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라는 것을 처음 만들었다. 비행기 한 번 안 타본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게 될 비행기는 제주도도 아닌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여객기였다. 회사 선배는 내게 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오면 된다며 일러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한참이 지나서 리무진이 공항버스의 이름인 것을 알았다. 공항버스라고 말하면 될 텐데 왜 꼭 다들 리무진이라고 부르는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선배는 출장 경비 처리를 해야 하니 공항버스 영수증을 꼭 챙기라고도 알려 주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경계에 있던 날 나는 긴장한 채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하얀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 시커멓고 커다란 배낭과 3개월간 지낼 짐을 넣은 캐리어까지 함께였다. 회사에서 출장 갈 때는 한 손으로 드는 노트북 가방은 분실하기 쉬우니 노트북은 반드시 백팩에 넣어서 가라는 당부가 있었다. 그 당부가 아니더라도 개발용 노트북은 여자 힘으로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법한 무게가 아니기도 했다.
좁은 이코노미석의 장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하고 몽롱해질 무렵 다빈치 공항에 도착했다. 자다 깨며 기내식을 두 번이나 먹고 도착한 로마는 한낮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도착한 로마를 제대로 느낄 여유는 없었다. 마중 나온 회사 사람을 만나 차에 탔다. 건물 없이 길게 뻗은 낡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가끔 눈에 들어오는 이태리어 간판만이 이곳이 로마임을 상기시켰다. 짐을 들고 한 달간 일하게 될 사무실에 도착했다. 해질 무렵에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숙소에 들릴 수 있었다. 아침이 밝으면 출근하고 한밤중이 되면 퇴근했다. 돌아온 주말도 우리는 사무실로 갔다. 에어컨으로 서늘한 사무실과 숙소를 오가면서 계절과 시간 감각이 흐릿해질 때, 선배의 한마디가 들렸다.
“이러다 로마 시내 구경 한번 못하고 그냥 가겠네.
오늘은 일찍 정리하고 콜로세움 앞에 가서 피자라도 먹자고요.”
차마 내가 못 꺼내던 그 말이었다. 업무를 서둘러 정리했지만 이미 깜깜해진 밤이었다. 우리는 선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로마로 향했다. 아스팔트로 덮여 있던 길은 곧 작은 돌들로 포장된 울퉁불퉁한 길로 바뀌어갔다. 주변은 역사 속 중세 시대 풍경으로 점차 바뀌어 갔다. 사무실에서 로마 시내까지는 금방이었다. 해가 진 밤이지만 조금 걸었다고 이마에 땀이 맺혔다. 얇은 티셔츠가 몸에 끈적하게 붙었다. 도착했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들자 철로 된 성문이 보였다. 뒤편으로는 붉은빛 조명 아래 로마 왕으로 보이는 기마상이 보였다. 어두운 도시에 붉은 조명이 기마상과 중세 시대 건물을 비추었기에 처음 마주친 로마는 더 강렬했다. 베네치아 광장은 과거의 것들로 가득했다. 방금 전 사무실과 이곳이 같은 시공간인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날 저녁 처음으로 로마에서 피자맛을 보았다. 일행 중 누군가 멸치 피자라고 부르며 질색을 했던 짜디짜고 비릿한 엔초비 피자맛. 한 조각을 겨우 먹고 더 먹지 못했다. 콜로세움 앞의 노상 카페에서 후덥지근한 그날 밤공기를 가라앉힌 차가운 맥주 한잔까지. 그 여름 로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한 장면이다.
본격적으로 더위가 찾아오고 나는 다시 공항 출국장에 왔다. 두 번째 비행기 탑승이라 익숙할까 싶었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인천 공항에서 대한항공 국제선을 타는 것과 외국 공항에서 외국 항공사에 체크인을 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다가 용기를 내서 영어로 공항 직원에게 질문을 했고, 직원은 게이트의 방향을 알려주었다. 로마에서 런던까지는 비행시간이 길지 않았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내게 금발에 파란 눈동자의 남자 승무원이 다가왔다. 영국 보이밴드 한 명인 듯 잘생긴 얼굴, 진한 향수 냄새. 잘 정돈된 구렛나루에 젤을 발라 머리를 세운 그가 내게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날 영국 억양의 워-터-(Water)를 내 귀로 처음 들었다. 그 오묘한 영국식 억양의 워-터-가 Water라는 것도 한참 지나 이해했으니 그 승무원이 내게 뭐라고 말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내 이름을 말하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조금 이따가 다시 부를 건데, 그때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직원이 피켓을 들고 픽업을 나와있을 거라고 했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영국식 발음의 네이티브 스피커가 내게 하는 말의 1/3 즈음은 들렸다. 중고등학교의 영어 듣기 수업과 토익 리스닝이 아주 허튼 짓은 아니었나 보다. 그 보이 밴드 멤버를 닮은 영국 승무원이 다시 와서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눈빛과 손짓을 보아하니 지금 앞으로 나오라는 것 같았다. 비즈니스석 비행기 출구 바로 앞이었다.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내렸다. 본능적으로 빠르게 걸어가며 영국 승무원이 말한 홍콩행 피켓을 들고 있는 항공사 직원을 찾았다. 피켓을 들고 있는 키가 크고 배가 두툼한 자주색 유니폼의 백인 중년 여성이 보였다. 피켓의 번호가 내가 환승할 콴타스 항공편이었다. 피켓을 보고 모여든 승객은 나 말고도 두 세명 더 있었다. 직원의 손짓과 눈짓을 따라 쉬지 않고 뒤를 쫓았다. 어느새 공항 터미널 밖이었다. 대기 중인 비행기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가까이 보였다. 곧이어 승무원을 따라 승합차에 탔고 차는 잠시의 기다림도 없이 부웅-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공항 바람을 맞으며 노트북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개발 자료가 들어 있는 업무용 노트북만큼은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당부가 떠올랐다. 정작 3개월간 지낼 내 짐이 실린 캐리어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비행기 타본 적 있어요?”
“아뇨- 없는데요. 저 처음 타봐요.”
“로마에서 출발해서 런던에서 환승해서 홍콩으로 가는 티켓인데, 괜찮겠어요?
그러다 국제미아 되는 거 아니야?”
회사 분들의 농담 섞인 말들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나는 한 번 더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며 게이트 앞에 앉았다. 런던 히드로 공항은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보다 깨끗했다. 내부도 좀 더 최근에 지은 듯 보였다. 괜히 그곳의 분위기도 로마보다 차분하게 느껴졌다.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거겠지. 내 짐은, 내 캐리어는 다음 비행기로 잘 연결된 걸까. 런던에서 홍콩으로 경유하는 시간이 2시간뿐이라는 것이, 비행기가 지연되면 항공사 직원이 직접 데리러 올 정도로 그렇게 촉박한 일정이었던 거구나, 터미널과 터미널이 꽤 멀었는데. 나는 그제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밤 사이 이어진 열 시간이 넘는 긴 비행. 눈을 붙였다 떠보니 창밖으로 새파란 바다와 하얀 뭉게구름이 보였다. 뭉게구름은 꼭 손오공이 타고 다닐 것 같은 모양이었다. 홍콩의 아침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습기와 열기가 몸을 휘감았다. 숨을 한번 들이마시자 뜨겁고 습한 공기가 이번에는 코를 훅 찔렀다.
이동 날짜를 앞뒤로 조정해서 경유 말고 직행 비행기 티켓으로 찾아 달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요령을 몰랐다. 여행사 직원은 직행은 만석이라고만 말했다. 그 날짜에 홍콩으로 이동하라고 했으니 그대로 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상황을 설명하거나 이유를 물을 줄도 몰랐다. 그리고 당시에 다들 그랬던 것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나의 하루를 일에 모두 쏟았다. 그리고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게 일을 했다. 참 미련했다. 앞 뒤 재고 따질 줄 몰랐던 촌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금방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회사생활, 조직생활은 참 신기하다. 십 수년 만에 새로운 부서로 왔는데, 촌스러운 신입사원 시절일 적에 일하며 스쳤던 분들을 오며 가며 다시 뵈었다. 나의 시간들이 아까울 때도 있었다. 어리고 젊은 시절에 왜 일에만 치중하며 살았는지 말이다. 이제 마흔이 된 나는 회사만 바라보지 않는다. 남편이 있고 아이도 둘이나 있다. 회사를 나간 이후를 준비해야 하니 나의 할 일은 많고도 많다.
젊은 날 어딘가 열중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생각만큼 아까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시간은 내 삶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나의 흔적이었다. 긴 시간 뚜렷한 성과도 두드러지는 커리어도 별반 만들지 못한 보통 회사원의 삶이지만 최소한 그때의 시간들은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어색하고 불편했을 만남을 부드럽게 만들어준 것은 나의 앞뒤 재지 않았던 여름이었다. 습하고 더운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보다 에어컨이 적당히 켜진, 긴소매 셔츠를 입어도 쾌적한 실내 공간이 좋다. 그래도 불편함을 견디고 지나온 나의 촌스러웠던 그때 여름만큼은 좋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