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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24. 2023

12월 24일 모닝페이지. 나의 시간은 양피지를 닮았다

당신의 시간은 무얼 닮아 있나요.

기상 시간 정오. 몸살로 시작한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에 마주하는 하루는 우리가 만들어갈 여백이자 배경이고, 밤에 거두어들이는 하루는 종종걸음으로 만든 시간의 점들을 이어 내일의 창을 꾸리는 도구다. 지구의 자전 주기에 따라 임의로 나뉜 오늘과 내일은 일직선처럼 이어지는 끝없는 영원처럼 느껴지고, 고대 로마인이 뎅강 잘라놓은 일, 월, 년은 실용적 편의를 넘어 시간의 아득함을 차마 감당할 수 없었던 인간의 무력함을 빗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객관적인 것이 아닌 그것을 받아들이는 개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이론도 있고, 더 나아가 그 어떤 것도 객체가 될 수 없으며 심지어 세계도 실체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학자도 있다. '사실'이 무언 지는 확인된 바가 없으나 중요한 건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같은 상황이나 대상을 보고 인간의 과거 경험이나 가치관에 의해 인식되는 게 다르다는 것이 그저 '느낌적인 느낌' 같은 암묵적 지각일 뿐 아니라 수학적 계산에 의해 과학으로 입증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해석의 폭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을지 잠깐 상상해 봐도 우주를 떠올리는 것 마냥 광활하다. 지구가 속한 은하계 역시 우주의 수많은 은하계 중 하나일 뿐이라 하니, 감도 안 잡히는 규모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숨을 쉬고 웃고 울고 스트레스받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일을 하고 관계를 맺고 우연을 상상하고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걸 먹고 당장을 걱정하고 일어나지 않을 일에 불안을 느끼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노쇠한 부모님을 돌보고 아프고 사랑하는 이와 평생을 약속하고 지식을 쌓고 자연을 즐기고 (대부분은) 파괴하고 욕심을 부리고 거짓말을 하며 사고가 나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해하고 그 옆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이 모든 일들이 와글와글 복작거리면서, 또 동시에 고요한 심연 속에서 벌어진다. 사람들은 이미 경험적으로 시간이 일직선을 그리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떤 변주라도 만들어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존재들처럼 군다. 시간을 이쪽저쪽으로 늘리고 잘라 붙이고 덕지덕지 메우면서 삶을 재창조한다. 콜라주 아티스트 같은 모양새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는 '모두가 똑같이 매일 할당받는 24시간, 1440분, 86400초를 어떻게 쓰느냐가 의미 있다'라고 한다. 하지만 실상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는 같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24시간이 1시간 같고, 1440분이 1444000분 같은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부여받는지가 아닌 그걸 갖고 무엇을 하느냐다. 그것도 어떻게 보내느냐 보다는 훨씬 확장된 개념이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어떤 것들을 혹은 어떤 가치를 우선할지 배치할 수 있다. 얼마나 파이를 할당할지를 결정할 수 있고, 그것에 들이는 에너지도 결정할 수 있다. 이미 지난 시간이나 현재의 시간, 미래 역시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결정할 수 있다. 결국 어떻게 이어 붙일 것이냐, 일부는 여백의 미를 살려 공란으로 둘 것이냐, 색을 칠해볼 것인지 형태를 잡아볼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뜻이다.


이 '사실'이 부담이 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때론 너무 막막하다. 주어진 시간은 황금 마냥 가치가 있는 게 틀림없다. 누군가는 척척 무언가를 빚거나 그걸 타고 날아가거나, 심지어 본인 피부에 이식해 아예 황금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 혼란 속에서 나만 황금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일분일초에 모두 금박이 새겨진 것 같은데 나만 허공을 휘젓는 느낌. 내 손이 똥손일까 봐, 오히려 가진 재료를 망치는 꼴이 될까 봐 쉬이 포기하는 일도 잦았고 뭐라도 하고 나서 잠깐 앉아 생각해 보면 '이게 최선이었나?' 싶을 때도 잦다. 차라리 재료가 똥이라면 재료 탓이나 할 텐데 본질은 같은 황금인 것을 어찌 탓하겠냐며 괜히 황금을 노려보고 있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똑똑 떼어 수제비를 빚어 먹든 옛다 너희 가져라! 하고 비둘기에게 뿌려주든 종이학 마냥 고이 접어 예쁜 유리병에 넣어두든 얇게 벼려내어 책 한 페이지로 만들든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너무 정의된 것에 길들여져 있어 황금이면 금반지를 만들어야 하고 황금돼지로 깎아야 하고 하다못해 목걸이 펜던트라도 만들어 달고 다녀야 되는 줄 안다. 하지만 그게 정말 황금인지도 모르는데 재료의 본질만 유지하자고 노려보고 있는 건 이해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썰어도 보고 찔러도 보고 무슨 소리가 나나 퉁퉁 쳐보기도 하고 발로 차보기도 해야 내가 가진 게 뭔지를 알 수 있다. 그게 진짜 황금인가요? 아니면 나뭇잎인가요? 잘 익은 수박인가요? 얄푸레한 한지인가요.


개인적으로 내 시간은 양피지 같다. 양피지는 종이에 비해 견고하고 장시간 보관이 가능하다고 하며, 부피가 크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다. 내 관념 속에 양피지는 거칠고 오랜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누르스름해서 어딜 가서도 '나 이거 있다!'라고 자랑할 느낌은 아니지만 잘 찢기지 않고 아무거나 훽훽 갈겨쓸 수 있으며 엄청나게 긴 두루마리를 만들 수 있어 내 역사와 흔적이 빼곡히 적혀있을 느낌이다. 동시에 어디에서나 확확 펼쳐들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은근한 존재감을 뽐내는 것도 닮았다. 여러분의 시간은 무엇과 닮아있나요.


오늘은 양피지 조각을 작게 잘라내어 그 안에 나만의 암호를 그려 넣을 셈이다. 알록달록한 색채도 조금 더하고 앙증맞은 이모티콘도 그려넣을테다. 그리고 눈송이처럼 훨훨 날려 보내야지. 훗날 미래를 걷다 발끝에 차이는 무언가를 발견하면 아마 오늘의 기억이겠지. 그때 보고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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