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르바이트로 입시학원에서 중1-고3 전담 영어 강사를 한 적이 있다.
대학 후배가 학원에서 요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얘기를 듣다가 그때의 웃긴 일들이 떠올랐다.
학생들은 실력의 편차가 컸다. 어떤 중 3 반은 각 중학교의 전교 1등 만을 모은 반이라서 고2 모의고사 수준으로 수업을 했고, 어떤 고2 반은 기본기가 전혀 없는 7-8등급 학생들로 가끔 지나가는 똘똘한 초딩보다도 기초가 안되어 있었다. 같은 단어장으로 시험을 보는데 과학고 진학을 꿈꾸던 중3 여학생은 4일 치를 내주어도 독하게 외워와 한 개 틀릴까 말까 였는데, 고2 아이들은 하루치도 반 넘게 틀려 진도가 나가지 못하였다.
잘하는 학생들은 모든 걸 그때 그때 흡수하기 때문에 이해도도 빠르고 진도도 빨라 수월했지만 수업에 쉴 틈이 없이 파생된 어휘나 회화에서 쓰이는 말 등 알려줄 것이 많아서 한 수업이 끝나면 진이 빠졌고, 못하는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고등학생에게 요구되는 정도도 소화를 못하고 있어서 한 페이지 진도 나가기도 어려웠다. 중학교 초등학교로 기초부터 거슬러 가 설명해야 했고 니네 이거 학교에서 안 배웠냐고 속이 뒤집어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순수해서 재미가 있었다.
물론 이들의 잘못은 아니었다. 이들은 나름 중학교 내신이 좋았던 애들이었다. 이들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중학교 때 그래도 80점은 맞았던 아이들이라며 상담할 때 자신 만만했다. 아이들도 자신은 연세대에 갈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첫 전국 모의고사에서 8등급을 맞자 그제야 자신들의 실력을 직시하게 되었다. 당연했다. 수도권에서 떨어진 경기도 지역이었고, 다 같이 하향 평준화된 지역이었다. 다 같이 공부를 안 하니 중학교 선생님도 바보가 아닌 이상 풀 수 있도록 교과서에 나오는 것 그대로 시험을 냈고, 학교만 다녀도 80점은 나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책가방 메고 학교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궁극적으로 경쟁해야 할 대상은 더 시간을 투자해 치열하게 공부한 전국의 수험생들이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웃긴 일화들은
예를 들면 Animals lives 아니에요? 애니멀에 s가 붙었으니 live에도 s를 붙여야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이들은 장난치려고 묻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진지하게 말하거나 항상 자신 있게 말해서 더 웃겼다.
가끔씩 나는 혼자 웃음이 빵 터져서 주체를 할 수 없었던 때가 많았다.
다음은 그 예이다(고2이다).
1. Relative라는 단어를 소리로 소리 내서 외우던 중이었나 보다. 자세히 들어보니 "레알티브 친척! 레알티브 친척! 레알티브 친척!"을 외치고 있었다.
2. "선생님, 부-지니스..(Business)는 부가 들어가니 부유하다는 뜻이에요?"
3. "선생님 어브서드가 무슨 뜻이에요?"
" 뭐라구? 어브서드가 뭐야??"
하고 자리에 가서 책을 보니 Absurd라고 써있었다.
4."선생님, Nobody는 바디가 없다니까 너무 야해요!!!" 무슨 포인트인지 모르겠으나 부끄러워하는 모습과 창의성에? 순수해서 귀여웠다.
5.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문제가 있다고 해서 다가가 보니 문장 속에 나오는 Go green을 고글로 해석하며 읽던 중이었다.
6. Tolerate를 톨게이트로 발음하며 Determine을 새터민으로 발음하였다.
7. 해석을 시켰더니 뻔히 주어가 바로 앞에 있는 문장 속에 동사로 쓰인 leave를 나뭇잎으로 해석하였다.
8. faculty: 학부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 선생님 학부는 학부모 할 때 그 학부죠?"
9. 단어를 못 외워와 나머지 공부를 시켰는데, 자기들끼리 anger를 외우면서 안 외워진다며, "어제는 화요일! 그러니까 어제는 앵거 데이!"
10. anticipate가 무슨 뜻인 줄 아냐고 물어보니 너무나 자신 있게 "골동품!"을 외쳤다. 단어장에서 antique을 보았던 기억이 났나 보다.
11. 이건 다른 중2 남자애들이었는데 자기들끼리 서로,
"야 첩의 아들 이거 간첩의 자식 맞지?"
"어 맞는 거 같은데 맞지 않냐?"
12. 이건 다른 선생님 목격담인데, "선생님 내고자가 뭐예요?" "글쎄 내고자가 뭐지"하며 다른 일을 바쁘게 하며 질문을 받아 주던 그 선생님도 이상한 길에 빠져 "내고자가 뭐냐 고자의.. 그게 그러니까.. 내부가 고자가.. 뭐지? 어디 나오는 거냐" 시트콤 같았다.
문맥을 보니 '창문을 내고자'라고 쓰여 있었다. 무턱대고 내고자가 뭐냐니..
그래도 재미있었던 경험이었다.
실력을 쌓을 생각 없이 막연한 꿈만 꾸는 아이들에게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뭘 위해 공부하는 것인지 자문하게 했고, 하고 싶은 것을 이루려면 실력을 쌓을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근시안적으로 자신과 자신 주변의 친구들밖에 못 보는 아이들에게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관심과 사랑을 갈구했다.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못하는 얘기를 털어놓았고, 친구들과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귀엽게도 선생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질투하고 경쟁했다. 아이들의 생각이 끊겨 보일 때는 그 생각을 발전시켜 줄 한마디를 던져 계속 생각을 이어나가게 했고, 아이들을 지켜보며 잘 하는 것을 발굴한 것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같이 도시락을 싸와서 먹기도 하고 선생님이 꼭 보셨으면 좋겠다는 영화가 있다며 USB를 가져와 보여주기도 하였다.
한편,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들은 정치색 짙은 이야기들을 해줄 때면, 선생님의 영향력이 엄청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분별력이 없기에 선생님이 좋으니 선생님의 말하는 것은 다 끄덕이며 선생님의 생각이 다 맞다고 생각하였고, 선생님의 문제의식을 답으로 오해하여 알고 있기도 하였다. 그걸 볼 때 나의 어떠한 발언도 조심스러워야 하겠다고 자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