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1970년대 후반 영국이라고 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남성이 일을 하고 여성이 가정을 돌보는 기존 가족 노동 형태에서 남성과 여성,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가 모두 일을 하는 형태로 변하면서 등장한 용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의 밸런스를 맞추는 용어로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집단을 우선시하는 문화에서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문화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워라밸이 등장했고 지금도 워라밸이라 하면 회사와 내 삶 그 둘 간에 어떻게 균형을 맞춰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때 사용되는 모습이다. 주 52시간이 도입된 지금, 회사에서 주위 분들을 둘러보면 이제 직장인의 워라밸은 조금은 현실이 된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코로나로 다른 무언가를 하기보단 대부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긴 했지만, 예전보다는 다들 집에 일찍 가는 것은 분명한 변화였다.
그러면 일하는 엄마, 9 to 6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의 워라밸이란 어떤 것일까.
아니 애초에 가능한 것이기는 했을까?
새해가 되면서 큰 아이가 열두 살이 되었다. 첫째가 열두 살이 된 것은 곧 내가 맞벌이를 하며 워킹맘으로 살아온 시간도 그만큼이 된다는 셈이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을 맞벌이로 늘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에 메마른 워킹맘으로 살아왔다니. 그런 와중에 지금은 글을 쓰려고 바둥대고 있다니. 여러 가지로 다 놀랍기는 하다.
밸런스를 추구 하기 이전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먼저.
나는 어릴 적에도 특별히 욕심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집에서는 고집스럽고 자기밖에 모른단 이야길 듣기도 했지만 학교에서는 원하는 것을 드러내고 추구하는 성향과 거리가 멀었다.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학생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난 내가 그래서 직장일도 적당히 하고, 육아도 살림도 늘 적당히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일을 잘해야 하는 것도 당연했고,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 와중에 집도 잘 꾸미고 싶고 살림도 요리도 잘하고 싶어 했으니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육아휴직 중일 때였다. 받아쓰기를 앞두고 왜 내가 더 긴장하는지, 한 번씩은 꼭 써가게 했다. 미리 채점도 해보고, 틀리면 큰일 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다시 써보라고 고치고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단원 평가를 앞두고 수학 문제집을 풀리면서는 수학 학원에 다니는 아이가 계속 틀리고 문제를 이해 못하는 모습에 소리를 얼마나 질렀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엄마표 영어를 제대로 실행 해나가지 못함에 늘 아쉬웠고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다.
그동안 일에 전념해왔으니 휴직하는 동안에는 나 스스로 부족하다 여겼던 가정 살림 쪽의 나를 채우고 싶었는지, 나는 휴직을 하자마자 요리수업을 찾아 등록했다. 요리를 배워오고 집에 와서 그날 배운 요리를 만들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뿌듯해했다. 수영 강습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이 공부를 챙기고 요리를 배우는 것이 아주 오랜만에 나의 시간이 생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맞았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워라밸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직장이 있는 여자는 일도 육아도 살림도 다 잘해야 한다- 라는 나도 모를 그 사회적 관념에, 슈퍼우먼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그런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달았나 보다. 교육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에 조급한 엄마는 종종 불안함에 아이를 몰아세우고 다그치고 아이를 깎아내리는 말들마저 쏟아내곤 했다. 그러고선 다시 후회로 마음이 무거워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내가 왜 그랬는지 여러 번 곱씹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의 입시 성적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그렇게까지, 모든 자원을 투입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그때의 난 왜 그래야 했을까?
나의 가치관보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더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잘 몰라서, 내가 원하는 것을 천천히 시간을 두고 바라본 적 조차 없어서였던 것 같다.
막연하게 워라밸을 추구하기보다 내 아이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나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제대로 찾아가는 일이 먼저였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러려면 결국 일하는 시간 외의 시간이 넉넉하게 필요하기도 하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보다 워라밸을 통해 나에 대해 이전보다 더 사유해보고 탐색해보는 삶,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남들이 다들 그게 맞다고 이야기하는 것들 말고 그 안에 숨겨진 나만의 진실을 찾아가는 일 말이다. 해야 할 일들과 지켜야만 하는 당연한 것들에 대한 엄격한 잣대로 스스로를 괴롭히기 쉬운 보통의 워킹맘이라서 더 그렇다.
스테르담님과 함께 수요글쓰기 험프데이1기를 4주동안 함께하며 매주 즐거운 글쓰기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쓰기의 제시어는 "균형" 이었어요. 균형에 대해 쓰면서 워킹맘의 워라밸을 생각해보았고, 워라밸을 무작정 추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자칫 우리가 쫓는 워라밸이 막연한 환상은 아닐까 생각해보며 글을 써보았어요. 저도 한때는 일하는 엄마로 이것 저것 다 잘해내야 한단 관념으로 기준에 못미치는 나를 자책하고 과도한 기대치로 아이에게 상처도 주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글을 쓰려면 자연스레 생각을 하게 되고 쓰다보면 의심하게 되고 되묻게 되는데 그런 과정들이 나를 되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