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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Feb 01. 2024

손재주가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만두, 마카롱, 쿠키.. 다음은 뭐냐!

며칠 전 엄마가 저번 김장 때 담은 알타리 무김치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왜 자꾸 쓴 맛이 나지? 그러니까 먹기가 싫어져."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특정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 자체의 맛보다는 쓴 맛을 자꾸 느꼈고, 이번 알타리 김치에서도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저런 알타리 무는 들기름에 지져 먹으면 맛있는데... 생각하던 차에 아이디어가 하나 났다. 어차피 지져 먹으면 얼마 안돼 식탁에서 찬밥 신세를 면하기 힘드니 차라리 만두를 빚자고. 가볍게 던진 탁구공만 한 불평이 돌덩이만 한 과업이 되어 돌아온 것을 본 엄마는 잠깐 망설이더니 '만두피를 사오라'고 지시했다. 예썰.


마트에 가서 만두피와 만두에 넣을 부재료를 사 갖고 온 후, 엄마가 만두 속을 만드는 동안 붕어싸만코를 먹으며 한갓지게 여유를 부렸다. 속재료가 준비된 순간 비장하게 식탁에 앉아 만두피 수를 헤아려보니 총 100개. 요이땅! 하고 시작한 후 만두를 다 빚을 때쯤 고개를 들어보니... 2시간이 순삭 되었다. 엄마가 만두 보관이 용이하도록 만두를 찌고, 주변을 정리할 동안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만두에 온 힘을 다 쏟은 거다.


한 땀 한 땀 빚은 만두. 꽤나 예쁘지요?


손재주가 없는 줄 알았는데 만들어진 만두를 보니 제법 그럴싸하다. 엄마는 옆에서 어쩜 만두도 꼭 자기 닮게 만드냐고 하는데 좋은 말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여야지. 사실 손재주가 없다고 생각한 건 다 유구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 시절, '기술가정'이라는 과목의 수행평가를 위해 바느질을 했어야 했는데, 솔직히 '바느질'이라는 행위 자체가 지금 시대엔 불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다. 그냥 세탁소에 맡기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마음으로 했으니 정성이 들어갈리는 만무했겠지. 내가 봐도 엉망진창인 바느질을 보며 지나가던 선생님이 하셨던 말. "00이는 영 손재주가 없네."


그 이후론 별 손재주가 없는 사람인줄로만 알고 살았다. 그러다 몇 년 전 취미 겸 생산적인 활동 겸 베이킹을 배웠는데 그때 처음으로 '오, 나 손재주가 있는 사람일 수도?' 하는 생각을 했다. 웬만한 살림은 다 거쳤기에 손끝이 야무지시다는 3040대 분들도 어렵다는 마카롱 짜기, 쿠키 모양 잡기 등 짤 주머니만 들었다 하면 그럴듯한 완성품을 만들어냈으니. 선생님이 왜 제과 자격증을 안 따냐고 안타까워하실 만도 했다. 흠흠.


이번에도 만두를 빚으며 그 기억을 되살려보니 다른 것도 좀 해볼까? 싶은 마음이 불쑥 든다. 살면서 많은 것들을 사사로운 일로 '나의 길은 아니네'하고 접었다만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도 작은 발견 하나에서 온다. 어쩌면 먹을 것에 너무 진심이라 더욱 집중해서 그랬던 걸까. 예전에 도전했던 키링 만들기 역시 바느질에서 처참하게 실패해 없던 일이 되어버렸으니. 또 뭘 만들어보면 좋을까. 다가오는 설날에 전을 화려하게 부쳐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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