의 활기와 흥겨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뭐가 달라진 거야, 아님 뭐가 잘못된 거야?


처음엔 우리 동네만 그런 줄 알았다. 여긴 아파트 단지 밀집지역이라 딱히 휘황찬란한 연말 분위기를 느낄 구석이 없다. 단지 안에 크리스마스트리 정도. 거대 쇼핑몰이나 호텔 등이 있는 상권 밀집 지역에나 가야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마련된) 부푼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에 올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강남, 명동, 종로 등 어느 서울 지역을 가도 마찬가지다. 유독 추운 크리스마스 연휴를 다들 집에서 보낼 요량이신지 들떠서 몰려다니는 인파 또한 마주한 적이 없다. 대체 어딜 가야 연말을 느낄 수 있나요.


그나마 연말 느낌이 조금 나던 호텔 플라워샵.

연말을 느끼도록 하는 준비물 중 많은 것들은 그대로다. 일단 트리가 있고, 연말 특선 영화와 연말 시상식이 있고 겨울임을 실감케 하는 추운 날씨가 있다. 카페와 베이커리의 쇼케이스를 가득 채운 케이크들이 있고 뱅쇼나 마시멜로를 퐁당 올린 핫초코가 있다. 지하철엔 연말 송년회로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들이 몇 명 있고 살을 에는 한파에도 커피 스타킹을 신고 나와 남자친구 품에 안기는 연인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럼 대체 뭐가 달라진 거야.


아무래도 마음가짐인 것 같다. 예전만큼 설레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고 느끼는 것이. 매해 연말마다 사람들 만나서 떠들썩하게 지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식상해진다. 12월 31일 59분이 지나고 1월 1일이 되어도 신데렐라가 변신하는 것 마냥 눈앞의 상황이나 내 모습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안다. 마무리 지은 한 해는 그저 어제가 될 뿐이고 곧 마주하게 될 신년은 "정신 차려, 연말이라고 퍼져있는 건 이제 끝이야. 빨리 한해 계획 짜고 움직여!" 하며 회초리질을 하게 되리란 걸 모두가 알기에 더 이상 연말이 기다려지지 않는 것이다. 


침체된 경기도 한몫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은 선물을 하기엔 지갑이 빠듯하다. SNS에서 보고 탐냈던 호텔과 해외여행은 기존 대비 2~3배 오른 가격으로 어깨를 더욱 작게 만든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해 연일 매진에 만원이라는 소식은 왠지 모를 허탈감을 준다. 연말이라고 푸지게 파티를 하고 싶어도 배달비와 오른 식비는 '웬만하면 해 먹자' 수준이 되지만 그것마저 녹록지는 않다. 신라호텔에서 금년 내놓은 케이크는 30만 원이라는데, 마트에서 9천 원 케이크가 동시에 등장하는 기이한 현상은 우리의 현주소를 짐작케 한다. 연말이 모두에게 다 같은 연말이 아닌 것이다. 


예전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개인적인 욕심에 올해 연말은 다들 좀 따뜻했으면 좋겠다. 안다 나도, 난방비조차 너무 올라서 '따뜻한 겨울'이 얼마나 큰 사치가 되었는지를. 하지만 첫인상보다 마지막 인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욕심을 좀 내고 싶다. 한 해 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거나 간에, 마지막 순간이 차갑고 냉랭하고 아무 설렘도 없는 그런 것이라면 지난날의 시간이 얼마나 아깝겠는가. 인지 과정에서도 가장 새롭게 기억된 내용이 가장 오래간다는 법칙이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2023년의 인상은 이제 남은 며칠로 결정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꼈던 마음도 좀 느슨하게 풀고 수고한 자신을 보상하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결국 삶은 좋은 기억들을 파먹으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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