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재수는 없을 줄 알았는데 3수하게 생겼다.
인생에서 동일한 것에 반복해서 도전해 본 적 있나. 흔히 생각나는 예가 대학 입시지만, 날 항상 힘들게 했던 수리 영역이 발목을 잡아 희망 대학에 갈 수 없을 때도 '내 인생에 재수는 없다'는 마인드로 갈 수 있는 대학에 간 사람이 나다. 회사를 다닐 땐 가고 싶은 기업을 꾸준히 두드리기보단 당시 상황과 관심사에 맞는 곳을 들어갔다. 이렇게 얘기하면 욕망도, 의지도 없는 사람 같겠지만 원하는 게 있을 때는 이루고 싶다는 소망, 너무 처절히 원해서 엿보일까 두려웠던 초조함까지 숨길만큼 노력했다. 전자와 후자 모두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다. 노력에 배상처럼 따르는 결과에 대한 기대만 아니었다면 효율성 측면에서는 비등했을 텐데.. 삶에 디폴트처럼 붙는 기대 때문에 전자가 더 낫다, 고 평할 때도 있었다. 요지는 같은 대상에 반복해서 덤벼드는 게 내 삶의 주요 스탠스는 아니란 거다.
그럼에도 브런치 공모전은 다시 도전했다. 이 말은 작년에도 응모했음을 의미하며, (아마) 내년에도 다시 시도할 예정이다. 이유를 찾으라면 글쎄, 간단하게 말하자면 할 수 있는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이라. 복잡하게 말하면 이렇다. 1) 책을 내고 싶은데 내 돈으로 내긴 싫다. 나도 출판사에서 픽 '당해서' 책 내고 싶다. 출판사 직원이 보기에 내 글이 책으로 낼만큼의 상품 가치와 기획력과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인정 욕구의 발현이 이렇게 된다. 2) 기왕 책을 낸다면 거대기업의 어깨에 기대 내고 싶다. 그래야 마케팅도 되고 커리어에 좀 더 도움도 되겠지. 어깨뽕도 올라가고요. 3) 이제까지 브런치에서 연재한 글이 아까워서라도 브런치 공모전에서 승부를 보고 싶다. 다른 곳에 해당 글로 응모하기엔 불필요한 에너지와 시간이 많이 든다. 4) 첫 번째 도전과 달리 이번엔 공모전을 목표로 책 목차나 구성, 주제도 신경 써서 배치했는데 안되니까 오기가 생긴다. 전략을 바꿔서 시도하면 어떨까 궁금해진다. 등등..
4)에 대한 부연 설명을 좀 하자면, 올해 초부터 공모전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 건 맞다. 비건 시리즈도 그렇고 캥거루족도 그랬다. 개인적인 연관성도 있지만 시의성이 있는 주제를 선택했고, 목차 구성도 한 권의 책을 구성할 때 자연스러운 흐름이 느껴지게끔 배치했다. 작년엔 공모전 마감 일주일 전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올해는 이미 써둔 글들을 수정하고, 출판사에 일하는 지인에게 검수를 요청하는데 3주 정도 되는 시간을 투자했다. 실력이 부족했거나, 주제가 매력적이지 않았거나 출판사들과 결이 맞지 않았거나 등 탈락에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만 공모전에 탈락했다고 해서 이 모든 노력들이 아깝지는 않다. 수능 성적이 개판이라고 배운 내용까지 잊어버리지 않듯 노력한 시간은 다 내 글쓰기 근육을 펌핑해 주었을 테니.
지난해 공모전을 탈락하고 나서 "공모전 준비를 하며 가장 감격스럽고 기뻤던 것은 글쓰기를 얼마나 좋아하고, 삶에 와닿아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썼다.(자세한 내용은 https://brunch.co.kr/@writerlucy/58#comments 참고) 올해 역시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 당시엔 짧은 시간 내에 집중하는 몰입도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판단했지만 올해는 그 무엇이라도 쓰려하고, 잘 쓰고 싶어 퇴고를 반복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하며 글쓰기를 이어온 덕에 시리즈 몇 개를 완성한 성실함을 보며 글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내가 느끼는 마음, 머릿속을 휘젓는 생각들을 완벽히 글로 녹여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하지만 가진 것들 중 20프로 정도는 발화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공모전에 탈락했다고 "아씨 안 해!!!!!" 하기보단 "그럼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될까?"를 고민하는 모습 역시 글에 대한 욕망의 발현이다. 그래서.. 진짜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탈락 소감 또 쓰기 싫어요. 저도 합격 수기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