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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16. 2024

자격지심 없는 사람을 찾습니다.

치부야 있을 수 있다만...

주위에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청첩장 모임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한 끝에, 만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사람 됨됨이를 보니 같이 여생을 꾸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등등 결혼하는 이유도 커플 개개인의 특색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한 지인은 20대 때부터 꾸준히 이어온 소개팅 속에서 현재 신랑감을 만났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소개팅에서 인연을 찾게 된 것에 대해 부러움을 토로하자 그 지인이 하는 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사항보다 이건 진짜 안된다는 최소 기준만 잡고 나가야 마음이 넓어져서 인연을 찾을 수 있어."


그 이야기에 대한 답으로 나는 '식사할 때 쩝쩝거리면서 먹지 않는 사람'을 꼽아 지인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아니 난 진심인데 왜! 식사 예절에 굉장히 민감한 나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였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 외에도 떠오르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자격지심이 없는 사람'. 내가 여성이고 이성애자이므로 특정 성에 한정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만 이 역시 내 개인의 의견이므로 기분이 나쁘실 것 같다 하는 분들은 알아서 뒤로 가기를 누르시면 되겠다.


자격지심. 사전에서 찾아보면 '스스로 보잘것없고, 형편없음을 느낀다'는 뜻으로 소개되어 있고 열등감과 비슷한 워딩으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자격지심을 느낀다. 태어날 때부터 자존감이 엄청나게 강하게 태어나 실패 한번 한적 없는 사람들은 예외일지 모르겠으나, 누구나 상황이나 자신의 처지에 따라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높아질 때가 있고 그에 따라 자격지심이 생길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나 역시 살면서 자격지심을 느낄 때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전이시키거나 공격의 소재로 사용한 적은 없다.


전이나 공격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상대가 있고, 그 상대의 특정 부분이 나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진다. 그럼 그 부분을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 심사가 굉장히 불편한 거다. 그렇게 튀어나오는 말이 "남자들은 키 큰 여자 안 좋아해", "남자들은 자기 주관 강한 여자 안 좋아해" 등. 본인이 가진 특징을 하나의 집단으로 엮고, 그 집단을 상대를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권력으로 치환해 상대가 가진 것에 대해 수치심 혹은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그렇다고 본인의 키가 커지거나 주관이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자 할) 뿐이다. 이런 접근이 만성화되어버리면 방어기제가 굉장히 심해지고 상대를 본인의 잣대로 평가하는 일이 일상이 된다. 다른 지인의 사례 중엔 이런 경우도 있었다. 지인 친구들이 대체로 서울대생인데, 미팅만 나가면 기분이 상한다는 거다. 왜 그러냐고 의아해서 물으니 "나보다 똑똑한 여자 너무 부담스럽고 별로다"라는 이야기를 면전에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띠용스럽지만 그걸 상대에게 당당히 이야기하는 그 태도란..


아무래도 결혼 이야기에서 시작을 하다 보니 특정 성에 한해 이야기를 했지만 겪어본 바에 의하면 성별 관계없이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느낀다. 흔히 '발작버튼'이라 불리는, 본인의 치부를 건드리는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유난히 공격적이고 방어적으로 나오는 사람들,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본인도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꾸역꾸역 그 방법을 이어가려 하는 사람들(정준하 김치전 사건이 생각나는데 나는 그런 행동 또한 자격지심에 의한 방어기제라고 본다). 중요한 건 치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유느님으로 추앙받는 유재석도 단점은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본인의 치부를 어떻게 다루는가고 그게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날 결혼하게 될 배우자에게 원했던 조건들을 살펴보니 변화한 모양새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가정적인 남자랑 살고 싶다'도 아니고 '자격지심 없는 남자랑 살고 싶다'가 기준이 될 줄이야.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만 아직까지도 발견 못했는데 앞으로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정말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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