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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담 Nov 17. 2021

위드코로나와 회식 그리고 인식의 변화

코로나, 수년만의 회식


코로나 이후에 처음 참석한 공식적인 저녁 회식자리였다. 그전까지는 코로나 이후에도 회식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점심 회식이었다. 10번 중 6~7번은 도시락을 배달시켜서 사내 식당에서 먹는 회식이었고(구내식당밥보다 훨씬 비쌌지만 맛은 별로였다), 나머지는 점심시간에 4명씩 조를 짜서 몇 개의 식당에 흩어져서 밥을 먹고 오는 회식이었다. 그 외 남은 비용은 틈틈이 스타벅스 커피를 단체로 주문해서 소진하곤 하였다.


두어 달 전에 백신접종자 포함 4명이서 저녁 회식을 한 적도 있었다. 위드코로나 전이었고 4시 반에 소고기집으로 가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유연근무제로 일을 하고 있어서 서둘러서 4시에 나갔으나,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 있어 쉬는 시간이었다. 회사 근처의 소고기집들이 거의 5시부터 저녁 장사를 한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하긴 오후 4시에 소고기라니 생각해보니 안 어울리기도 했다. 6시 전에 다 먹을 생각이 먼저였어서 떠올리지 못했던것 뿐. 브레이크 타임 없이 문을 연 곳을 간신히 찾아서 4시 30분이 넘어 입장할 수가 있었다. 저녁 6시 이후로는 2명만 식당에 갈 수 있었다. 6시까지 부지런히 고기를 먹고 일부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기도 했고 나는 집으로 갔다. 집중해서 먹기만 하고 헤어졌던- 비용을 쓰기 위한 오후의 회식자리가 코로나여도 있긴 했었다.


그러니 저녁에 모여 공식적으로 술 한번 마셔보자며 두 테이블을 붙여 고기를 먹고 소주 맥주를 마시는 그러한 삼겹살 회식자리는 2년 만이었나 보다. 팀장님까지 대동한 아주 보기 드문 오피셜한 회식이었다. 오랜만의 회식 속 어색했던 분위기는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두툼한 삼겹살과 목살과 소맥 제조와 함께 이내 곧 사라졌다.



첫 잔은 소맥이지-

첫 잔은 그냥 속 달래는 맥주죠-

어떤 걸로 하실래요?

저는 소맥-

저는 그냥 맥주만 조금 따라 주세요

아 저는 원래는 소준데.. 소맥으로 시작할께요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한잔 하시죠-


테이블 끝자리에 앉았던 나는 짠을 하려니 자리가 멀어 손을 더 길게 여러 번 뻗어야 했다. 뜨거운 불판 위로 삼겹살 익어가는 소리 위로 여러 개의 유리잔이 시차를 두며 쨍-부딪히는 소리가 앉은 자리에 울렸다. 수년만에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회식의 시작 소리였다.






사무실에서는 상시 마스크 착용이 기본이자 당연히 지켜야 하는 룰이 된 지 오래이다. 수시로 사내방송이 나오고 엘리베이터 스크린에도 지켜야 할 수칙 중 하나로 반복해서 소개가 된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그것을 지키고 있다. 말하지 않고 혼자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있을 때는 마스크를 잠시 빼기도 하지만, 옆자리 사람과 대화를 할 때나 전화통화를 할 때면 얼른 마스크를 낀다. 마스크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모두의 예의이자 어기면 안 되는 모두의 룰이 되었다.


사내 식당은 각 자리마다 아크릴 파티션이 둘러져있다. 이곳에서 밥을 먹으라는 표시가 있는 곳에서만 교차로 띄어 앉아 밥을 먹는다. 예전에는 그렇게 점심시간에 자리가 부족해서 자리를 찾아 헤매곤 했는데 그때가 기억이 아른거릴 정도로 요즈음의 사내 식당은 자리가 넉넉하다. 사람은 변하지 않았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의 비율이 항시 있다 보니 생긴 변화이다. 또 식사 중에 대화를 나누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보니 여럿이 밥을 먹으러 갔다 하더라도 혼자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굳이 그런데도 여러 명이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로의 밥 먹는 시간을 기다려주며 함께 밥을 먹는 이유는 점심식사 후의 산책이나 티타임을 위함이다. 요즈음의 나처럼 점심시간에 같이 일하는 멤버들과의 산책이나 티타임을 원하지 않다면 그냥 혼자 밥 먹는 게 더 편하고 자연스럽다.


이제는 사내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밥 혼자 먹는 사람은 대개 연차가 지긋이 높은 사람이거나, 직책 높은  조직관리자이거나, 팀원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개인 성향이 강한 나이 어린 후배 사원들이었다.  밥 먹을 사람이 없는 걸까- 아웃사이더일까- 하는 의문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아, 저 사람도 나처럼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신문기사를 보면서 밥을 먹는 일이 편하구나,  혼자 산책을 하거나 커피를 사도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이다.




-

어리게 보긴 했는데 마스크를 빼고 보니 더 어려 보이네요?


짧게는 6개월 혹은 길게 1년여를 같이 일했더라도 마스크를 빼고 마주 앉아 얼굴을 보며 밥을 먹고 마주한 일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팀장님과 대각선으로 앉은 나 역시도 그랬다. 이 부서에 온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 마스크를 빼고 얼굴을 마주한 일은 처음이었다. 최근 부서 이동을 한 터라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조직의 리더인 팀장님과는 자리를 이동한 첫날 마스크를 낀 채 인사를 하고 온 일이 전부였다. 회사 같은 팀 분들과도 마스크를 쓰고 보는 얼굴이 더 익숙했다. 마스크 없이 제법 긴 시간을 마주 앉아 삼겹살을 먹고 있는 그 상황이 낯설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바라본 시간조차도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 회식자리는 마치 꼭 챙겨 입어야 하는 겉옷을 안 입고 있는 것처럼 이상하고 허전했고 약간은 머쓱했다.


위드코로나로 저녁 모임이 가능해졌지만 회식자리가 마련된 것은 단합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던 팀에서 몇몇 사람의 부서 이동이 정해졌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그 일을 완수하는 동안 코로나로 제대로 식사 한번 못했으니 이동 전에 함께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회식자리였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정기 회식자리였다면 나는 아마도 굳이 참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고민을 하며 비슷한 연봉체계 안에서 함께 으쌰으쌰 하며 함께인 것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었던 직장 문화는 코로나와 함께 이미 많이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팀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울리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종종 맥주 한잔을 함께 하면서 어울리는 것이 당연했던 모두의 인식은 개인의 위생과 안전 수칙을 준수하며 개인 생활을 더 지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졌다. 2년여 만에 회식을 했더니 옛날 생각이 났다. 손이 쉴 틈 없이 술잔을 부딪히고 기울이는 시간과 의미 없는 우스꽝스러운 말과 웃음소리가 함께 섞여 퍼지는 시간이 싫지만은 않다. 술잔을 더 자주 부딪히며 기울였고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몇 개월간 일하며 들었던 이야기보다 더 많은 말이 들렸다. 주변이 시끄러워 대화가 다 기억나진 않지만, 부서에서 일하는 건 어떤지- 십수 년 해온 직장 생활은 어떠한지- 육아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어떠한지 그런 말들도 주고받았던 것 같다.


이런 회식 자리는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했지만 더 이상은 보통이 될 수는 없었다. 위드코로나로 회식이 가능해졌다고는 해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니까. 개인 위생과 개인 약속을 사유로 단체 회식에 빠지더라도 팀장, 선배사원이 핀잔주거나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고 이미 알게 모르게 회식에 대한 인식 바뀌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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