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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담 Feb 07. 2021

동생의 꿈은 언니가 되는 것

당신의 욕망은 누구의 욕망인가요.

세 돌이 채 안 지난 네 살 둘째가 강한 어조로 말을 꺼낸다.

"난 언니가 되고 싶은데."

"난 언니 될 거야."


 언니처럼 밥을 싹싹 다 먹지 못했거나, 혼자 샤워하고 머리 감으러 간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꺼내는 둘째.

"엄마, 나도 커서 언니가 될 수 있을까?"

이번엔 걱정스러운 말투에 어리광을 섞어가며 말한다.



동생이 생기면 언니가 되는 거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 언니가 되는 것이지 그게 뭐 별거라고.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언니는 그냥 되는 거지 꿈이 아니야-라고 말이다. 우리 둘째가 이야기하는 언니란 그런 보통의 상황에서 쓰이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칭하는 언니는 아니다. 둘째가 되고 싶은 언니란 정확히 열두 살로 본인보다 여덟 살이 많은 예비 초등 5학년인 첫째 수인이다. 여덟 살 차이 자매. 열두 살 언니와 네 살 동생.  키부터 모든 면에서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늦둥이 둘째의 꿈은 나이가 여덟 살이나 많은 언니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럼 우리 수아도 쑥쑥 커서 언니처럼 될 수 있지. 언니보다 더 클 건데 우리 수아는."

근심이 조금은 풀린 듯, 어리광을 섞어 대답한다.

"정말 그럴까? 나 언니 될 수 있겠지 엄마?"






열두 살 첫째에게는 6살 무렵부터 함께 해온 토끼 인형 미미가 있다. 언니의 것이라면 이유불문 무조건 욕심내는 것이 동생들의 본능이다 보니 첫째에게 미미를 아끼는 티를 내지 말라고 진작부터 당부를 해왔다. 둘째 모르게 첫째 수인이와 몰래 안 보이는 눈짓을 주고받아가며 그렇게 애를 썼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어느새 둘째는 언니의 그 토끼 인형을 자기의 최고 애착 인형인 양 사랑을 표현하고 껴안곤 한다. 잠시라도 둘째가 그렇게 인형을 안고 가버리면 첫째는 정말 눈물을 글썽거리며 속상해한다. 그리고 여전히 잠이 들 때마다 매일 밤 인형과 함께 한다. 지금도 뜬금없이 내게 인형을 들고 와선 이쁘지 않냐, 때가 타지 않았느냐 물어보니 말이다. 첫째에겐 그 인형이 오래도록 애정 어린 마음을 나누고 지내온 사이라면 둘째에겐 언니의 인형이니 따라서 잠깐잠깐 좋아하고 금방 잊는 정도인 셈이다.


네 식구가 작은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을 때면 같은 말이 두 번씩 들리곤 한다. 첫째가 하는 말을 둘째가 그대로 따라 할 때가 많아서이다. 자기 말인 것처럼, 자기 생각인 것처럼 따라 말하곤 하는데 여느 형제나 자매들처럼 나이가 고만 고만하니 비슷했다면 아이들은 참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두 자매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누가 봐도 첫째의 말을 생각 없이 둘째가 따라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는데.


여느 날처럼 네 명이 작은 식탁에 모여 앉아 저녁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요즘 많이 쓰는 zoom 줌 어플의 발음이 줌이 맞니, 즈-움이 맞니 하며 말하고 있었다. 이번엔 첫째가 줌에 이어 Zem 잼이라는 휴대폰의 시간관리 어플 이름을 꺼냈고 잼이라고 하지 즈-앰이라며 z발음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고 넘어가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나 어린이집 재밌는데."

"나는 어린이집 가면 재미있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어플 이름의 대화 사이에 당당하게 끼어든 네 살 수아. 어린 꼬마를 잠시 잊고 떠들던 우리 셋은 동시에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불쑥 끼어든 둘째의 말투는 무척이나 당당했고 얼굴 표정은 단호했다. 말없이 밥을 먹고 있는 줄 알았더니 우리 셋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가 잼이라는 어플 이름이 여러 번 나오자 '재미'란 단어를 들고 씩씩하게 대화에 참여한 것이었다.


밥을 떠주면 안 먹는다고 고개를 휙 돌리던 둘째는, 첫째가 나서서 언니가 먹는다, 언니가 먹어야지~ 말하는 순간 입을 크게 벌리고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린다. 그리고 수아는 세 살 때부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공부하는 거 좋아해."

"나는 언니처럼 공부할 건데."


세 살, 네 살 아이가 할 말이 아닌데 아무도 시키지 않은 공부라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귀엽고 웃기면서 동시에 아련하기도 하다. 모든 동생들이 언니를 모방하며 그렇게 자란다고 했다. 수아에겐 하필 모방해야 하는 언니가 곧 초등학교 5학년이라 언니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빼앗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월한 능력을 갖춘 존재이자 우리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충분히 자리한 열두 살 언니를 모방하고 싶어 하는 둘째를 보며 인간의 사회적 본능과 욕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역시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남기 위해 여전히 타인을 모방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접해온 세상이 그리 넓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 작은 세상 그 안에서 존재의 인정을 받고자 그토록 애써오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유 없이 언니가 애정 하는 인형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둘째. 언니의 말들을 따라 하고 행동을 닮아가고 싶어 하는 둘째. 나 또한 그런 과정을 반복하고 반복해오며 지금에 이른 것은 아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 순간 소름이 듣는 것 같았다. 지금 나의 모습이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이 맞았을까.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의 욕망을 욕망해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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