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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29. 2023

12월 29일 모닝페이지. 올해 어디에 돈을 쓰셨나요?

2024년에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 보기.

기상 시간 8시. 올해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흑흑.


다들 가계부를 쓰시나요? 저는 씁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다이어리에 손수 기입하다가 최근에는 엑셀 파일로 정리를 하는데, 어플은 영 못 미더워서요.. 이렇게 자의로, 클라우드에 저장된 파일에 입력하니 지출 내역을 까먹을 일도 없고 어디에서나 확인할 수 있고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을 더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 요즘은 지폐는 물론 카드도 실물로 결제하는 경우가 점점 없어지다 보니 돈을 쓰는 감각이 굉장히 무뎌지는 것 같다. 비교적 최근에서야 어플로 카드 간편 결제를 시도해 봤는데 그 신세계란. 분명 돈을 쓰긴 했는데 쓴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공중분해 된 느낌. 갈수록 이런 기술들이 더 상용화될 텐데 돈의 흐름을 스스로 감지하고 있는 것이 꽤나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란색이 식비 관련인데.. 압도적 비율.


이렇게 정리한 가계부는 매년말 돈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한 번씩 확인한다. 항상 지출의 90%는 부동으로 먹을 것이 차지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딱히 쇼핑을 하지도 않고 욕심내는 것이라곤 '맛있는 거 먹어야지'하는 것뿐이기에. 올해의 지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2023 지출 항목 TOP3>

1위. 먹는 것 (외식, 군것질, 장보기 등)

2위. 여행 (호캉스, 해외/국내 여행 등)

3위. 자기 계발 (강의 결제, 책 구매, PT와 헬스장 이용권 결제 등)


먹는 것이나 여행은 경험으로 휘발되는 것이고, 자기 계발은 보통 콘텐츠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두 물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물건'을 구매한 쇼핑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는지 위 항목을 제외한 달별 지출 품목을 정리해 보았다.


<달별 지출 품목>

1월 - 책, 화장품, 엘피, 속옷, 문구류.

2월 - 책, 염색약, 지인 선물, 조카 선물.

3월 - 화장품, 처방약.

4월 - 화장품, 영양제, 자동차 배터리 교체.

5월 - 조카 선물, 영양제.

6월 - 화장품.

7월 - 책, 화장품.

8월 - 책, 지인 선물, 위생용품.

9월 - 화장품, 지인 선물, 책.

10월 - 화장품, 문구, 운동용 바지.

11월 - 화장품, 귀걸이.

12월 - 책, 지인 선물, 조카 선물, 오트밀.


지출 품목 중 가장 높은 구매 빈도를 차지한 건 화장품이었다. 화장품에 대한 욕심이 1도 없고 화장품 사는 걸 굉장히 돈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꽤나 놀라운 일. 하지만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것들이 메이크업 제품처럼 '사고 싶어서' 사는 항목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써야 하는 스킨케어 제품, 선크림, 클렌징크림 그리고 피부 상태가 엉망일 때 샀던 마스크팩 정도로 사람다운(!) 피부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지출을 했을 뿐이다. 그다음은 역시나 책이었고, 조카와 생일이었던 지인들을 챙겼던 선물들 위주.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해 샀던 건 엘피, 귀걸이, 소소한 문구류 정도다. 이렇게나 적다니.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올해 수입이 없다 보니 의식적으로 지출을 줄인 것도 있고, 축하할 일이 생기거나 좋은 걸 기념하고 싶을 때 맛있는 걸 먹는 걸로 대체하던 것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예전에는 무언가 성과를 내거나 고생한 걸 기념할 때 가방이나 주얼리류를 사거나 했는데 지금은 마음 편히 어디 가서 쉬었다 오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는 게 더 행복하고 편하다. 기념으로 샀던 물건들을 꺼내어 쓰면서 당시를 애틋한 마음으로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이젠 그런 식으로 물건을 쌓아두는 건 내가 괴롭다.


물론 클릭만 하면 집으로 총알배송되는 수많은 물건들 중 탐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각 브랜드에서 공과 돈을 들여 만든 팬시한 디스플레이는 그것을 소유한 멋진 나를 상상하게 할 만큼 매혹적이고, 남들은 하나씩 다 가지고 있다는 브랜드별 필수템은 없던 흥미도 자극한다. 하지만 나이를 들며 좋은 점 하나는 내가 무엇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불필요하게 시선이나 에너지가 분산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물건이 쌓여 만드는 양감은 나를 답답하게 하고 그저 필요한 물품을, 필요한 양만큼, 필요한 수준으로 갖길 원할 뿐 부수적인 편의는 오히려 자유를 해치는 느낌이다. 


먹는 것 역시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먹을 것에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고한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계점을 느낀 것일지는 몰라도, 이젠 4만 원짜리 점심을 먹으나 20만 원짜리 점심을 먹으나 서비스, 인테리어, 좀 더 나아가선 디스플레이의 차이만 좀 느껴질 뿐 혀로 느껴지는 음식의 품질과 맛은 어느 정도 비슷해진 느낌도 든다. 거기에 다소 아저씨스러운 취향이 더해져 미슐랭 3 스타보다는 빕구르망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내년에는 스스로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좀 더 투자하고 싶다. 많은 물건들을 사봤고, 많은 것들을 먹어보았으니 그렇게 살 찌운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데 돈을 쓰고 싶다는 생각. 워렌 버핏인가 누군가 말했듯이 개개인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은 부동산도 아니요, 주식도 아닌 나 자신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따라 내 안을 내실 있는 것들로 채워 넣고 싶다. 그렇게 꽉꽉 채워진 나를 잘 벼려내 2024년을 현명하게 살아가야지. 아, 일단 돈부터 벌어야 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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