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정의대로라면 잘 살고 있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는 얘기지만 나는 잘 사는 편이 아니다.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캥거루족으로 빠르게 정정하자면 '우리 가족'은 잘 사는 편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잘 사느냐, 못 사느냐는 본인이 위치한 경제적 지위에 따라 판가름된다. 이전에는 집 한 채 같이 내 몸 뉘일 곳 한 칸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자수성가했다 박수 쳐줬지만, 요즘엔 나인원 한남에 살며 오마카세를 말 그대로 '밥 먹듯' 가는 사람들도 본인은 금수저가 아니며 잘 사는 편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니 가격표를 먼저 보는 내가 '감히' 어떻게 잘 산다고 얘기하겠어요.
그럼에도 항상 잘 살고 싶었다. 인턴 시절 백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자마자 가방을 사는데 다 써본 적도 있고, 견문을 넓히겠다고 해외여행도 자주 다녀왔다. 돈이 주는 이기를 적극 활용할 줄 알아야 돈 벌 의지도 커진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가는 곳이 많아지고 보는 것이 다양해질수록 더 많이 벌고 싶었다. 그게 잘 사는 삶의 끝인 줄 알았다. 이 세상에 돈 많은 사람이야 차고 넘친다지만 언젠가 실금 하나만큼은 안에 걸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믿었는데.
최근에는 잘 사는 것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물론 사람은 의식주를 영위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럼 그다음은? 기존의 정의대로라면 그 위에 더 많은 부를 쌓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위에 인간다움을 더하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란 타인에 대한 배려, 공동체 의식, 주입된 사상이 아닌 본인의 머리로 사실과 옳고 그름의 가치를 판단하는 주체성, 더 옳은 가치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자주성 등을 의미한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공간들을 영위하며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보다 좋은 생각을 바른말로 표현하며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이 근래에는 더 멋지고, 닮고 싶다.
살면서 사람의 가치관은 얼마나 자주 바뀔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상충되는 지점에 붙박여 서로를 쳐다보고 있으니 미래의 나는 또 어느 지점에서 그 둘을 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하나 위안이 되는 건 어릴 적 멋도 모르는 상황에서 세상의 흐름에 벅차게 따라가려 애쓴 내가 있다면, 현재는 파도에 둥둥 떠다닐지언정 손쉽게 휩쓸려가지 않을 만큼 뿌리내린 나만의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간편히 성장이라 표현하겠지만, 어쩐지 나는 본질을 향해 한층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으니,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