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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31. 2024

눈 감았다 뜨니 1월을 삭제당했습니다.

제 31일은 어딜 간 거죠.

1월의 마지막날이다. 신년에는 어떤 일이 있을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2024년 카운트다운을 보고, 1분 차이로 아예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신데렐라처럼 바뀔 나를 기대하던 마음을 숨긴 지 벌써 30일이 흘렀다는 말이다.('지났다'는 표현에는 우두커니 서서 떠나가는 걸 바라보는 의지라도 느껴지는데, '흘렀다'는 표현은 정말 속수무책 흘려보낸 것 같다는 느낌이 더 크다.) 예로부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점점 더 빨리 간다는 말을 듣고 자라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시간이 빨리 가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 서글프고 오싹오싹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진짜 이게 맞는 건가요 지구 선생님.


시간은 상대적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입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렇단다. 심리학에서도 사람마다 시간을 지각하는 상대적인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짧게 정리하자면 일상이 패턴화 될수록, 즉 뻔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단다. 생각해 보면 같은 일주일이라도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을 하는 일주일과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비슷한 일들을 한 일주일은 체감하기에 상당히 다른 속도와 기간을 가진다. 물론 하루하루가 너~~ 무 지루하고 지겨워도 하루가 2주 같겠지만 그건 너무 슬픈 이야기니까 그만둡시다. 똑같은 1월을 보냈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와, 드디어 1월 끝났다' 싶겠지만 나처럼 '뭐 했다고 31일이 그냥 갔냐'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대체로 1월이라면 한해 시작과 함께 세웠던 목표도 열심히 지키고 적어도 작심삼일은 안되게끔 스스로를 다부지게 만드는 달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순삭 된 1월을 돌이켜보면 그랬나? 싶다. 요즘에는 '목표를 가져야 된다고, 목표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강박이고 그 강박이 오히려 초조함을 불러온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1 월치 고는 꽤 독기가 빠진 채로 물렁한 한 달을 보냈다. 곧 개학을 앞둔 학생들이 새로 맞춘 교복을 들고 시내를 쏘다니는 걸 보며 차라리 어른에게도 방학과 개학이라는 개념이 있었다면 어른들도 지금보다는 활기찬 새해를 맞지 않았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도 해봤다.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강제가 아니면 시작도, 마무리도 잘하지 못하는 이런 어른이라니. 새해가 되어도 철들긴 아직 멀었나.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세 번의 1월 1일이 있다고 하지. 첫 번째는 양력 1월 1일, 두 번째는 음력 1월 1일인 설날, 세 번째는 3월 2일. 마지막에 꼽힌 3월 2일을 보면 아직 철들지 못한 게 나뿐만은 아닌가 보다. 올해 설도 벌써 다음 주로 다가온 마당에, 세뱃돈을 받긴커녕 줘도 모자랄 판인 그득한 나이가 밉지만 다시 한번 고삐를 조여보리라. 어딘가 데자뷰처럼 느껴지는 새해 결심도, '이젠 좀 바뀌어야 하지 않나'하는 다그침도 1월 말이니 완성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시간대로, 시간을 상대하는 감각과 생각이 다르듯이 내 플로우대로 가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소망은 아직도 빼꼼 나를 부른다. 설날이 되면 '완전히 새로운 나' 어떻게 안될까요.


자그맣더라도 한발 한발 나아가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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