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단체 채팅방에서 한 선배가 결혼 소식을 알려온다.
축하한다는 선 후배들의 축하와 각종 이모티콘이 쏟아진 후 몇 달 후에 결혼식이 있을 것이니 청첩장을 주기 위해 날짜를 맞춰보자고 한다.
어느 날짜가 좋을지 설문이 생성되고 이번 주 금/토/일, 다음 주 금/토/일, 그다음 주 금/토/일 날짜가 촤르르 펼쳐진다. 곧이어 투표에 따라 날짜가 정해지고, 청첩장 모임에 참여한 단체 사진이 올라온다.
그리고 며칠 뒤 그날 못 온 사람들을 위해 모바일 청첩장이 올라온다. 가끔은 결혼식에 올 수 있는 사람/못 오는 사람까지 투표가 생성된다. 하나의 공식처럼 진행된다.
한 선배는 너무 간절해 보일 정도로 자신의 결혼 일주일 전, 전날, 당일에 까먹지 말라고 공지글을 올린다. 페이스북에도 도배가 되어있다.
나는 청첩장 모임에 못 갔더라도 개인적인 교류가 있었고 결혼을 직접 가서 축하해주고 싶은 선배라면 핸드폰 달력에 00 선배 결혼이라고 써둔다. 결혼을 직접 축하해주러 결혼식에 갈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까먹지 않기 위해 표시를 해 놓거나 알람을 해놓는 등 알아서 잘 갈 텐데 계속되는 공지에 피로감을 느낀다. 분명 축하해줘야 하는 일인데 눈살이 찌푸려졌다.
타인의 감정과 연결된 관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피곤함!
어떤 감정을 의무적으로 느껴야하고, 반드시 받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돌려줘야 하기에 조금은 사랑해야 하는 피곤함!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나는 별로 개인적으로는 교류가 없었지만 한 그룹 안에는 속하는 어정쩡한 사이의 결혼식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대학생 때는 결혼식에 가는 것이 신기해서 몇 번 간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인생사나 어떤 사람하고 어떤 마음으로 결혼하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결혼식에서는 무언가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 없이 앉아서 박수만 치고 사진만 찍다 오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결혼하는 사람과 친해 보이는 사람 조차
"결혼식 뭐 사진만 찍고 오는 거지"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어른들의 문화에 조금 실망한 적도 있다. 어느 강남의 예식장은 다음 결혼이 줄줄이 있기 때문에 30분 내에 식이 끝나고 비워줘야 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후다다닥 해치우고 사진 찍고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나오는 것이 기계적이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별로 안 친한 사람에게 청첩장이 올 때면 그들이 "와서 밥이나 한 끼 먹고가!!" 라는 말을 함에도 돈 내러 오라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이다. 동아리, 직장 등에서 단체로 갈 때 흰 봉투에 돈을 걷는 것도 무언가 강제성이 있는 것 같아 왠지 별로이다.
3,500원~4,000원짜리 식권으로 점심 저녁을 먹으며 취업이나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사회초년생들에게 최소 5만 원은 축의금으로 내야 예의 있는 것이 되어버린 문화는 너무 부담스럽다. 이들에게 5만 원은 일주일 식사비이며 최저임금을 받고 인턴을 하는 청년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액수이다. 결혼식에 축하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심리적인 장벽이 되기도 한다.
이는 비단 청년들에게만 닥친 부담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나이가 들고 임금이 높아지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도 부양해야 하는 식구 수는 늘어가고 소비 수준은 높아지는데, 각종 경조사는 많아지고 생활비 중 경조사에 나가는 비중이 커지는 것이 부담될 것 같다.
혹은 내가 받을 것을 생각해서 뿌린다라는 말도 많이 들어보았다. 조금 부담이 되지만 내 자녀가 결혼할 때 돌려받거나 본인이 결혼해서 받을 것을 생각해서 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내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내는 돈이 아깝거나 부담이 되지만 언젠가 나한테 받아갈 것을 생각해서 내는 축의금이라면 별로 받고 싶지가 않다. 무언가 다시 갚아야 될 빚 같은 느낌이 들고 개운치가 않다.
그러면 혹자는 결혼식 가서 밥값도 안 내고 오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결혼을 축하하러 소중한 시간을 내서 기쁜 마음으로 와준 손님들에게 밥 한 끼 대접 못하냐고. 결혼식이 식당도, 장사를 하는 곳도 아니지 않은가. 비싼 스테이크를 무리해서 내놓지 않아도 된다. 축하하러 간 자리에서 값비싸고 근사한 식사이든 국수 한 그릇이든 그다지 상관이 없다. 결혼식 장소며 식사, 꽃 장식이 허접하다고 흉보거나 투덜대는 사람은 아예 초대를 안 하면 된다.
또는 결혼식을 하면 돈이 많이 드는 데 보태주는 게 상부상조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돈이 많이 드는 결혼식을 할 능력이 안되면 굳이 빚을 내거나 축의금으로 보전할 생각 말고 자신이 가진 액수에 맞게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시에서 무료로 대여해주거나 미술관 야외 등을 저렴한 가격에 대여해주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장소를 찾아보아도 될 것이다. 결혼식을 진심으로 가슴 뜨겁게 축하해 줄 사람들만 초대해서 새로운 시작을 축복해도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관습을 단순히 관습이기 때문에 따른다면 그는 오직 인간만이 독특하게 부여받은 그 어떤 자질도 기르거나 개발할 수 없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결혼식에 오는 하객들이 축의금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돈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식장 부스에서 얼마간의 축의금을 내는 것이 당연한 문화이고 예의인 것 같은 무언의 강제? 보다는 자발적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주거나, 살림살이에 보태거나 신혼여행에서 작은 기념품이라도 사라고 얼마간 마음을 담아 주는 정도는 액수와 상관없이 그 마음에 감동이 되고 온정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되받지 않으려는 마음만을 받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에 불편한 짐으로 남는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오는 결혼식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