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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30. 2024

모두가 예뻐질 수 있는 세상은 이상하다.

교묘하게 당신의 욕망을 조장하는 거대 산업에 대해.

이미 본 것들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지겨워질 무렵, 기존에 백업되어 있던 히스토리를 모두 삭제하고 유튜브에 들어가 봤다. 메인에 뜬 영상 중에 한 유튜버가 이제까지 본인이 받았던 시술들을 종합하여 소개하는 콘텐츠가 올라와있길래 심심해서 한번 클릭해 봤다가 '옳지, 너 잘 걸렸다' 같은 느낌으로 쏟아지는 시술 콘텐츠들을 보고 기함했다. 아니, 내가 모르는 별천지 세상이 여기 또 있구나.


이전에는 연예인이나 관련 업계 종사자 등 일부만 알음알음 알았던 시술이나 메이크업 방법, 스타일링 비법 등이 유튜브 시장에서 경쟁적으로 노출되면서 '예쁠 수 있는' 장벽이 모두에게 허물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밖에만 나가봐도 고등학생들이 웬만한 성인(그 성인은 나다) 보다 화장을 더 잘하고, 모두가 본인 체형이나 퍼스널 컬러, 이목구비가 주는 느낌에 따라 세련된 스타일링을 선보인다. 만일 본인이 지향하는 '추구미'에서 벗어나는 게 있다면 병원에 가서 시술이나 수술을 받으면 그만이다. 피부과는 이제 고작 여드름이나 짜고 알레르기성 약을 타는 곳이 아니라 울쎄라, 인모드 등 이름도 찬란한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시술업장이고 내과에서도 피부 미백에 도움이 되는 백옥주사, 신데렐라 주사 등을 맞을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야 그 욕망을 가진 자들의 것이고, 뷰티 산업이 여성들의 그런 심리를 자극해 거대한 부를 축적해 왔다는 건 이전부터 이어진 담론이라 시시하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지점은 이전보다 전체 산업이 던지는 메시지가 상당히 교묘해졌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이 사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꾸미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나왔고, 한동안 여성들 사이에는 숏컷이 꾸미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표식이 될 때도 있었고 노메이크업이 유행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의 일부)는 '본인이 아닌 사회적 시선 혹은 타자의 인식으로 인해 여성에게 강제되는 것들의 비합리함'이라고 생각하기에 누군가 숏컷을 하든 갸루 메이크업을 하든 본인의 욕망과 의지에 충실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다. 요즘 트렌드를 보면 실제 여성들이 입는 옷이나 머리 스타일, 지향하는 바나 옷을 고를 수 있는 사이즈도 이전보다 다양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꾸밀 수 있는 자유'를 빙자해 백래시처럼 이어진 수많은 '타입형' 상품들은 어릴 적 인형 놀이를 연상케 한다. 나는 쿨톤일까 웜톤일까, 그럼 여쿨일까 겨쿨일까, 더 들어가면 여름 쿨 라이트일까 브라이트일까 딥일까를 고민하며 화장품을 갈아치우고, 스트레이트 체형이니 연예인 누굴 따라서 옷을 사고, 직각 어깨가 되기 위해서 어깨에 시술을 받는다.


또한 이런 것들의 맹점은 누구나 다 연예인처럼 예뻐질 수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물론 당신도 연예인처럼 예뻐질 수 있다, 누군가의 외모를 비교하자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자. 연예인들은 보이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며, 거대 엔터 산업에 의해 철저히 관리받고 스스로도 타 연예인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미용에 쏟아붓는 시간과 금액이 천문학적이다. 바디, 페이셜, 헤어 마사지와 피부관리, 헤어 관리를 받고 나서 부족한 부분은 시술과 운동, 영양주사 등으로 보충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관리를 받았다 한들 화보를 찍거나 영상을 찍게 되면 보정 전문가가 또 따로 붙는다.(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인스타그램 사진 역시 찍어주는 전문가들이 따로 있고, 보정도 한다) 우리가 보기엔 손댈 곳 없어 보이는 완벽한 사진이지만 기업에 의해, 때론 연예인 본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보정 전문가에 의해 한 땀 한 땀 손수 수정된 사진을 보며 우리는 그들이 되길 꿈꾸고 뷰티산업은 '그들처럼 될 수 있다'라고 속삭인다. 유튜브에서 이야기한 여배우 주사만 맞으면, 그 사람이 광고한 화장품만 쓰면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이 자본주의 시대에는 너무나 순수한 발상이다.


홍보를 한 지인들이 주위에 있고, 홍보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처럼 보이는 것들이 중요한 사람들과 등을 맞대고 있는 산업이니 자연스럽게 그쪽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일전에 한번 듣다가 어이가 없었던 건 이런 이야기였다. 국내 최정상 여자 연예인이 화보를 찍는데 화보 리터칭하는 사람들이 짜증을 엄청 냈다고. 왜냐고 물으니 다른 연예인들은 직각 어깨를 만들어와서 보정할 거리가 별로 없는데 이 연예인은 어깨에 승모근이 있어서 일일이 수정을 다해야 되는 게 일이라 그렇단다. 벙쪄서 할 말이 없었다. 언제부터 승모근이 인간에게 있어서 안될 근육이 되어버렸나. 보정하는 사람들한테야 시간을 들여할 일이라 그렇겠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그분의 생각이나 표현과 그렇게 몰고 간 산업의 기이함, 그리고 능력과 관계없이 승모근 하나로 욕을 먹어야 하는 연예인들의 처지를 생각하다 보니 이건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모두가 예뻐질 수 있는 세상은 예뻐지지 않을 자유마저 박탈하는 듯하다. 모두가 팬시하고 세련되게 꾸미고 다니는 세상에서 그런 것들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무언가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본인의 욕망에 의해 그것들이 이행된다면 별 문제가 아니다. 본인이 평생 동안 갖고 있던 콤플렉스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지. 정말 문제는 그 욕망들을 본인의 것처럼 만드는 산업구조 자체다. 너무나 교묘해서 정신을 차려보면 다른 사람의 욕망이 내 것처럼 느껴지고 내 것인 양 표현되는 시대에서,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것이 내 것이 맞는지 들여다보는 일뿐일까. 이 욕망이 네 것이냐, 남의 것이냐. 그것은 제 것이옵니다. 저것은 남의 것이옵니다. 누구나 예뻐질 수 있는 사회에서 생긴 대로 사는 건 죄악일까요.


그냥 암거나 바르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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