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도 아니면서 정보인 척하는 놈들 다 나와!
최애 작품인 셜록 홈즈에 나오는 한 장면. 왓슨과 셜록이 대화하던 중 셜록이 지동설을 모른다는 사실에 왓슨이 분개하자 셜록이 말한다.
"인간의 뇌는 텅 빈 작은 다락방 같아서 마음에 드는 가구만 들여놓을 수 있어.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여기에 잡동사니까지 전부 쌓아놓지. 도움이 되는 지식이 삐져나오거나 다른 것과 뒤섞여 버리기 쉬워. 정작 필요한 것에는 손댈 수도 없게 돼."
처음 작품을 읽을 당시 추리에 몰입하고자 하는 셜록의 프로페셔널함에 감탄했는데 이제는 그저 부럽다. 왜냐고요?
셜록이 땅에 묻힌지 오래인 지금, 바야흐로 TMI의 시대다. 어플 하나만 열어도 "이것 좀 봐!", "너 이거 모르면 큰일 나!" 하는 '정보인 척'하는 가십들이 태반이고, 유튜브를 켜면 살면서 한 번이라도 우연으로 마주칠까 싶은 사람들의 적나라한 일상이 탕후루처럼 줄줄이 매달려 나온다. 표현의 자유 아래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은 오케이나 문제 삼고 싶은 건 '정보'라는 간판을 달고 전시되는 가짜 뉴스, 기만, 낚시, 유해성 콘텐츠다. 예전에는 '찌라시'는 정보 축에도 못 꼈고 그걸 진짜 정보라 믿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되는대로 주운 영상이나 내용을 운영자 입맛대로 짜깁기해 뭔가 대단한 정보인양 포장해 전시하고 사람들은 손가락과 입으로 근거 없는 정보들을 나른다. 셜록이 봤다면 이런 쓰레기들을 뇌에서 치우느라 허비한 시간 때문에 릴스 운영자를 고소하겠다 펄펄 뛰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또 우려가 되는 건 모든 걸 전시하는 게 당연시되는 미디어 환경과 그 정보들을 당연스레 요구하는 콘텐츠 소비자들의 태도다. 가끔 삶에 흥미가 시들해질 즈음이면 다른 사람의 브이로그를 보며 삶의 방식이나 태도를 참고하곤 하는데, 브이로그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붙다 보니 '이런 것까지 공개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모든 걸 공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더 뜨악스러운 건 그걸 보는 사람들의 태도다. 브이로그 주인에게 본인이 궁금한 내용을 맡겨놨나 싶을 정도로 거리낌 없이 개인적인 정보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대상이 되는 건 주로 경제적 이슈와 관련된 것인데 수입은 얼마나 되냐, 부모님이 뭐 하길래 이렇게 잘 사냐, 어디 사냐 등의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질문받은 사람이 난처해하면 왜 공개를 안 하냐며 화를 낸다. 대체 그게 왜 궁금할까, 그 사람에게 떼인 빚이 있지 않는 이상.
세상이 이렇다 보니 TMI로 여겨졌던 것들이 점차 TMI가 아닌 디폴트가 되는 느낌이다. 뭐라도 향유하고 당장 즐길 게 필요하니 씹을 거리로 만들어지는 가십거리가 정보인 척 점잔을 뺀다. 정보란 쇼핑에서처럼 보다 나은 선택을 위해 필요한 충분조건으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여기저기 목적도 없이 난사되고 있다. 이런 가짜 정보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취향과 지식 등 모든 좋은 것을 쌓고 있다고 믿지만 정말 그런가. 오늘도 포털 사이트 메인을 보며 머리에 잠깐이라도 머물지 못한 수없는 이슈들을 스쳐 지나갔다. 연예인 누가 물의를 일으켰고 이걸 먹으면 살 빼는데 무조건 도움이 되고 기업 총수 누구의 재산이 이만큼 불어났고... 결국 기억에 남은 거라곤 별게 없다. 피로만 가득한 스크린을 덮으니 평화가 찾아온다. 혹시 몰라 내 조그만 다락방에 쌓여 작은 거미줄이라도 생각을 방해할만한 게 있는지 눈을 홉뜨고 찾아본다. 저기, 애플 미디어 행사가 내일이라는 먼지가 구석에 웅크려 숨어있다. 아직 셜록처럼 살려면 멀었다.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