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에 도취되지 말고
면접대기실에 도착했다.
오라는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언제 시작하는 건지 공지되지 않은 채 막연히 기다린다.
드디어 면접 시간이 시작되려는지 진행요원이 그제서야 입을 열고 면접을 보는 회의실 앞으로 순서대로 데려갔다.
그 앞에서 또 대기하였다.
"더 대기하여야 할 것 같은데, 화장실 다녀올 분 다녀오시고"
말이라도 죄송하다는 얘기는 없었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또
"아, 더 대기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면접을 보러 왔으니 당연히 대기해야 하는 존재겠지.
우리 앞으로 50대 중 후반 되는 어른이 지나가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서두르는 발걸음도 아니었고 유유자적 들어갔다. 그렇게 면접에 지각한 것으로 보이는 면접관 두 명이 더 들어갔다. 들어가서 면접 볼 준비를 해야 하겠는지 진행요원은 더 대기해야 될 것 같다는 말을 세 번째 했다. 역시 사과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블라인드 면접인 건 다 아시죠? 이름, 학교, 출신지역 말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라며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다리는 동안 다 같이 인사를 맞추라고 하였다.
어떤 여자는 "차렷, 경례" 하면 다 같이 인사를 하자는 의견도 냈다.
"차렷, 경례요?? 너무 군대 같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무슨 면접관에게 차렷 경례까지 해야 하는가. 고등학교 때 수련회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사람인지. 내 귀를 의심했다.
면접자들은 면접관에게 알아서 납작 엎드린다. 면접을 보면서도 다른 면접자들이 아부하며 충성하는 모습에 그곳을 빨리 뜨고 싶었다.
면접관은 본인들이 늦어서 면접이 지연되고 면접자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은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다른 기관처럼 면접비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원자들이 많으니 아쉬울 것 없이 당연하다는, 갑을관계가 명확히 느껴지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물론 갑'질'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한 사람당 5-6분 남짓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는데, 면접에 나는 반나절을 할애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일하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던 나는 면접 후에 합격해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언젠가 비영리단체 면접을 봤을 때가 스쳐 지나갔다.
본인을 사무국장이라고 소개하며 명함을 주면서 면접에 와줘서 너무 감사하다며 굉장히 예의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요즘엔 면접관이 면접자를 선택하는 시대가 아니라 면접자가 여러 군데 면접을 보고 그곳을 선택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며, 자기네 기관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고 했다.
같이 일할 적합한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한 사람 한 사람 정성 들여 질문을 하며 알아가려는 노력이 보였고, 아쉽게도 이 곳에서 모두 다 같이 일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개개인이 살아오면서 노력한 흔적과 능력, 열정에 대한 엄청난 존중을 보여주었다.
갑을관계의 압박면접이 아니라 부드러운 분위기였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위에 지각한 공공기관 면접관들이 커피전문점의 커피, 주스 등 일 인당 여러 종류를 벌여 놓고 마시면서 면접을 보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 비영리기관 면접관은 우리에게 마실 것을 고르게 한 뒤 대접하며 같이 마시면서 면접을 보았다. 면접 대상자의 인원수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음에도 개개인을 신경 써주는 면접이었다.
이러한 곳은 내가 선발이 되지 않더라도 새로 알게 된 그 기관에 호감이 생긴다. 반면, 면접관의 태도에 따라 그 기관에 불신이 생기기도 한다. 면접관으로서 사람을 볼 줄 아는 자질이 있어 보이지 않거나 면접관의 인성이 썩 훌륭해 보이지 않을 때가 그러하다.
물론 이것이 나의 편견이라고 할지라도, 기관을 대표해서 면접을 보는 담당자를 통하여 잠깐의 면접을 통해 그 기관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면접자들에게 어떤 마음을 심어주는지는 면접관의 역량에 달린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기관에 일을 할 의향이 있다고 기꺼이 와준 면접자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 홍보에 많은 돈을 쓰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임을 아는 자가 현명한 면접관이라 생각된다.