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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식도 좋지만 비건 레더는 어떠세요?

지속가능하고 튼튼한 레더, 그 이상을 향해

by writer Lucy

비건을 지향하겠다 결심하기 전, 이미 행하고 있던 수많은 행보 중 독특하다 싶을 만한 건 가죽 제품 소비를 지양했다는 점이다. 동물의 내장과 살점을 취하느냐, 겉에 있는 가죽을 취하느냐는 대상의 죽음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무게를 갖는다. 하지만 식육에 비해 소가죽, 양가죽 등의 레더 제품을 소비하는 건 패션 브랜드들의 마케팅 공세와 미디어, 엔터 산업의 막강한 영향력에 의해 럭셔리한 삶을 즐기는 모습으로 표상된다. 이들이 교차하는 지점 중앙에 위치한 나는 2535세대, 싱글, 여성의 특징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패션 홍보를 업으로 했고 덕질 때문에 매일 엔터산업에서 발행하는 콘텐츠를 확인한다. 그럼에도 레더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건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고, 줏대 있다면 줏대 있는 자세인거지. 흠흠.


레더 제품은 대체로 반질반질한 광택, 가벼운 무게, 내구성 등을 특장점으로 내세워 소비자를 현혹하는 경우가 많다. 명품 브랜드들의 경우, 동물 가죽별로 엠보싱이나 겉표면의 질감을 달리 한 점을 소구 하며 고르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번지르르한 포장재에 싸인 이 제품들은 인도, 방글라데시, 중국에서 전기 충격, 목 절단 등으로 동물의 가죽을 벗긴 후 부패 방지를 위해 크롬, 포름알데히드, 납, 비소 등 강력한 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한 결과물이다(동물 가죽 제품에서 풍기는 시큼한 냄새는 화학 처리물이 빠지지 않은 냄새다. 만일 비린 냄새가 난다면 그건 가공 중 제거되지 않은 동물의 지방과 단백질 냄새라고... 으악). 우리가 함께 받아 드는 건 명품 브랜드를 소유했다는 프라이드나 충족감이 아닌 비인간적인 살육과 인공 화학물로 점철된 기괴한 산업구조의 연장이다. 비윤리적인 행태를 꼭 지적하지 않더라도 최근 관세 이슈로 중국에서 공개한 명품 가방들의 원가와 실구매가를 비교하면 레더 제품을 둘러싼 시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허상인지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동물권 보호와 패션 브랜드들의 터무니없는 마케팅 방식에 질려 인공 레더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도 최선의 방안은 아니다. 일단 인공 레더는 가방을 상전 모시듯 들지 않는 내겐 너무 나약하다. 편하게 다닐 때는 에코백을 주로 들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인공 레더 가방을 들고나가는데, 산지 10년도 안되어 겉면이 부식되어 허옇게 나가떨어지더라. 몇 년 전 구매한 인공 레더 자켓도 피부와 자주 닿는 목 부분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조금만 움직여도 외피가 우수수 떨어져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번 사면 오래 쓰는 것이 최고의 리사이클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정도의 내구성은 영 불만족스럽다. 또 인공 레더 제품은 원료가 플라스틱 기반 석유화학 제품인 경우가 많아, 재활용이나 완전 분해가 불가해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단다. 제조 과정에서 유해 화학물질(예: 용제, 가소제 등)이 사용될 수 있고, 온실가스가 발생된단 점도 문제다.


그럼 최선은 뭘까. 흔히 비건 레더라고 부르는 '생분해성 소재나 식물성 원료로 만든 가죽'이다. 실제로 SPA 대표 브랜드인 H&M에서는 농업 부산물인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레더 자켓과 부츠, 가방을 판매한 적 있다(SPA 브랜드가 지속가능한 패션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 같지만 그만큼 유통망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곱게 봐주자). 파인애플 잎은 농가의 부산물을 활용해 자원 낭비가 없고, 가격대도 저렴하며 동물 가죽보다 더 가볍다. 한국 브랜드에서도 자주 보이는 선인장 가죽도 있다. 멕시코 특정 지역에서 생산한다고 하는데, 얼룩이 잘 지워지는 등 관리가 쉬울 뿐 아니라 부드럽고 내구성이 좋다고. 버릴 땐 산업용 퇴비로 생분해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사과나 포도의 찌꺼기를 활용하거나 버섯 균사체를 가공해 만든 가죽도 있다. 예전에 비건 음식이야말로 창의성 발현의 장이 될 수 있겠다 얘기한 적 있는데, 비건 레더 역시 마찬가지인 듯싶다.


tempImageYStYjj.heic 파인애플 레더로 만든 H&M의 가죽 제품들.


비건 레더의 단점이라면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점 아닐까. 2535세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비건 제품을 검색해 보면 화장품만 나오거나, 앞서 말한 인공 가죽을 비건 레더인양 둔갑하여 판매하는 경우가 더 많다. 생분해가 가능한지, 제조 과정에 화학품 등 유해 물질이 없는지 등의 정보 명기도 불충분하다. 또 비건 레더를 어떻게 '갖고 싶은 것으로 만들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레더 제품은 필수재보다 사치재에 가깝기 때문에 단순 가치 소비, 윤리 소비만으로 접근하는 건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다. 기존의 동물 가죽 제품 역시 특정 레더에 대한 선호보단 럭셔리 마케팅에 의해 선택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베블런 효과를 이용해 가격을 높여버리면 소비할까 싶기도 하고. 어려운 문제로군요.


어쩌면.. 특수성을 더 강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처럼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고, 극단으로 갈수록 너드가 아닌 힙스터로 칭송받는 사회에서 비건 레더의 극점을 향해 달려간다면 그 자체로도 컨셉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만일 누군가 나와 '저는 오직 멕시코에서 나고 자란 선인장 가죽만 가죽으로 쳐요'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취급할까, 자신만의 개성과 지조가 있는 트렌드의 선구자로 칭송할까? 최근 같은 흐름에선 후자가 될 수도. 자, 이제 누가 될 거냐만 남았는데요. 거기 계신 여러분, 혹시 한번 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저는 INFJ 회피형이라 좀 힘들어서.. 선봉장이 될 힙쟁이들 급구합니다. 여기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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