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브런치 글쓰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글쓰기 책에 손이 갔다. 여러 책을 거쳐 최근에 만난 글쓰기 책이 있다. 글쓰기보다는 책쓰기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울릴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였다.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집어 들기까지 마음이 쉽지 않았다. 책은 글쓰기가 아닌 책 쓰기를 말하고 있었다.
작년 초에 책 쓰기라는 도전을 아무 거리낌 없이 무작정 시도해보았다.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책쓰기를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용기있게 도전을 했지만 책으로 쓸만한 메시지를 찾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그런 내가 이 책을 다시 집어서 읽기까지는 마음 속에서 긴 싸움을 했던 셈이었다.
힘겹게 마주한 책 '책 한번 써봅시다'는 다행히 첫 시작부터 좋았다. 매 챕터마다 작가의 메시지를 기가막히게 그림으로 표현해주는 이내작가의 적재 적소 일러스트까지 더해져서 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속으로 "이거네 이거네!!" 를 혼자 외치곤 했다. 책은 살아가며 크게 부족한 것은 없지만 삶에서 공허함이 느껴질 때 책 한권 분량의 글을 써보며 삶의 의미를,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주제로 원고지 200매 600장 분량을 써보자는 이야기였다. 그 분량을 쓰려면 당연히 안써지고 막히기 마련인데, 그 구간을 넘어서면서 우리의 사고는 확장되고 성장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그 많은 분량을 써보자는 장강명작가의 권유가 때로는 부담스러웠고 때로는 용기가 된 것도 분명했다. 그렇게 책상 노트북 곁에 항상 올려두는 책이 되었는데 ...
내가 쓰고자 하는 책도 글도 결국엔 보통 사람의 삶에서 시작한 에세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 책에서 안내해주는 여러 장르의 책쓰기 가이드 중 에세이쓰기 챕터를 집착하듯이 여러 차례 보고 또 보았다. 에세이 쓰기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쓰는 이의 개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개성이 에세이의 핵심이라 하였다. 그런데 개성이라 말하면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는데 남들과 다른 행동이나 모양새로 통통 튀는 것은 오히려 개성이 아니라 했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며 아주 깊숙하게 파고 들어가야지만 발견할 수 있는 보물로 책에서는 표현이 되었다.
이 책은 그 개성을 찾아가는데에 힌트가 될 수 있는 질문을 하나 던져준다. 다섯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를 말해보라는 것. 가장 좋아하는 영화도 아닌 다섯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하려면 좋아하는 것을 먼저 고르고 연속해서 비교하고 나누면서 내 마음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참을 그 챕터에서 머물러 있다가 나는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해보았다.
다섯번 째로 좋아하는 식물은 ?
인스타 피드나 블로그의 포스팅을 통해 종종 나의 식물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햇살을 받고 예쁘게 자라고 있는 스킨답서스나 행잉화분 디시디아 등의 내가 키우는 식물을 예쁘게 사진 찍어서 올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다섯번째로 좋아하는 식물이라는 질문을 만들자 마자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글쓰기 친구와 이 다섯번째 취향에 관해 각자의 글쓰기로 탐색해보자고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에도 그 답은 쉽게 써지지 않았다.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름대로 또렷했다. 식물 그 자체의 생명력.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 움직이지 않고 마치 사물인양 그곳에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살아있는 존재였다. 물을 주고 햇빛을 쪼이고 바람을 쐬어주는 것에 반응하며 느리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끝끝내 보여주고 마는 그 식물을 나는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식물 중에서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로 나눌 수 있는걸까.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식물은 알 수 없으니 좋아한다는 것도 불가했다. 최소한 사진으로라도 접하면서 그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라도 했어야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를 말할 수 있었다. 또 그저 스치듯 지나가며 예쁘다 하고 말았던 식물은 내게 손꼽히는 취향이 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것. 경험해본 것. 시각적으로 예쁜 것. 생명력이 강한 것.
그렇게 나에게는 몇 가지 기준이 생겼다.
어렵게 다섯번째로 좋아하는 식물을 고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음지 식물 보스톤 고사리였다. 고사리는 흔히 상상하는 모양처럼 낮고 넓게 그러나 도톰하고 둥근 모양새로 퍼지면서 자란다. 높이 올라가며 튀지 않고 낮고 넓게 자신의 모양을 드러내는 보스톤 고사리는 외모부터 감촉까지 매력적이었다. 십여년 전부터 이 고사리를 집에서 키우고 싶었다. 집에서 키우는 것을 여러 번 실패했다. 그동안 살아온 집에서 보스톤 고사리 키우는 것을 매번 시도해보았지만 모두 실패였다. 지금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스톤 고사리는 나의 취향이었고 가까이하고 두고 싶은 매력이 가득했지만, 키울 수 없었기에 결국 다섯번째 순위까지 밀리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신혼때부터 지금까지 십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집에서 자라고 있는 뱅갈 고무나무였다. 진초록의 고무나무와 달리 연녹색에 줄무늬가 예쁘게 그려져 있는 잎의 둥근 모양새가 예뻤다. 그러면서 환경 적응력이 무척이나 좋아서 쉽게 죽지 않는 공기정화 식물이었다. 해가 아주 적게 들었던 남동향의 아파트, 지독하게 춥고 더웠던 북향과 남향의 오피스텔, 그리고 지금 사는 집에서까지. 이 나무는 계속해서 바뀐 환경에 적응을 하면서 새 싹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장 처음 애정을 주고 키우기 시작한 식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순서를 고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사람을 볼 때도 이런 마음으로 대했구나- 라는 것을 말이다.
어느 공간과 소속에서 가장 먼저 만난 인연, 긴 시간 함께 해온 인연, 그런 것을 우선으로 하는구나 하면서. 그저 처음 접한 인연이었기에 이런 저런 이유와 상관없이 그냥 그 사람이 좋았던 적이 많았다.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보았고 몰랐던 관점을 전해준 사람이었으니까.
일도 직장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내가 맡았던 일과 속했던 조직에 의미를 두고 미련하게 한 곳에 오래도 머물렀다.
나라는 사람, 내가 가진 마음의 모양새를 조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변화를 원했지만 나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한번에 뒤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긴 시간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갈등하며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한번에 휙, 새로운 곳으로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하는 사람. 이미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것이 어렵고 오래 해온 것과 멀어지기 힘든 사람.
새로운 시도가 여전히 두렵고 두려운 그런 사람.
식물의 취향을 찾다보니 내 마음의 모양과 나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탐색해 볼 수 있었다. 이미 해본 사람의 말은 이유불문 따라해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한번 더 다섯번째로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가장 좋아하는 뱅갈고무나무. 겨우내 잎이 떨어지고 말라가던 가지에 싹이 트고 여름을 맞아 예쁘게 자라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