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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l 12. 2019

한낮의 환각

<미드소마>


여름 향기가 폭발하는 중이다.

초록색으로 우거진 나무와 풀숲을 지나가기만 해도 단내음이 신기할 만큼 짙게 맴돈다.

햇빛은 뜨겁기보다는 뜨거움과 따뜻함의 사이. 걷다 보면 들숨에 산뜻한 바람도 비집고 들어온다.


스웨덴만의 독특한 전통인 Midsommar라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여름의 축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미드소마>.


감독은 왜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선택했을까?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민주주의를 갖춘, 소위 문명화된 부국으로 최빈개도국에게 조건 없이 자비로운 평화애호국 중 한 나라이다. 이러한 국가의 한 마을에서 고대의, 야만적이고 비 문명화된 행위가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우리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부족 혹은 소수민족의 이해하기 힘든 풍습, 인신공양, 명예살인과 같은 것을 보는 잣대와 똑같이 바라보게 될까? 문화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 것인가? 산 채로 사람을 태워 죽이는 잔인해 보이는 장면은 문명화된 공간이라는 곳에서 자행되는 잔인한 살인, 테러, 끔찍한 범죄와 오버랩된다. 자연 속에서 자연적인 life cycle 대로 그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해가며 사는 것보다 과연 열등할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인류학에 관심이 생긴다. 나도 인류학 연구의 일환으로 한 마을의 독특한 전통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고 싶어 진다.


금발에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가진 스웨덴 여성들이 여러 꽃을 엮어 만든 알록달록한 화관을 쓰고 모여,해맑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아름다움 너머의 잔혹함. 푸르른 대자연, 나무집,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마을 사람들과의 축제, 예쁜 화관, 술과 음식, 따뜻한 햇살과 여유. 이 모든 것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환상적이다.


마을 사람들이 심신을 편안하게 해 주고 마음을 열게 해주는 차라며 건네는 자연 유래 환각제를 마셔보고 싶다. 이 환각제는 초대한 외지인들을 마비시키고 취하게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이끄는데, 이는 외지인들이 약간 떨떠름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응하여 마신 것이다. 이를 마시라고 권한 사람은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환각제를 마신 대가는 통제 불가능하다. 이 환각제는 여 주인공인 대니가 일상적으로 먹던 심신 안정제와 수면제와도 연결해서 읽힌다. 현대 문명 속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다양한 약, 건강 보조제며 정신과 약 등. 이 것을 먹는 것은, 먹을 수밖에 없더라도, 우리의 선택이고 이에 따라 죽음에 이르게 되더라도 그 책임은 결국 내가 진다.


한편, 광신도적으로 그려진 마을 공동체는 자기들끼리 마을을 이루어 그 안에서만 생활하는 <1Q84>의 사이비 종교집단 '선구'를 떠올리게 했고, 1Q84를 읽으며 떠올린 구원파의 금수원이 생각나기도 했다.

조직적으로 세뇌된 확신은 무섭다. 그 세계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곰 속에 사람을 넣는 장면을 보고는 왠지모르게  <포르투갈의 높은 산>의 2부에서 시신을 가르자 침팬지와 새끼 곰이 나온 장면이 떠올랐다.


스웨덴인 친구가 보내준 사진


미드소마를 본 관객이라면 스웨덴의 미드소마가 진짜 이런 것인가?하고 궁금해질 것이다. 그간 스웨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미드소마 축제의 사진도 보고 설명도 자주 들었는데, 막상 호기심이 생겨 더 알고 싶은 것은 이 영화를 보고 나면서부터이다.


스웨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미드 소마는 보통 일 년에 한 번, 하지의 이브날인금요일에 하루 동안 열리는 축제로 가족이나 친구들, 이웃들과 함께 축하한다. 점심에는 절인 청어에 감자와 같은 전형적인 미드소마 점심을 먹고, 노래를 부르며 Snaps를 마신다. 디저트로는 크림이나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딸기 혹은 딸기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화관을 함께 만든다. 그리고 공원이나 정원에 가서 화관을 쓰고 Maypole을 세워 삥 둘러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저녁에는 함께 바비큐를 구워 먹는다. 술을 진탕 마신다.


물어본 스웨덴 사람은 남부 사람이어서 그런지 영화에서와 같이 축제가 9일 동안 이어지지는 않고 하루 동안 즐긴다고 한다. 북부 스웨덴은 겨울에 더 춥고 어두워서 그런지(TMI로 나는 북부 스웨덴 사람 말투를 좋아한다) 미드소마를 더 제대로 준비하고 즐기는 것 같다고. 약 천 년의 역사를 지닌 미드소마는 북유럽 중에서도 스웨덴이 가진 독특한 전통문화.

영화에서 나온 공동체 생활을 하는 마을 주민들이 0~18세->18세~36세->36세~54세->54세~72세의 인생의 주기를 설정하여 72세가 된 노인은 미드소마 축제 날 희생제가 되어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다거나, 인신 제사로 사람 9명을 불에 태워 죽이는 것, 마약을 하는 것은 실제 미드소마와 상관없이 여러 오컬트적 요소를 미드소마라는 환상적인 장치 속에 넣은 것 같다. 실제로 일부 사람들과 관련이 있을는지는 또 모르겠지만. <미드소마>와 스웨덴 전통 축제인 미드소마와의 관련성에 관한 궁금증을 푸는 데는 이 사이트가 유용했다.


나도 예쁜 화관을 쓰고 백야에 취하고 싶어졌다.

1-2년 내에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연락한 스웨덴 가족은 언제든지 환영이라며 내가 오는 날은 미드소마가 아닌 언제라도 같이 즐기자고 말해 따스함을 느꼈다.



정말 긴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세련된 듯 클래식한. 여러 영감들이 뒤섞여 떠오르게 한다.

영화관을 나와 길을 걷는 나 자신이 어떤 환상 속에 있는 것인지.

하늘에 뜬 구름을 쳐다보자 커졌다 작아졌다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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