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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19. 2024

그래도 계속 글을 쓴다.

유일하게 좋아서 계속하는 일이라면.

회사를 관둔 지 8개월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누군가 내게 "요즘 뭐 하고 지내?"라고 물으면 내가 했던 대답은 "불안해하면서 할 거 하고 있어"였다. 그 말만큼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워딩은 없다고 느껴졌다. 할 것이라는 것도, 그걸 어떻게 해나갈지도 혼자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서 내게 그 대상이자 방법이 되어준 건 글쓰기였다. 작년 말, 한 해를 정리하며 브런치를 포함해 다른 플랫폼에 쓴 글들을 합산해 보니 회사를 관두고 보낸 240일 동안 평균 1.4개의 글을 썼다는 결과가 나왔다. 놀랄만한 수치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결과도 아니다. 누군가는 그만큼 글을 쓸 게 있느냐고 물었는데, 하루종일 외부인과 대화하는 일이 점점 적어지는 방구석 한량이라도 나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 욕망이 아마 글로 발현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침에 일어나 청소를 하다 보면 '오늘은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흰 여백을 하고 싶은 말들로, 어쩌면 나도 모르게 숨어있던 감정과 생각들을 표현하는 것은 지금이 아닌 꽤 오래전부터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고 그 힘으로 지난 8개월도 나름 건전한 마음과 안정된 스탠스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어떨 때는 글을 쓰다가 막연한 답답함에 빠질 때도 많았다. 일기만 해도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쓰다 보면 나중엔 알게 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고민이, 이 답도 없어 보이는 고민들이 몇 년 전에 내가 하고 있던 것과 굉장히 유사한 모양을 띄고 있다는 걸. 그걸 알면서도 쓸 수밖에 없다는 게, 그 고민들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는 게 어쩔 때는 지독하게 답답하고 스스로가 한심하고 그렇다. 그 사이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든 벌어졌을 테고, 변화하려면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고 이 고민들이 내가 눈감을 때 내 눈꺼풀에 매달려 저 세상까지 같이 가자할까 무섭다. 또 어떨 때는 문장의 표현이나 글의 구성이 죄다 복사-붙여넣기한 것처럼 너무 빤해서 '이게 과연 재밌다고 읽을만한 글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한참을 맴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죄다 욕심임을 안다. 잘하고 싶으니까 자꾸 부족함도 보이는 거지 애초에 그럴 마음조차 없었다면 이런 고민 따위는 넘어가는 스크롤 마냥 순식간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항상 '하고 싶은 일'을 희구했지만 찾지 못했던 나에게 '남들은 그만큼 시간 들여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하고 싶은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건 없었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대단히 남들보다 열심히 하나, 그런 거 없는데? 근데 유일하게 오래, 남이 시키지 않아도 내가 좋아서, 즐겁게 하는 일이 딱 하나 있었다. 일기 쓰기 혹은 글 쓰기. 말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 차분히 앉아 욕을 쓰든 감상문을 쓰든 소원을 빌든 계획을 짜든 글로 내 마음을 쓰는 게 좋았다. 그때는 이게 내 심리적인 문제나 지친 하루를 돌볼 수 있는 수단이라고도 생각 안 했다. 그냥 그 행위 자체가 좋아서 썼다. 나중에야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거지 애초에 목적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지금 이 글도 별다른 목적이 있어서 쓰는 건 아니다. 머릿속에 '이런 거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서 쓰는 것일 뿐.


글을 계속 쓸 것인가? 라면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말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 소재 부족으로 힘들어해 본 적도 없고 마음속 어딘가엔 뭐랄까... 계속 써 내려가는, 쓸 수밖에 없는 작은 힘이 마를 틈 없이 퐁퐁 뿜어오는 게 느껴진다. 글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 대체로 좋아서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이게 나를 어디에 데려다 줄지 모른다. 솔직히 작년 중순에 처음 공개된 글들을 적어나갈 때도 지금 현 상태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레짐작은 하지 않으련다. 그냥 좋아서, 그렇게 쓰는 글들을 만들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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