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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매일이 불효녀 레전드 갱신 중

자식의 건강이 효의 기본이다..

by writer Lucy

발목을 다쳤다. 가족들부터 지인들까지 "사고 때문에 다쳤어?"라고 물었지만 아니다. 그냥 혼자 넘어졌다. 정확히는 내 성격 때문에 다쳤다. 그날은 어쩐지 갈증과 허기에 잔뜩 독이 오른 채 100m 달리기를 죽을 둥 살 둥 뛴 사람 마냥 마음이 조급하고 모든 신경이 예민했다. 집에 있어도 엄마와 부딪칠 게 뻔해 보여 차를 몰고 교외 카페에 가서 글을 좀 썼고, 고구마 케이크와 카모마일 차로 마음을 좀 다스렸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이마에 불뚝 자리한 뾰루지가 너무 거슬렸다. 일주일 동안 먹을 약을 이미 처방해 온 뒤였는데, 왜인지 약을 다 먹어도 나을 것 같지 않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불안의 회오리는 급하게 근방 병원을 찾게 만들었고 진료실에서 호출하는 소리에 일어나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른쪽 발목이 ㄷ자를 만든 채 안으로 꺾이며 "우두득" 소리가 요란히 났다. 주변에서 "어머, 어떡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음량이었다. 겨우 발을 끌어 일단 피부과 진료를 끝냈는데 다리를 두 번 연속 부러진 전적이 있는 사람의 감으로 이건 단단히 잘못됐다는 예감이 들었다. 즉시 옆 정형외과를 찾았고 결론은 복사뼈 견열골절. 찾아보니 근 두 달을 칩거해야 하는 골절이었다. 발로 딛는 거? 꿈도 꾸지 마시라 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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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9월 초부터 칩거에 들어갔다. 발 한쪽을 쓸 수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머리 감기와 샤워는 1시간을 들여 행해야 하는 대대적인 거사가 되었고 찰나여서 더 아름다운, 지금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가을을 만끽하는 건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만한 건 혼자 사는 처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건데, 출근하는 아빠를 제외하니 결국 남는 사람은 엄마, 이번에도 엄마다. 사실 엄마는 내가 다친 사실을 알리기 가장 껄끄럽고, 어쩌면 무서운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항상 우리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속상함을 화로 표출하는 성격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해 일부러 조카에게 관심이 쏠렸을 때 다친 소식을 전해 화를 면했으나 조카 버프가 끝난 이후에도 엄마는 딱 한 마디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내가 너 승질 내면서 밖에 나갈 때부터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나 이 말 한마디로 끝났다면 감사할 일.


이후부터 엄마는 철저한 서포터로 변신해 내 모든 요구를 불평 한마디 없이 모두 들어주었다. 어쩌면 내가 미리 던져둔, "엄마, 내가 지랄 맞게 굴면 그냥 지랄 맞다고 말해도 돼"라는 말이 유효했던 걸까. 가끔 "그냥 좀 먹어!" 혹은 더 심화된 "그냥 좀 쳐먹어!(쉴드 치자면 저희 엄마 그렇게 상스러운 사람 아닙니다, 일부러 더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라는 말을 하며 우하하 웃는 게 다였다. 내가 한 블록만 내려가면 되는 곳에 위치한 파리바게트 빵이 지겹다며 마을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에 있는 동네 빵 맛집에서 빵을 한 트럭 사달라고 부탁해도, 매 아침마다 껍질 깎기 번거로운 배와 사과만 축내도, 주민센터에서 휠체어를 빌려다 병원 가는 길에 밀어달라고 요청해도 엄마는 다 그래, 그래했다. 목발을 짚느라 뚜껑에 고리가 있는 텀블러 혹은 밀폐용기만 들어 옮길 수 있는 나를 보며 내가 먹을 음식은 죄다 그런 형태의 밀폐용기에만 담아두었고, 일주일에 두 번씩 정형외과에 가는 날이면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심지어 나를 업어 계단을 내려가기도 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자면 엄마는 나와 서른 살 차이가 나며, 몸무게는 엄마가 5킬로 이상 더 나가지만 키는 내가 12센티가 더 크다. 당연하다는 듯 "업어!"라는 엄마에게 몇 번을 "엄마 이거 안돼, 이게 될 리가 없어"했지만 엄마의 우격다짐으로 업힌 등은 작고 단단했다. 나는 항상 작지만 단단한 사람들을 보며 키는 커서 영 맹탕인 나와 비교하며 부럽다, 멋지다 했는데 그날 느낀 엄마 등에 대한 감상은 그런 류가 아니었다. 그냥 슬펐다. 마냥 슬퍼서 더 슬펐다.


아픈 사람이 건강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일이야 어쩌면 자연스럽겠지만 나이 든 엄마에게 기대는 일은 어쩐지 죄스러웠다. 또한 매사에 독립적이고 싶었던 내게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회적으로도 1인분을 못 하고 있는데, 이젠 한 인간으로서 1인분도 못한다고? 꾸역꾸역 하루에 한 번씩 한 시간을 들여 씻고 나와 오히려 땀을 더 빼도 곧 죽어도 저 혼자 씻겠다는 게, 겨드랑이에 상처가 나고 어깻죽지가 상체 근력 운동을 1시간 동안 했을 때보다 더 뻐근해도 병원까지 목발로 가보겠다는 게, 설거지든 청소든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겠다는 게 엄마 입장에서는 독립성이 아닌 비효율의 극치였을지도 모른다. 빨리 나아야 이 고생도 끝나는데 굳이 본인이 하겠다고 나서 설치는 꼴일 수도. 하지만 이 세상 통틀어 내 발목이 나았으면 제일 바라는 사람은 나니까, 결코 무리하지 않았으니까, 할만하니까. 그 핑계로 옆에서 부스럭대는 게 안쓰러웠던 건지, 내 마음이 닿았던 건지 이거 해줄까, 저거 해줄까 했던 말들도 부상 4주 차에 접어든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 한쪽 목발과 안전바를 짚은 채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익숙해졌고 휠체어에 앉아 모기업 회장 흉내를 낼 심적 여유가 생길 정도로 시간이 지났으니 뭐든 다 해줘야 할 듯한 엄마의 의무감도 좀 옅어졌겠지. 아니, 옅어진 건 엄마의 혈중 에너지 농도인가.


다만 내 죄책감은 옅어지지 못했기에 이걸 나름의 웃음 포인트로 승화시키는 중이다. 바로 엄마에게 미안한 부분이 생길 때마다 "나 지금 불효녀 레전드", "나 또 레전드 갱신함"하며 오바를 떠는 거다. 물론 실제로도 레전드 갱신 중이긴 하나..(친한 언니는 엄마가 나를 업고 계단을 올랐다고 얘기하자 본인까지 눈물이 난다고 했다. 언니 그 딸이 바로 나야...) 마약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으니 불효의 레이어로 따지자면 무난한 축에 속하겠으나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어쨌거나 동서고금 막론하고 효의 근본이자 부모들이 바라는 최고의 자식은 '걱정시키지 않는 자식'이니. 물컵 하나만 들어도 위태로움에 가슴 졸이게 하고 끼잉, 끼잉하는 목발 소리만 들리면 자동으로 고개 돌아가게 만드는 자식은 여러모로 효녀는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정신이 건강한 건 보여줄 수 있으니까, 샤워 후 화장실로 다가오는 엄마에게 씨익 웃어 보이니 "왜 그렇게 예쁜 얼굴을 하고 엄마를 봐?" 한다. 아니다, 이 글의 주제는 불효녀 레전드 갱신이 아니다. 이 글의 주제는 어쩌면 '딸 사랑 레전드 갱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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