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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담 Jul 09. 2021

네가 겪는 고통은 특별하다는 위안.

장강명 소설 "열광 금지,에바 로드" 리뷰


장강명 장편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



완주 인증을 받으러 갈 비행기 표를 사고 나니
 통장에 남은 잔고가 딱 6원이었다.




-

소설은 기자인 '나'가 우연히 <열광금지, 에바로드>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에 참석하게 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주인공 종현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장강명 작가님은 전업작가로 전향하기 전까지 실제로 기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쓴 계기 역시 다큐멘터리  <에바로드> 상영회에 참석한 일이라고 합니다.

소설인 듯 소설 아닌 듯 소설인 「열광금지, 에바로드」  속에 등장하는 <열광금지, 에바로드> 다큐멘터리는 <에바로드> 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실존 다큐멘터리 <에바로드>는 2인이 만든 작품이고

소설 속 다큐멘터리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종현이 홀로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그 외에도 책 후반 작가의 말 코너에 보면 실화를 기반으로 하여 인터뷰를 해서 쓴 소설이지만

논픽션은 아니며 사실과 허구는 7대 3의 비중으로 풀어나간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전체 줄거리]

20대를 보내는 주인공 종현의 성장소설.


종현은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던 중  우연한 계기로 에반게리온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에반게리온 '오덕'으로 겪는 일화를 시작으로 종현은 청소년기에이어 대학시절에도 방황을 이어갑니다. 간신히 취업을 한 20대중후반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그러던 어느날 20대의 마지막 에반게리온 월드 스탬프 랠리에 도전하며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기로 합니다.


'오덕'이나 도전할 법한 이벤트.

단기간에 4개 국가의 에반게리온 행사부스에 가서 에반게리온 스탬프를 받아오는-

어찌 보면 참~ 의미 없는 도전을 하기로 합니다.


가족(아버지. 형. 어머니), 친구와의 갈등과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도 함께 담겨 있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크게 성장하는 종현...



책날개에 실려있는 아래 심사평이 소설에 대해 잘 설명줍니다.


이 소설은 실존하는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중심 서사로 놓고 이 다큐를 만든 인물의 성장담을 취재기 형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에반게리온 '오덕'으로 살아온 IT세대(88만 원 세대)가 20대를 보내며 한 시대를 갈무리하는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전반적으로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제2회 수림문학상 심사평




[기억에 남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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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반. 기자인 나와의 인터뷰 중 종현의 이야기.


61p.

"그게 종현 씨랑 어떻게 이어지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저는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춘기에 여러 가지 문제로 상처를 받고 있었고, 외로웠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까짓 것, 대단한 시련이 아니야'라고 여기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편부모 가정은 많아요. 가난해서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도 많죠. 이라크나 북한의 어린이들에 비하면 내가 겪는 불편은 고통이라고 내세울 만한 수준도 못 된다, 고작 이 정도 괴로움을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지만 속으로는 그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때 에반게리온은 '네가 겪는 고통은 특별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

미사토가 '진짜 나는 언제나 울고 있어'라고 말했을 때 저는 누구보다도 그 말뜻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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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개발자로 일하는 종현이 프로젝트 중에 PM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월, 금 2일의 연차를 사용해서 미국에 스탬프를 받으러 다녀온다. 귀국 편 비행기가 마침 항공 결함으로 하루 늦추어지고, 계획보다 늦게 회사에 출근한다. 인천공항에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무실로...


224p.

인천으로 돌아올 때에는 비행시간이 꼭 열두 시간이었다. 종현은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회사로 갔다. 대놓고 종현을 비난하는 동료는 없었지만, 그래도 눈빛은 다들 싸늘했다. 그는 그 뒤로 만 이틀 동안 집에 가지 않고 회사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 여행을 갈 때 싸 갔지만 입지 않은 겉옷이 한 벌 있었고, 속옷과 양말만 회사 앞 편의점에서 사서 갈아입었다.


프로젝트 마감 전날에는 전원이 다 밤을 새웠다. 마감일 아침에 종현이 회사 컴퓨터로 스튜디오 카라의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사무실 구석의 라꾸라꾸 침대 위나 책상 아래 바닥에 깔아놓은 침낭 안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

종현이 에반게리온 월드 스탬프 랠리에 도전하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중

일본에 가서 에반게리온 영화판 <Q>를 보고 나와서...



244p.

첫 감상에서 '네가 겪는 고통은 특별하다'는 위안을 받은 뒤로 이 시리즈에 자신이 헛된 희망을 걸고 있었던 게 아닐까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 장르 전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멸시에 저항하면서 애정을 더 깊이 키워나갔고, 그러다 마침내는 상대에게 없는 장점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 아니었을까.


에반게리온이 자신의 감옥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에 어둠이 내리자 그동안 두려워하던 말을 내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산 그림자를 보며 그는 '만화는 유치한 거야. 애들이나 보는'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렸고, 그러자 무릎에서 힘이 쑥 빠져버렸다. 에반게리온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함투성이이고, 많은 이야기가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만화였다. 종현 자신의 청춘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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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은 4개 국가에서 에반게리온 이벤트 부스에서 4개의 스탬프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4번째 스탬프를 받고 월드 스탬프 랠리에 성공한 시점.


268p.

나중에는 군중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까지 몰렸다. 종현은 스탬프 용지를 고이 접어 가방에 넣고 한 장만 더 찍자는 사람들에게 양 손바닥을 들고 '더는 안 된다'라고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인 뒤 에반게리온 부스를 냅다 빠져나왔다.

그는 전시회장 반대편 구석에 가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미니 삼각대를 바닥에 펴고 그 위에 핸디캠을 올려놓았다. 이 벅찬 감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카메라를 향해 뭔가 말을 하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그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는 마치 머릿속에서 영화의 엔딩씬이 펼쳐진 듯했어요. 애니메이션의 엔딩 장면 같기도 했고요. 그 장면은 문장을 적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20대의 성장 스토리가 내게 준 의미]

소설 속에 뮤지컬 배우 지망생 웹디자이너가 등장하는데, 이 인물은 종현에게 아이-앰-송과 아이-원트-송에 대해 이야기를 해줍니다. 뮤지컬 속 주인공의 노래는 대부분 I AM 이거나 I WANT 노래라고요.


주인공 종현은 자신의 도전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면서 그 아이-앰-송, 아이-원트-송을 찾아갑니다.


해야만 하는 일과 주어진 일을 해내며 20대를 살아왔어요.

 대학입학. 졸업. 취업.

직장에 와서 일을 하다가 결혼을 했고 출산과 다시 복직까지 모두 20대에 겪은 일이었어요.

소설이 나올 당시 88만원세대로 대표되던 소설속 주인공 종현과는 다른 삶이었습니다.



정해진 길 위에서의 나의 일이 아닌, 아무런 의미없는,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마흔이 되어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이 때로는 나의 삶에서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을요. 소설을 읽으며 청소년기부터 방황했지만 결국에는 아이엠송, 아이원트송을 찾아간 종현이 저는이상하게도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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