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아프게 할 뻔했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했다. 남편이 출근하는 길에 좀 일찍 나가면 된다며 역까지 태워주기로 했다.
그는 외출 전 의식을 치른다. 나가기 직전에 화장실 가는 습관 있다. 가만있다가도 집을 나서야 하는 타이밍에 신호가 오나 보다. 갑시다~! 하며 나서는데 잠깐만! 하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어김없다. 평소에는 상관없지만 오늘처럼 기차 시간 맞춰야 할 때는 마음이 불안하다. 출발이 늦었다.
일광역에서 부산역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린다. 일광역에서 부산 교대역까지 가는 동해선은 배차 시간이 길다.
전철 타는 시간 한 타임 놓쳤다. 환승할 때도 뛰고 부산역에 내려서 KTX 플랫폼까지 계속 뛰었다. 캐리어를 끌다가 들고 온 힘을 다해 뛰었다.
부산역 5번 플랫폼에 기차가 한 대 서있었다. 내가 탈 차가 맞는지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타는 곳 번호는 맞으니 일단 올라탔다. 승무원이 내가 뛰어오는 걸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타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다른 때 같으면 취소하고 다음 차 탔을 거다. 뛰면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 뛰는데 못 타면 안 되지 오기도 생겼다.
몇 호 차인가 확인했다. 14호 차다. 한참을 걸어서 내 좌석이 있는 5호 차로 왔다. 캐리어 끌고 통로로 9칸을 이동했다. 다른 사람들 방해될까 캐리어와 가방을 몸에 밀착시키고 잔뜩 움츠린 채 한가운데로 똑바로 걸어야 했다. 바깥에서 걷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다.
5호 차 짐칸에 캐리어를 두고 좌석에 않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땀범벅이다. 호흡이 진정되지 않는다. 객실 밖에서 숨 고르고 들어왔다. 꽤 무거운 캐리어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어깨도 팔도 손목도 아프다. 뛰다가 발목도 살짝 삐끗했나 보다.
내가 숨이 차서인지 기차 안 공기가 탁하게 느껴졌다. 오렌지 오일 한 방울을 손바닥에 떨어뜨려 비볐다. 상큼한 향이 퍼진다. 기분이 좋아진다. 페퍼민트와 오렌지 오일을 손바닥에서 섞어 핸드크림을 더해 발목과 종아리에 발랐다. 나머지는 어깨와 팔, 손목에도 발랐다. 기차 공기가 시원해졌다. 부산역 도착 예상 시간을 기차 시간과 한 시간 이상 여유 두 길 잘했다. 안 그랬으면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었을 거다. 다행이지만 힘들었다. 외출 전 그의 루틴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뛰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 들었다.
아니지, 그건 아니지. 몰랐던 것도 아니고 집 나서기 전에 매번 화장실 간다는 거 알고 있으면서. 그래서 여유 있게 시간 계산했던 거잖아. 결과적으로 기차도 탔잖아. 다음 차 타도되는데 뛰기로 선택한 건 너잖아.
그는 나 때문에 한 가지 일을 더 한 셈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더 여유 있게 출근했을 테니까.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데! 내 몸이 좀 힘들었다고, 기차를 못 탈 뻔했다고 해서 출근길에 역까지 태워다 준 그의 탓을 하다니! 태워다 줘서 고맙다고 카톡 보내야지.
갈 길이 먼 데, 늦게 출발했다. 전철 타러 가는 차 안에서 조바심 났다. 남편은 운전에 도 집중했다. 나는 디지털시계 숫자 올라가는 것만 째려봤다.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행 기차를 탔다.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남편이 온몸에 피로와 통증이 몰려왔다.
기차를 못 타게 되었다면 더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결과는 좋았지만 과정은 형편없었다.
내 입장만 집중하다 보면 다른 팩트가 보이지 않는다. 내 상황만 중요하게 보면 감사해야 할 일이 돌연 탓이 되기도 한다. 늦을 거라는 생각에만 지배당했다.
남편 때문에 늦었고 몸이 고생했다 생각했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내 생각만 했다. 미안했다. 이런 나를 위해 애써준 그가 불쌍했다. 하마터면 나를 위해 자기 출근 시간까지 내어준 사람에게 큰 실수할 뻔했다.
다행인 건, 그에게 나의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거다. 차 안에서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만약, 남편이 화장실 가느라고 늦었다는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나 혼자 북 치고 장고치고 하길 잘했다. 이렇게 반성하고 감사하다고 톡을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나고 보니, 기차를 못 타면 어떻고 일정이 늦으면 좀 어떤가 싶다. 못마땅한 면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불편한 일이 생겨도 뭐 그리 큰일인가 싶다. 우리 가족이 안전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 든다. 불만 섞인 말을 하고 싶어도 급한 일부터 해결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그 일이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잠시 미뤄두어도 괜찮다. 자칫하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말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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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성장 에세이스트 최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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