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방해하는 심리적 반발을 다스리자..
어제는 조카가 오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보고싶다 노래를 부른 것이 무색하게 내 컨디션은 따라주지 않았고, 결국 열성적으로 조카와 놀아주는 엄마를 핑계로 몇시간은 누워있다, 몇시간은 책을 읽다 조카를 보낼 시간이 왔다. 낮잠을 자지 못해 칭얼거리는 조카가 "할미랑 이모랑 같이 갈래!!"하며 우는 순간, 내 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눈물.. 눈물?
마음을 다스리려했지만 화장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더 울다 겨우 눈물이 멈췄다. 왜 이럴까 마음을 추켜세워보니 그 가운데엔 '미안함'이 있었다. 산책을 가도 이모와 함께 나가야한다고 날랜 발을 멈췄다고 했는데 기껏 산책 한번을 같이 안 나가고, 쓸데없는 걸로 혼만 내고.. 그럼에도 이모랑 집에 같이 가야한다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우리 조카에게 이런 못난 이모라니. 보고싶다고 할 땐 언제고 이 놈의 몸뚱아리는 뭘 한거야, 대체 왜 이러는거야!
사실 이건 하나의 사례일 뿐 이런 경우는 이전에도 많았다. 여기서 '이런 경우'란 기회가 오길 고대하다 막상 그 기회나 상황이 오면 정작 심드렁해지고, 딴짓을 하고 그 시간이 지난 후엔 후회를 하는 (최악의) 경우를 말한다. 난 이걸 '청개구리 심보'라고 부르는데, 생각해보면 꽤 오래 전부터 이런 습관이 있었다. 학창시절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 않았음에도 시험기간이 왔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하는 건 해리포터 전집을 1권부터 정주행하는 거였다. 오죽하면 엄마가 "해리포터 꺼내든 거 보니 시험기간이 오긴 왔구나"할 정도였다. 커서도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는 왠지 마음과 의욕이 듬성듬성해져 딴짓을 했고, 지나고나면 후회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런 마음은 생활에 전반적인 불만족 뿐만 아니라 자괴감을 느끼게 했고,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어제 역시 그런 상황 중의 하나라 느낀 나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 순 없겠다는 마음으로 방법을 찾아보았다. 검색창에 입력한 키워드는 다양했다. '청개구리 심보', '상황과 반대로 행동', '반대로 행동하고 후회' 등등.. 콘텐츠의 수풀을 헤치고 발견한 키워드는 바로 '심리적 반발'이었다. 심리적 반발이란 설득이론에서 주로 등장하는 개념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뭘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어지는 마음'이다. 신나게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누가 "청소 좀 해!"라고 하면 청소할 맛이 뚝 떨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왠지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고,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지는 이런 마음이 바로 심리적 반발이다. 타인 혹은 상황이 어떤 일을 지시하면 본인의 자유를 위협받는다고 느껴 반작용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자존심이 강하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왠지 거울을 보는 것 같군요.
심리적 반발이라 나의 마음을 명명할 수 있는 건 기묘한 안심을 가져다줬지만 진짜 문제는 이거다. 그럼 대체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하나요? 어릴 때부터 심리적 반발을 다스리며 살아왔어야했는데 난 그 시기를 놓친걸까? 그럼 이대로 매사에 불만족과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하는 걸까? 그 해답은 오히려 언니가 명쾌하게 내려주었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라는 답.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 될 수 있다고? 해결 될 수 있지 암.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생활에 적용한 방법은 엄밀히 따지면 '반대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객관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내 인지 속 상황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운동을 가야겠다 마음 먹은 날인데 가기가 싫어졌다, 갑자기 외출을 하고 싶어진다 등의 생각이 들면 '오늘 밖에 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렇게 스스로 '지금밖에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면 이 상황에 한계를 짓는 주체가 '내'가 되니 반발심이 줄어들고 (실제와 상관없이) 기회의 희소성이 생겨 욕구도 올라온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감사함을 지니는 것이다. 막상 주어진 기회를 심드렁하게 대하는 건 이미 그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에 기인한다. 하지만 그 기회나 상황은 이전에 내가 열망했던 것이고, 흔치 않은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해 진정한 감사함을 가진다면 좀 더 집중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연예인이 30대의 좋은 점은 20대의 잘못된 점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 게 생각난다. 심리적 반발이 내 삶을 좀 힘들게 했을지라도, 이제는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물론 쉬운 건 아니다. 이미 오랜 기간 쌓인 내 무의식과 방어기제를 뚫고 의식의 한가운데 꼼꼼히 심어줘도 이 나무가 잘 버틸까 말까다. 하지만 나에겐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이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할 이유가 있다. 내가 보다 잘 살 수 있는 비결임을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무 한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는 날,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무척 고마워하겠지. 미리 you're welcome이다, 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