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실물 크기가 작아요. 시집이나 아주 짧은 글을 모아둔 듯한 사이즈로 한 손에 쏙 들어옵니다. 금방 읽을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데 반전- 페이지마다 밑줄 긋고 멈추고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로 가득해서 생각만큼 빠르게 읽을 수 없었어요. 짧은 글에서저자가 스스로를 깊게 바라보고 돌아보며 느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그 이야기들은 읽는 사람을 콕콕 마구 찌릅니다. 간질간질하게 만듭니다.
- 글 쓰는 분이라면 노트나 워드나 한글을 열게 만들 거고 (혹은 브런치의 글쓰기 버튼을 클릭하게 만들기도)
- 그림 그리는 분들이라면 아이패드를 집거나 스케치북을 열게 만들 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조금 읽다 보니 어느새 브런치를 열고 새 글을 쓰고 있었거든요.
제목처럼 "그림 그리는 법", "그림 그리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생각들도 많이 담겨있답니다. 그림 도구에 대한 안내, 선긋기와 같은 직접적인 이야기도 있고요. (이연님이 주로 드로잉을 하거든요.) 그림을 그리면서 또 그림을 배우고 가르치고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겨있어요.
책 속의 이야기와 문장들은 그림-창작-삶으로 이어진다고 느끼며 읽었어요.
마음에 와닿은 책 속 문장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 몇 가지 뽑아서 기록해봅니다.
18p
나는 무엇을 망설이고 있지?
당신도 지금 뭔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을 한번 종이에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보길 바란다.
상상하지 말고, 펜을 들어 종이 위에 내동댕이치자.
멋진 일은 대개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그 여정은 험난하다.
그럴 때는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지금 굉장히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
51p
열등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감정은 대개 가까운 거리에서 온다. 멀고 대단한 존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마음이다.
지금 당장 당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열등감의 진원일지도 모른다.
열등감의 심부에는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이 들어있다.
힘들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코를 쥔 채 그 녀석의 속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가끔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재능과 영감이 아니라 감정을 견딜 비위라는 생각이 든다.
82p
그럼 무엇을 관찰해야 할까?
당신이 가장 관심 있는 대상을 관찰하길 바란다. 그래야 흥미 있게 지속할 수 있다.
언제나 가장 궁금한 것도, 제일 재미있는 것도 나였다.
항상 타인보다도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알고 싶었다.
나를 면밀히 관찰한 바, 나와 타인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스스로를 아는 일은 인간을 아는 일에 가깝다.
타인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우선 자신을 먼저 살필 것을 권하고 싶다.
185p
몰래 숨어서 연습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잘 그려서 깜짝 놀라게 하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 마라.
자연스럽게 항상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까지 남들에게 다 보여줄 것.
그것이야말로 강하고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방법이다.
'작가가 되는 것'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작가로 불리는 것'은 남들의 기억에 남아야 한다.
당신이 그저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만족한다면 남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나를 설명하길 기대한다면, 그림을 보여주고 공언해라.
117p
창작은 외로운 일이라 친구가 필요하다.
모서리에 당신을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나 또한 그 밖을 뛰쳐나와
당신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림은 혼자 하는 일이지만 혼자서만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그런 서로를 응원하며 창작을 지속해야 한다.
이 책이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이 진작에 눈치챘기를 바란다. 이 말은 곧 이렇게 연결이 된다. 삶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잊히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상과 연결되려면? 끊임없이 질문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질문보다 대답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를 시작했다.
누가 읽으면 좋을까 :
-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
-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
- 그림 외에도 글쓰기, 유튜브 영상 제작 등 창작을 하는 사람.
- 그림(창작) 어디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인 사람.
- 정해진 길(대학 졸업-취업-승진) 이외에 다른 길이 정말 있을까? 자꾸만 의심이 드는 사람.
- 그냥 이연님 영상과 글이 좋은 사람.
감상평 :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더 탐구하고 싶어 졌습니다. 무언가 써서 어디에든 올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야겠다는 마음에 용기가 생겼고 무엇을 하든 간에 연대를 찾고자 하는 내 마음이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시선 그리고 창작을 대하는 여러 마음이 책 속에 가득했던 책이었습니다.
퇴사준비생 윤담의 끄적임 :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남는다.
역시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립이다. 퇴사를 한다면 가장 두려운 것은 기존의 사회, 커뮤니티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아닐까.퇴사준비생이라면 나라는 사람과 사회의 연결고리를 다양하게 만들어두는 것이 경제적 자유보다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이연님은 세상과의 연결을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내게는 브런치가 그런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